영화는 주인공 ‘에바’(틸다 스윈튼)가 스페인 토마토 축제에 간 장면부터 시작이 된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토마토를 뒤집어 쓰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에바. 그런데 여기 저기 터지고 으깨어져 사람들을 물들이고 있는 토마토가 검붉은 피빛에 가까워 섬뜩한 불길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갑자기 이 축제의 장면에서 에바에게 쏟아지는 날카로운 비난의 목소리들…"살인마,악녀"
에바도 깜짝 놀라 현실로 돌아오는 데 현실의 에바의 모습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같은 모습이다. 쓰레기가 널려 있는 집안에 아무렇게나 길어진 머리, 화장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 무엇보다 아무 감정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현재 그녀가 절망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절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표정
이 영화는 “당신은 물론 당신의 아이를 사랑하겠지만, 그가 정말 좋은 인간이 될거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여성 감독으로서 아이를 임신 하면서 느꼈던 공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전반적으로 에바의 시각과 입장에서 보여지고 배경 설명이 많지 않기 때문에 도대체 아들 케빈이 왜 끔찍한 싸이코 패스가 되었는지 장면마다 골똘히 분석해보아도 끝까지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다.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집단 살인의 현장과 그 가해자를 보면 아무리 철저히 분석한다고 하여도 도무지 이해는 할 수 없기 때문일까? 그러니 우리는 에바와 케빈의 입장에서 각각 나름의 분석을 해 볼 뿐이고 그들의 삶을 간접 경험하면서 모성애의 중대한 역할을 각성하게 된다.
에바는 여행가라는 직업을 가진 매우 유능한 캐리어 우먼이었는 데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갑자기 임신과 출산이라는 상황에 접하게 된 에바를 보면, 자기 자신의 낯선 모습에 대해 무척 어리둥절해 하는 걸 알 수 있다.
에바에게 공감이 가는 것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처음 있는 경험이고, 부모는 갑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어린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아이는 끊임없이 울어 대고 달래기도 지친 에바는 공사장에 유모차를 밀고 나가 소음 속에 멍하니 서 있기도 한다. 모험가로서 자유분방했던 에바의 입장에서는 육아라는 크나큰 짐에 묶이는 것이 무척 힘든 경험인 것이다.
시작부터 잘못이었을까?
에바와 케빈의 모습을 보면 똑바로 앉아서 정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많다. 그래도 에바는 간간히 케빈과 소통하고자 하나 이상하리만큼 케빈은 에바에게 적대적이다. 대 여섯 살 정도의 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는 표정이 매우 싸늘하고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케빈은 엄마에게 더 사랑 받고 안기고 따뜻한 미소와 칭찬을 기대하는 데 함께 있으나 늘 냉담한 어머니에게 계속 말없이 분노를 쌓아 온 것일까? 그러나 간간히 엄마도 아들과 교감하려고 하는 데 어머니를 밀어내며 계속 괴롭히는 것으로 관심을 끌고자 하는 케빈의 모습을 보면 너무 가혹하다. 끊임없이 말썽을 부리는것 조차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얻고자 하는 무언의 몸부림인 데 에바는 반항심만 가득한 아들에 대한 미움이 쌓여간다.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마도 나에게 익숙하잖아.”
케빈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보면 에바가 세계 여행지도로 잔뜩 꾸며 둔 방을 케빈이 물총에 든 물감을 잔뜩 뿌려서 망쳐놓는다. 에바는 화가 나서 케빈의 물총을 빼앗아 발로 짓밟으며 분노를 표현한다.
그런데 아들에게는 훈계의 말을 한마디도 하는 법이 없다. 어찌된 일인지 케빈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에바는 가끔 극도의 분노를 표현할 뿐 아들을 자리에 앉히고 차분히 잘못을 설명하는 과정이 없다. 에바의 잘못이라면 케빈과 함께 있기는 하지만 엄마로서 아들이 바르게 자라도록 적절한 훈육을 하지 못한 것이다.
케빈은 나중에 아버지에게 자신이 엄마의 방에 물감을 뿌린 것은 그 방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 였다고 한다. 이것도 영악한 아이가 자신을 변명하고자 하는 말로 들리지만 어쩌면 아이에게는 정직한 대답이었고 어머니와 좀 더 교감을 하고자 하는 다소 과격한 행동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에바의 꿈인 세계지도
케빈은 아버지와는 꽤 다정한 데 에바와는 계속 거리를 둔 채로 청소년으로 자라난다. 에바는 둘째 딸 실비아를 낳고 매우 행복감을 느끼고 자신의 커리어도 다시 찾아가고 성공의 길을 걷는다. 케빈은 여전히 에바에게 매우 적대적이고 청소년다운 반항심 가득한 눈빛으로 충격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에바는 케빈에게 다가가고자 둘만의 시간도 가지려고 하고 대화도 시도하는 데 케빈은 너무 냉정하기만 하다. 케빈에게 다가가고 마음의 문을 열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던 것일까?
아들의 당돌한 언행에 말문이 막힌다
영화에서는 현재와 과거가 계속 오버랩되면서 간간히 끔찍한 사건의 전모를 보여 준다. 에바는 매우 지친 모습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오직 케빈만 남아 있다. 에바는 케빈이 저지른 무시무시한 범죄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계속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보고 이유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 같다.
이웃들의 온갖 분노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집을 떠나지 않고 감옥에 있는 케빈을 면회하러 간다. 면회실에 마주 앉아서도 그 둘은 아무 말이 없다.
내내 마음이 아픈 것은 그 모자의 모습이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다. 짧은 검은 머리, 깡마른 몸, 냉소적인 표정,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데 그들의 마음은 전혀 소통되지 못하고 항상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부모와 자녀는 아무리 서로 미워한다 하여도 결국은 보이지 않는 탯줄로 평생동안 연결된 존재가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에바는 마침내 케빈에게 2년 동안 참아왔던 질문을 던진다.
에바: 이제는 말해 줘. 왜 그랬니?
케빈: 안다고 생각했는 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세상에나~ 에바는 케빈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지옥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데 아들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비로서 케빈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지고 두려움과 자책감도 언뜻 비친다. 에바가 말없이 케빈을 꼭 안아주면서 영화는 끝이 나고 이 장면에서 무심코 눈물이 났다.
에바는 왜 케빈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데 17년이나 걸린 것일까? 마음 속에 모성애의 씨앗은 늘 품어 왔는 데 다만 그 모성애가 밖으로 피어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