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때는 책 한권을

미니멀한 생각

by 사각사각

수업을 다녀와서 오후에는 집에서 쉬려고 했다. 이석증이 왔으니 다음 주를 위해 푹 쉬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었으나 누워서 한참이나 이 궁리 저 궁리해도 잠이 오질 않는다. 아마 간밤에 지나치게 잠을 충분히 잔 덕택이겠지.


된장국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저녁을 잘 챙겨먹고 다시 산책을 나섰다. 봄이 오고 해가 다시 길어져서 오후 여섯 시가 되어서야 서서히 해가 노오란 빛을 내면서 떨어지고 있다. 호숫가와 꽃에 비치는 석양빛이 또 다른 저녁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석양은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숙연하고 겸손해 지는 효과가 있다. 우리의 삶도 저렇게 끝까지 불타다가 서서히 사라져 캄캄한 어둠만이 세상을 감싸게 되는 때가 오리라.


해가 저물 때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을 놓아주어야 하는 시간을 날마다 연습하는 기분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떨어지기 직전의 해처럼 끝까지 뜨겁게 타올라 빛을 발해야 하는 숙명도 되새기게 되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는 건강하게 살아야겠기에 호수 주변을 세 바퀴 돌았다. 봄에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한 바퀴 정도만 열심히 걸으면 어느 새 몸이 후끈 더워진다. 점퍼를 벗어들고 나머지 두 바퀴를 채웠다. 아직도 저녁 시간이 충분히 널널하게 남으니 주변 몰에 있는 작은 서점에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수업에 필요한 교재도 보고 여유로운 주말에 책을 좀 읽으려 한다.


얼마 전 만났던 지인은 마음이 많이 외롭다고 하였다. 객지 생활 이십 여 년을 혼자 지내 와서 외로움을 견디기가 더 이상 힘들 정도라고 했다. 충분히 이해는 가나 위로를 한답시고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나에게 외롭다고 하였다. 외로움은 인간으로서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지극히 냉정하고 교과서 같은 조언을 하였는데 다시 돌아보니 내 마음도 그에 못지 않게 상당히 외로운 것 같다. 하지만 어찌 할 수 없는 이 인간의 외로움을 받아들여 온전히 껴앉고 살아가고 싶었다.


일 년이 넘게 코로나를 겪으며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모임을 멀리하게 되었다. 어느덧 외로움이 친구처럼 익숙한 존재가 되었으나 실제는 부단히 외로웠던 것 같다. 이제는 내 마음의 외로움을 인정하고 다독여 주어야 할 시점이 왔다.


이 작은 몰의 서점에는 외로울 때마다 들르게 되는 것 같다. 혼자 일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마지막 외로움의 끝에는 서점에 온다. 동네 작은 서점이지만 어려운 시절에도 문을 닫지 않고 계속 이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의 손님이 없는 공간에서 시간을 채우며 자리를 잡고 책을 넘겨보다가 나올 때는 꼭 책 한권을 사게 된다. 마음에 사무치는 구절들이 마치 친구처럼 나에게 조용히 조곤조곤 속삭여주는 것 같다. ‘함께 가자’ 고.


박완서 작가님의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 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성경에는 ‘사람이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고 하였는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거짓이 없고 진실만이 가득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철부지 같은 생각일지라도.


모래알만한 진실이 수백만, 천만, 억만개가 그만큼의 양으로 또 모이고 쌓이면 산이 되는 것이 아닌가? 집 앞 산을 오르는 평범한 하루에서 떠오르는 사색들을 옮긴 내용도 좋고 연세가 지긋하신 작가님이 귀중한 삶의 지혜를 나누어 주는 것 같아서 철없던 마음이 한층 어른스러워지는 것 같다.


어느 날 옛날 어린 시절에 살던 집 근처를 지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날 뻔 했다니 마음만은 늙지 않는 소녀 같은 감성도 비슷하다. 기억도 가믈가물하지만 지금 초등학교 시절에 살던 단독주택의 집에 가면 나도 문득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루지 못한 꿈,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 등 한마디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여러 복잡한 감정으로 인해 주책스럽게도 왈칵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누구나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의 감정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쉬운 언어로 써 내려간 에세이가 참 좋다. 택배 청년과의 일화에서 저지른 실수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마음도 공감이 간다. 나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끓어오른 화로 인해 다른 이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돌아보아야겠다. 글을 쓴다는 건 자기 반성, 위로, 이성적인 상황 판단 등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모든 개개인의 삶에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을 평범한 삶이지만 모두의 삶이 각기 다른 이유들로 치열하고 의미 있으며 애틋하다. 다른 듯 비슷한 듯 공감이 되는 사건들도 있을 것이고 날마다의 경험을 통해 얻은 귀중한 깨달음도 보게 될 것이다. 글을 통해서 일상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책 한권과 함께 하니 이 밤도 외롭지가 않구나.

책, 나의 좋은 친구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