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사랑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by 사각사각

*줄거리 전체 언급되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흑백의 화면으로 시작되는 첫 부분에서는 영화감독 ‘태훈’이 새 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의 지방 소도시인 나라현 고조시를 방문한다. 조감독 ‘미정’과 함께 주민들이 거의 떠나간 마을 곳곳을 누비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옛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실 이 첫 부분을 볼 때는 ‘대체 이건 다큐멘터리인가? 영화인가?’ 라는 의문이 들게 되고 특별한 것 없고 무자극적인 스토리에 살짝 지루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두 번째 파트에서 한국에서 혼자 고조시에 여행 온 ‘혜정’(김새벽)이 등장하면서부터 앞부분의 매우 사실적인 인터뷰에 등장한 인물들의 이야기이므로 마치 영화에서 현실로 무대가 옮겨 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영화에 강하게 몰입된다. 첫부분에 나온 시청에서 일하는 일본인 청년 ‘유스케’가 예전에 한국에서 여행 온 ‘미정’과 닮은 여자를 가이드 해 준 적이 있다고 무심코 고백한다. 태훈과 미정은 그의 자세한 스토리가 궁금하고 두 번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유스케’의 회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같은 영화의 첫부분
“괜찮으시면 맛보세요.”


혜정은 역전 안내소에서 아버지의 고향인 고조시에 정착하여 감을 재배하는 유스케(이와세료)를 우연히 만난다. 유스케는 가이드를 자청하여 혜정에게 마을 곳곳을 이틀 동안 안내해 주고 마지막 날에는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하고 함께 불꽃놀이 축제에 가자고 제안한다. 매우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담백한 스토리가 너무나 매력적이고 두 배우의 매우 짧은 대화와 눈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을의 역전 안내소에서 유스케는 여행자 혜정에게 다가와 말린 감을 가리키면서 말을 건넨다. “괜찮으시면 맛보세요.” 허름한 노동복에 목에 수건을 걸친 채로순박하게 다가오는 청년, 혜정의 마음의 경계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풀어졌을 것이다.

동네 골목길 같은 친근한 여행

그가 안내하는 마을에는 사실 크게 놀랍거나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은 없다. 전설이 남아 있다는 작은 연못이나 오래된 건물이 늘어서 있는 작은 골목, 유스케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고기를 잡으러 다녔다는 녹음 속의 시골집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 조차 현실의 남녀처럼 다소 어색한 순간도 있고 오래도록 침묵이 이어지거나 나누는 대화가 몇 마디 되지 않는다.. 그러한데도 그들이 침묵하는 순간에 함께 숨을 죽이고 그들의 다음 대사를 기다리게 되고 그들의 마주치는 눈빛이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어온다. 현실의 남녀도 이렇게 느닷없이 만나게 되고 단시간에 사랑에 빠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만남의 떨림
“처음봤을 때 느꼈어요. 이야기하고 싶고, 같이 있고 싶다고”

마지막 날 유스케의 사랑 고백도 참으로 담담하다. 아무런 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맑은 국물 같은 이 담백한 한 마디에 극 중 주인공처럼 마음이 설레였다. 사랑의 고백이란 말하는 이의 진실함과 간절함이 전부가 아닐까?


“오늘 밤, 불꽃놀이 축제에 같이 갈래요?”

혜정이 떠나기 전날 유스케와 혜정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단 이틀의 만남의 결과로는 다소 급진전이 이루어진 듯한 키스로… 그러나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현실적이므로 어스름 달빛 아래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스르르 스며든다. 자세히 설명이 되지는 않지만 혜정은 이미 남자친구가 있고 그 두 남자 사이에서 잠시나마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혜정은 여관 방에서 불꽃놀이에 가자고 했던 유스케를 회상하고 유스케는 혼자 쓸쓸히 불꽃놀이를 보고 있다.

여기에서 갑자기?

그 둘의 이야기는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런 열린 결말이란 관객에게도 가슴 떨리는 그리움의 감정과 함께 철없던 시절의 첫사랑이 아련하게 떠오르게 한다. 누구나 이와 비슷한 알 듯 말 듯 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 보았고 또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이별도 해보아서가 아닐까?


영화의 후속편을 상상해 본다. 혜정은 이후에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고조시로 돌아와서 유스케와의 만남을 계속했을까? 아니면 여행지에서의 강렬한 추억의 하나로 간직하고 혼자만 가끔씩 조심스럽게 꺼내보았을까? 혹은 얼마 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조금씩 지쳐서 헤어지게 되었을까?

어쩌면 어설픈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만남과 이별이 그들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 아닐까?


일상의 흘러가버리는 기억들이 너무나 애틋해지는 순간이며

고이고이 접어서 책상 서랍 깊숙이 숨겨두고 뜨거운 여름 밤에 꺼내보고 싶은 사랑 이야기!

사랑은 한여름의 불꽃처럼 느닷없이 시작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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