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에 대한 감상문

용서의 어려움에 대해서 다시 고찰함

by 사각사각

우연히 캐이블 채널을 통해서 영화 '밀양'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예전에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도 보았는 데 무언가 마음을 다시 사로잡는 면이 있어서 몰입하여 보게 되었다.(줄거리 전체 언급되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요)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다!

영화의 장면들은 모두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지극히 사실적이고 지방의 소도시의 모습을 아무런 가감없이 담담히 그려낸다. 새롭게 다가오는 영화를 보면서 '송강호'씨의 지고지순한 사랑 연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영화에서의 이 남자의 캐릭터는 어느 정도 속물적인 근성이 있는 보통의 평범한 카센터 사장의 모습이다. 전도연님이 연기한 여주인공 신애가 처음 밀양이라는 도시에 오자마자 송강호님이 연기한 남자주인공 종찬은 신애에게 첫눈에 반한 듯 계속 어디든 따라 다닌다.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란 이런게 아닐까? 종찬은 대단히 지적이거나 멋있지는 않으나 신애가 어디에 가든 심지어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불안정한 상태에 있어도 항상 동행하면서 계속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서 사랑의 진면목을 다시끔 깨닫게 되었다.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항상 곁에 있어주는 것.그리고 말없이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것. 끊임없이 무조건적으로.

이 투박하지만 진심어린 사랑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아이를 잃은 전도연님의 연기는 정말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너무나 훌륭하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으로 인해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가슴을 누르는 숨쉬기도 힘든 고통을 호소한다.


주변 인물 중에 동네 약국의 약사이며 교회의 집사님인 한 아주머니는 계속 여주인공에게 전도를 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신같이 상처입고 불행한 사람은 꼭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세상에. 아무리 전도가 중요하다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함부로 건넬 대화가 아닌 것이다. 무심코 건네는 한마디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수 있고 이유 없이 상대방을 판단하는 말은 절대적으로 삼가해야한다.


어느 날 신애의 아이는 갑자기 납치당하여 죽음을 당하게 되고 놀랍게도 살해범은 아이가 다니던 학원의 원장이었다. 이 이후로 여주인공은 극심한 가슴 통증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교회의 부흥회에 가서 통곡의 눈물을 흘리고 그 후에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신애는 감옥에 복역중인 아들의 살인범을 만나서 직접 용서한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교인 몇몇과 살인범의 면회를 하러 가는 데 이상하게도 살인범은 너무나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미 살인범도 감옥 안에서 믿음을 가지게 되어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었다.


신애는 이 살인범이 자신의 용서를 받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이후부터 교회를 멀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 그동안 믿음을 가지고 교인들과 함께 웃음을 띄우며 평온한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아직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라고 고백하며 하늘을 원망하며 울부짖는다.


이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살인범이 믿음을 갖고 새로운 삶을 살며 용서받은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면 왜 그를 용서하겠다며 굳이 마주하려고 찾아간 것일까? 용서는 누구에게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가 대속자가 되었음을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인데...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 중 한명은 죽어가는 순간에 믿음의 고백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


하지만 과연 신애의 입장이라면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할 수 있을지는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장담할수가 없다. 그러나 용서라는 것은 결국 상대방보다는 미움의 마음으로 고통받는 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되새겨 보고 싶다. 미움의 마음이란 내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며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살아가면서 주변인들에 대한 미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물론 그 사안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라 오래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괴로울 때도 있는 것이다.


진정 용서하려고 한다면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솔직한 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여야 한다. 아직은 용서할 수가 없다면 그대로 용서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바꾸시고 용서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여야 한다. 유한한 인간의 능력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과 은혜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신애는 교회를 적대시함과 동시에 자신을 학대하는 쪽으로 향하게 된다. 느닷없이 교회의 장로를 유혹하여 바람을 피우도록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자해를 하여 피를 흘리며 거리로 뛰쳐나오기도 한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였다가 퇴원을 하는 데 그곳에도 종찬은 여전히 함께 있다.


퇴원한 신애는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에 가는 데 거기에서 다시 살인범의 딸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마추치게 된다. 왜일까?


용서를 할 수가 없다면 마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텐데. 하지만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미움과 원한의 불길로 인해 자신이 살아갈 수가 없다면 오직 용서만이 살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용서에도 이별의 경우처럼 얼마만큼의 충분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미하긴 하나 학교에서 마주치는 동료나 학생들 중에도 유난히 신경을 긁는 인물들이 있다. 매일 마주치게 되니 마음속에서 미움을 어떻게든 걷어내는 것이 상책이다. 아니면 볼 때 마다 얼굴을 찌푸리며 주름살이 늘어가고 속을 끓이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이니 말이다. 살아가다 보면 의견이 전혀 맞지 않고 가치관이 매우 독톡한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신경쓰이는 인물들이 어디에나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어찌하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가능한 한 거리를 두고 최대한 원만하게 지낼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올 한해의 모든 미움의 감정도 이 시간과 함께 미련없이 흘려보내고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한껏 가슴을 열고 맞이하시길 바란다. 모든 미움으로부터 날아갈 듯 순수하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거울을 보며 스스로 자기 머리카락을 자르는 신애의 옆으로 환한 햇살이 한자락 비추는 장면이 나온다.


밀양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비밀스러운 햇살이라는 뜻이라고 하는 것처럼. 극심한 슬픔과 절망을 겪은 도시에서 다시 살아갈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한 장면의 암시 같아서 안심이 된다. 남편과 아들을 잃었지만 늘 신애를 바라보는 종찬이 아직도 곁이 있으니 어쩌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니.


지저분한 플라스틱통이 뒹구는 일상적인 마당으로 비추이는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햇살. 극심하게 고통받는 삶에도 늘 작은 희망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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