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배경은 1964년 브롱크스의 천주교 학교이다.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는이 학교로 처음 부임해 오는 데 그는 매우 개방적이고 학생들에게 다정하고 친근하다. 반면에 교장 수녀인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는 엄격하고 아이들이 매우 무서워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매우 젊고 순진한 제임스(에이미 아담스) 수녀가 있다.
어느 날 제임스 수녀의 수업 중에 인터폰이 와서 도날드 밀러라는 학생이 플린 신부의 사제방으로 불러가게 된다. 얼마 후 돌아온 도날드는 울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하고 제임스 수녀는 플린 신부의 행동에 대해 의심을 가지게된다. 나중에 플린 신부가 도날드 밀러의 셔츠를 그의 사물함에 조용히 가져다 놓는 장면을 보고 제임스 수녀는 더욱 의심이 커지게 된다. 제임스 수녀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플린 신부를 불러 추궁을 한다.
의심의 시작
알로이시스 수녀는 왜 그렇게 쉽게 자신의 의심을 확신하게 되었을까? 평소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과 행동 패턴을 가진 플린 신부에 대해서 미리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둘은 각자 식사를 하는 같은 장면에서도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한마디도 없이 조용한 식탁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플린 신부는 사람들과 왁자지껄 농담을 하면서 식사를 한다. 학생들에게 알로이시스수녀는 두려움의 대상이고 플린 신부는 친구처럼 다정하다. 어쩌면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과는 너무 다르고 가치관에 맞지 않는 플린 신부를 계획적으로 무너뜨리고자 끊임없이 그를 몰아붙이고 죄인으로 낙인을 찍은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혹은 알고 싶은 대로 사물을 보고 평가한다.이 과정에서 혹시 편견을 가지고 성급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닌지 그 일로 다른 한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지 다시금 돌아보아야 한다.
확신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알로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는 감정이 폭발하여 격렬한 대립을 한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 신부를 완전히 불신하고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이미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플린 신부도 자신의 과오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모호한 대답을 하여서 끝까지 신부가 어떤 행동을 한 것인지 진실을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 신부를 다른 지역으로 끝내 보내고 나서 눈 내린겨울 정원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학교를 잠시 비웠던 제임스 신부가 다가와서 대화를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렇게 확신에 가득 차서 플린 신부의 잘못을 주장하던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이 했던 의심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면서 눈물을 터트린다.
그리고 결국 결말은 모호해지는 것이다. 그녀의 의심이 과연 정당했는지 아니면 편견에 가득찬 오해였는지? 다만 한가지 남은 명제는 ‘우리는 의심을 의심해 보았는가?’이다. 때로 우리는 어떤 사건의 전모를 알고자 혼자 고분분투하고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나름의 추측으로 명확한 결론을 낸다. 물론 어떤 일에 의심을 가지고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이 발견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하지만 이 의심으로 인해 타인에게 크나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다지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지만 각 인물들의 내면과 그들의 고민을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내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푹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는 대체 무엇을 했을까
최근에 넷플리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아만다 녹스>를 보면서도 의심에 다시 고민해 보게 되었다. 아만다 녹스의 사건은 2007에 실제로 발생한 사건으로 이태리로 유학을 갔던 아만다의 룸메이트 메러디스가 처첨하게살해된 상태로 방에서 발견된다. 이 사건은 언론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었고 언론들 조차 특종을 잡기 위해서 자극적인 추측성 기사들을 남발하게 된다. 그녀를 희대의 악녀로 묘사하고 그룹섹스를 거부한 메러디스를 남자친구와 함께 처참하게 살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려서 그녀는 감옥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결국 재심에서 그녀는 증거불 충분으로 무죄를 선고 받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그 후에 다시 유죄를 선고 받았고 마지막 항소심에서는 다시 또 무죄로 결론이 내려졌다. 참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재판인 데 아만다와 남자친구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증언도 계속 엇갈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판결이 계속 번복되고 있어서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아만다가 유죄인지 무죄인지에 대해서 정확한 결론을 내릴수가 없다. 다만 우리의 의심으로 인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 그리고 그 의심에 대한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지? 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 계속 맴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