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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Apr 20. 2021

교사인 듯 교사 아닌

미니멀한 생각

업을 하러 왔다. 아이는 학교에서 늦게 왔고 수업은 30분 있다 하겠다 다부지게 선언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는 무슨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는지 깔깔거리는 경쾌한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는  간결한 몇 마디의 만류에 "내 수업이니 내 마음대로 라고." 하고 들어갔는데 순간 일부 동의가 되기도 하고 이것이 논리에 맞는 것인가 아닌가 헷갈린다. 아이들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데 나란 인간은 세상 만만한 누울 자리인 것 같다. 아주 이불을 푹신하고 안락하게 펴주는 편.  


나의 입장은 이러하다. 아이는 지금 학교에서 돌아왔고 쉬는 시간이 좀 필요한 것은 맞다. 그래서 수업 시간을 30분 늦추겠다고 하였으나 아이는 항상 반대했다. 어머니도 시간을 바꾸지 않으셨다. 다음 수업이 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삽십 분이나 수업을 못하는 실을 알게 되는 부모님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내 입장이라도 마냥 좋아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무늬는 교사이고 양심과 사회성이 있는 인간으로서 이 상황을 어찌 해야 할지 마음에 경미한 갈등이 기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와 이 문제로 격렬한 실랑이를 하는 것도 극도로  신경전을 꺼리기 때문에 별로 탐탁치 않은 일이다. 이 아이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나는 제 시간에 이 집에 도착했고 수업을 할 자리에 똑바로 아서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자기 의사대로 방으로 들어가서 유튜브를 보면서 고 있다. 내가 방에 들어가서 아이를 설득하여 억지로 데리고 나와야 옳은 행동인 것인가?


삼십 분 후에 아이는 방에서 나왔고 평소처럼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재잘거리면서 수업은 이어졌다. 지난 번 했었던 팔씨름이 재미있었는지 오늘은 왼손으로 해보자고 하였다. "그래 뭐 해보자꾸나." 왼손으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이번에는 한 십여 초 정도는 버틸 수가 있었다. 이 아이의 왼손이 약한 것일까 나의 왼손이 강한 것일까? 다시 오른손으로 해보았는데 역시나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지고 말았다. 분.하.다.


왼손으로만 평생 이를 닦아왔다. 왼팔의 근육이나 힘과 아무 관련이 없을수도 있지만 오른쪽 두뇌를 개발하려면 왼손을 사용하는게 좋다기에 왼손으로 계속 이를 닦는다. 사실 이 행위는 딱히 의도적인 것은 아니고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우연히 왼손으로 솔을 잡고 이를 닦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왼손만 이를 닦는데 편안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로써 조금이라도 부족한 두뇌 개발을 하고 나중에 혹시 찾아올지도 모르는 치매라도 좀 예방이 되면 좋겠다.


다시 수업으로 돌아와서 아이는 뜬금없이 나에게 한번에 밥을 몇 공기를 먹어보았냐고 질문하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먹었냐는 줄 잘못 알아듣고 이번에는 한번 이겨볼려고 수 만 그릇이라고 했건만. (텐즈 싸운즌스 오브 보울스 ㅋ)  이 아이는 즘 나에게 손, 발 크기, 팔씨름 등 하등 쓰잘데 없는 사안들을 이겨먹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데 마침 나는 밥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살찌는 간식을 좋아하지. 그래서 한 공기 이상은 잘 안 먹는다고 했는데 본인은 한번에 네 공기까지 먹어보았다면서 승리의 웃음을 씨익 웃으며 매우 뿌듯하고 기뻐하였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참으로 평생 이해할 수 없는 남자들의 승부 근성이다. 사람 간에 조화를 중요시하는 여자들 사이이서 이런 언행하면 여성들의 사회에서는 매장당하기 딱 좋은데. 아무리 봐도 이 정도의 유치함이면 본인이 아무리 주장해도 사춘기는 아직 멀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언행은 꽤 재밌다. 내 스타일의 유머와 예상 불가함과 직함과 뚜렷한 주관과 질주하는 막 나감이랄까? 때마다 새롭고 기상천외하며 흥미로운 인간이다.

 

그리고 내 튼실한 허벅지를 뚫어지게 보면서 그보다는 훨씬  잘 먹을 것 같다고 심히 의아해 하였다. 왠지 부끄러워져서 그런  말은 하면 안된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항상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재차 강조하여 말했다.  '아~쓸데 없는 일에 솔직하네. 또 다이어트를 가열차게 할 때가 왔구나.'


항상 이 자유로운 듯 방종인 듯 알 수가 없 교육관 때문에 외부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의 교육관이 자유로운 거의 방목에 가까운 집안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도 어른이 되어 사람 구실하며 잘 살고 있으니 걱정 안하셔도 된다. 영어 정규 과정의 학교수업 외에는 거의 받은 적이 없었고. 그러하니 영어 교사로서 할 소린가 가끔 스스로도 의심스럽지만 지나친 영어 공부열도 제발 좀 내려놓았으면 싶다. 내가 먹고 살려면 더 부추겨야 하는 것인가? 다 필요하면 언젠가는 공부하게 되느니라. 필요 없으면 끝까지 안하는 것이고. 다 제멋대로 제 재능대로 타고난 대로 사는 것이다.


나름 분석이라는 걸 해보면 아이 편에 가까우면 더 가까웠지 전혀 교사 편에 가깝지가 않은 교육관을 가진 것이다. 까칠하고 정답을 좋아하고 완벽을 늘 추구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환영하나 전형적인 교사나 부모님은 고개를 한참이나 갸우뚱할만한 태도이다. 굳이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자면 대안 학교 쪽에 가깝다. 기회가 되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면 어디에 교실 하나 짜리 작은 학교라도 하나 차리고 싶다. 으리리한 학교를 세우겠다는게 아니고 동남아 오지에 학교를 세우는 정도?  때에는 그간 받았던 온갖 설움을 떨쳐내고 마침내 의기양양하면서 마음 대로 교장을 해먹으리라. 눈을 씻고 봐도 교장같이 보이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행동하고 다니겠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는  마음대로 뜻대로 스스로 사고하며 자유롭게 공부하도록 놔두 싶다.


굳이 다시 한번 변명을 하자면 모든 인간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존중한다. 그리고 모든 에 항상 맞는 정해진 정답이란 없다고 본다. 지나치게도 융통성이 넘치는 인간인 것이다. 멋스럽게 포장하고 비유를 하자면 황 희 정승과 비슷한 인간관을 가지고 있다. 대충 황희 정승의 일화를 더듬어보면 두 하인이 싸움이 났는데 둘 다의 의견이 일리가 있고 옳다고 하여 부인이 의의를 제기하니 그 의견까지 일리가 있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아연실색했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나름대로의 상황 판단력이 있고 하나만 옳은 것이 아니고 각자의 의견이 모두 옳을 때도 있다. 주관대로 결론을 내자면 세상에 하나만 유일하게 옳다는 법은 없다! 


그래서 또 교사인 듯 교사 같은 하루가 갔다. 오늘은 잠을 자든 지 못 자든부드러운 라떼 잔이 간절하게 땡겨서 이 밤에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내일 오후 다섯 시에야 업이 있으니 밤을 샌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로. 그래서 카페인의 힘으로 헛소리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인간들이여 자유롭게 사고하고 주관대로 . 내.멋.대.로 

이 시간에 라떼가 옳은가 그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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