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주는 위로

영화에서 '삶'을 배우기도 한다

by 사각사각


3월부터 실직의 상태가 시작되었다. 유급이었지만 1월부터 말할 수 없이 게으른 백수의 삶에 들어섰다고 봐야겠다. 일상이 매우 평화스러우나 그만큼 단조로워졌다. 일견 바라던 삶이 아니었나 조금 쉬어가도 되지 않나 하고 위로하며 사뭇 긍정적인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벌려 놓은 인터넷 강의도 들어야 하고 어학 공부도 해야 하나 꼬박꼬박 출근을 하지 않는 삶에는 불쾌한 우울감이 불쑥 찾아오곤 한다. 아직은 들추어 보고 싶지 않은 사안들이 문득 떠오르고 아침에 잠을 깰 때쯤이면 울적함과 절망감에 잠식당할 때도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하루에도 해가 났다 비가 왔다 변덕스러운 놈이다.

400년동안 살기 지겹지 않니?

아침부터 영화로 하루를 시작할 때도 있다. 토스트로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세상 진지하게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세 편 정도 연속으로 보고 나면 오후 세시쯤 되고 갑자기 정신이 든다. 이래서는 안되지. 그때부터 외출을 준비하거나 비로소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노트북을 들고 나와 스타벅스에 앉아서 그날 본 영화의 줄거리와 대사를 계속 곱씹어 보며 글을 쓸 때도 있다. 사실 그다지 잘 쓰지도 않는 것에 자괴감(아~그 분의 유행어)이 들지만 그래도 한가지에 열중하는 시간과 자신이 마음에 든다고 할까

싸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원래 영화를 좋아하고 별다른 일 없는 주말이면 종종 남편과 영화관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직장에 다녀와서 대충 저녁을 먹은 후 소파와 한몸이 되어 저녁 내내 미드나 영화를 볼 때도 있었다. 머리 속의 온갖 상념과 스트레스를 잠시 밀어놓고 영화 속의 사람들과 이야기로 그 자리를 채워 넣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가 주는 힐링이었다. 망각의 묘약이다. 그리고 또 내일 하루의 전쟁을 마주하기 위해 평화롭게 잠자리에 든다.


돌아보면 학창시절 내내 꽤나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사교적이고 천방지축 하는 외향성도 있지만 본래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일대일의 깊은 대화를 좋아하는 내향성이 본래 나의 모습이다. 쓸데없이 예민하여 내 기준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상처 받고 마음을 닫아 버릴 때도 있다. 지인들과 만나서 아픈 상처를 꺼내어 놓고 마음껏 성토하는 것이 그다지 위로가 되지 못한다. 꺼내 놓기 괴로운 일은 잠시 덮어두고 더 이상 감정이 증폭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으로 그저 미련 없이 시간이라는 치유의 바다로 흘려 보내리라.

DSC_4256.JPG 먹는 것으로 치유중!

현재의 마음 상태에 따라 영화 속의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속에서 문득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깨달음이 오기도 하였다. 내 모습 속의 못난 점이 드러나기도 하고 반성과 후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영화 속 사람들의 의심, 갈등, 소통, 사랑, 행복들이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타인의 삶에 나는 무척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씩 치유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제 하루에 세 편씩 영화를 몰아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잉여인간’라는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에 더 이상 자괴감이 들도록 자신을 방치해서는 안되는 시점이다. 나날이 불어나는 체중을 간과할 수도 없고. 새롭게 준비를 해야할 일들이 있고 계획이 있지 않은가. 나름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자 자발적 백수의 길을 선택했으니 후회없이 걸어가야 한다. 침묵과 혼자의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조금 더 성숙하게 하고 꽤나 평화로운 괜찮은 시간이기도 하다.


상처란 피할 수 없겠지만 다시 꽃이 피어나기도 할 것이기에...
전등사 홍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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