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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날 미숫가루의 추억

오곡라떼를 마시다 생각남!

by 사각사각

법원을 나섰다. 아직 법정실이 열리려면 40분은 남았다.

"어디로 가지?"


초여름에 접어든 날씨는 꽤나 후덥지근했다.

시내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남은 시간을 보낼 커피숍이 눈이 띄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가보니 경전철 옆에 몇 달 전 가본 커피숍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도시의 시내에 있는 커피숍은 현대와 과거를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손님도 별로 없는 지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기다리니 주인 아저씨 인듯한 분이 깜짝 놀란 듯 나를 발견했고 안에 계신 주인 아주머니를 부르신다.


시골에나 있을 것 같은 조그만 빵집 겸 카페에서

오곡라떼 아이스를 시켰다.

약간 배가 고픈 듯도 해서


시원한 오곡라떼를 한 모금 쭉 마시는 순간

어린 시절 할머니가 양푼 가득 타 주시던 미숫가루 생각이 났다.

딱 알맞게 고소하고 달달하고 시원한 맛!

진한 곡물가루로 허기를 달랠수 있는 미숫가루 한 컵!


할머니와 살던 시절은 열살 무렵 이전이어서

사실 기억이 선명하진 않다.

다만 혀에 감도는 기억이 그려내는 장면이다.


더운 한 여름날

할머니는 김치를 담그는 커다란 양푼을 꺼내신다.

거기에 미숫가루와 물과 설탕을 넣고 한참 저어 가루와 물이 잘 섞이면

얼음을 한 가득 부어 넣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국자로 한 컵씩 나눠주셨다.


동생과 함께 선풍기에 코를 박고 아~~ 바람 소리를 내며

홀짝거리던 미숫가루는 달콤했다.

즐거웠던 유년의 한 순간으로 혀 끝에 감돈다.


더운 열기를 식혀줄 달달하고 고소한 미숫가루 한 컵

에어컨이 없던 시절 한 줄기 차가운 휴식

땀을 뻘뻘 흘리며 골목에서 놀다 들어와 설레는 마음으로 미숫가루를 타는 과정을 지켜보던 반짝이던 눈

어린 손녀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주름진 눈길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여섯 남매를 홀로 키워 내셨다.

그래서인지 무슨 음식을 하든 항상 넘치도록 많이 하셨다.

감자전도 한 소쿠리, 땅콩 죽도 한 솥 가득

동네 잔치를 벌여도 될 정도였다.

아마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여섯 아이들을 먹이려면 음식도 한번에 많은 양을 해야하셨겠지.


유년의 시름 없던 한 장면을 소환해 준 오곡라떼를 마시다가

힘든 시절을 견디며 당차게 자식들을 길러낸 할머니의 힘!

을 떠올리며 무더위가 막 시작되려는

초여름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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