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마션>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등등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 영화들에서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별 빛 찬란하게 빛나는 우주의 아름다운 장면들에는 크게 감탄하곤 했다.
우주 여행에 대한 많은 영화들은 끝도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를 미아처럼 떠돈다거나 새로운 행성를 탐사하다가 외계인을 만나 치열한 전투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스토리였다. 취향에 맞지 않았다.
힘든 현실보다도 한층 더 암울한 미래라니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져온다고나 할까
<패신저스>는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 주된 주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등장인물도 우주선 안에 5,000명의 승객들이 동면하고 있지만 실제 깨어서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은 달랑 세 명 뿐이다. 그 중에서도 우주선의 함장은 영화의 중간쯤 등장하여 중요한 아이디 카드 하나를 남기고 돌아가시니 실제로 남녀 주인공 짐과 오로라 외에는 바텐더로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로봇 ‘아서’ 한명 밖에는 없는 셈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살아가는 동안 머리를 싸매고 풀어내야할 어려운 숙제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아마 인간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고 가장 뜨거운 대중의 관심을 받는 키워드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해보았거나 그 사랑을 이루었거나 혹은 실패하고 나면 대체 이 정도로 유한한 생명력을 가진 것이 그 대단한 사랑이라는 것의 속성인가?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소원하며 찾아 헤매어 얻어낸 사랑이 이렇게 사그라들 수 있는 건가? 슬그머니 회의와 의심이 꼬리를 들기 마련이다. 어느 새 또 다시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사랑을 찾아 나서겠지만.
결국 인간은 혼자 살아 갈 수 없는가
우주의 끝없는 공간에서 한 남자가 깨어난다. 우주선에서 동면 상태였던 짐은 기계의 오작동으로 홈스테드 II 라는 새로운 행성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서 깨어나고 만다. 아직도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90년?
아무도 없는 우주선의 공간에서 홀로 생을 마쳐야 할 끔찍한 상황이다.
이 감옥 보다 더 고립된 공간에서 1년이나 외로움에 몸부림 치던 짐은 급기야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그 날 우연히 동면기에 잠들어 있는 오로라를 보게 되고 작가인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짝사랑에 빠진다.
늘 아름답게 포장되지만 사랑은 우주 안에 홀로 인 듯한 내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일 뿐일까?
오로라를 발견한 짐은 그녀를 깨워야 할 것인가 포기해야 할 것인가 몇 달이나 계속 괴로워한다.
기계를 조작하여 여자를 동면에서 깨어나게 하면 그녀는 평생을 우주선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작가로서 인류 최초로 새로운 행성에 가서 경험한 일을 집필하려는 그녀의 꿈도 산산히 부서지게 된다.
수없이 고민하지만 남자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국에는 여자를 깨우고 만다.
그래도... 사랑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은 운명처럼 만나서 사랑을 이루게 되지만 어느 날 자신이 깨어나게 된 이유를 알게 된 오로라는 짐에게 크게 화를 낸다. 폭풍 같은 미움과 갈등과 분노의 시간이 있지만 결국에는 우주선에 결함이 생기고 과열되어 폭발하는 것을 두 사람이 함께 구해내면서 동시에 서로를 구원해내게 된다. 오로라는 다시 동면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짐과 함께 우주선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그 후에 단둘이 우주 공간에서 도대체 얼마동안 어떻게 살았는 지 구구절절 알려주진 않지만 그들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우주 공간을 보며 "삶은 끝내주게 좋아" 라는 인상 깊은 대사를 남겼다. (아마 이들이 수십 년동안 우주선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졌다면 나는 또 "아, 이 영화는 중간이 너무 지루했어. 한 30분만 잘라내면 딱 좋았을 텐데." 하면서 구시렁댔을 것이다.)
“다른 곳만을 너무 바라보면 지금 주어진 걸 누릴 수가 없다.”
이 영화의 명대사이다. 어느 때보다도 혹독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어쩌면 고립된 우주선 안에 갇혀 살아가는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능한 외출을 삼가고 모임도 미루고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단절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 아마도 우리는 가늠할 수 없는 꽤 오랜 시간동안 한정된 공간에서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의 종료를 기다리며 지금 이 암울한 순간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뜬금없지만 바질 씨앗을 한 봉지 사왔다. 탁자 위에 새끼 손가락만한 선인장 하나만 간신히 살아 있는 조그만 화분이 있다. 문득 바질을 키워보고 싶어졌다. 선인장과 바질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래도 하나 보다는 둘이 낫지 않을까?
이 추운 겨울 작은 화분에서 씨앗을 틔워낼지 의문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씨앗을 뿌려 본다. 이 씨앗 하나가 무럭무럭 향기로운 식물로 자라난다면 지금 견뎌내는 이 시간이 무척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