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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Apr 20. 2021

화요일의 수업

그녀는 번듯한 사의 대표이다. 책상 위에는 표창장도 하나 세워져 있고 잘은 모르겠으나 중소 기업인 것 같다. 그녀와의 수업은 매우 유쾌했다. 시종일관 적나라한 단어를 포함한 거침없는 입담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좋고 싫고 알고 모르고 궁금하고 관심이 없고 자기 의사 표현이 솔직한 사람이 좋다. 이래 저래 예의를 차린 답시고 공손한 말만 하다가 결국은 관계나 상황에 의문점만 남기고 돌아서는 사람들은 금방 털어버리려 해도 마음을 들게 하고 인간 관계의 적정선에 대한 끊없는 회의가 들게 한다.  


인간은 어떤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원인을 모르는데 사건이 벌어지면 인간은 해결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심하게 괴로움을 느낀다. 진실을 알고 싶은 욕구라는 게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식에 대한 욕구로 매슬로우가 연구한 인간의 다섯 개 욕구 이론 중 하나에 들어가는지 확인을 해봐야겠다. 한동안은 죽어라 외웠던 교육학 이론이 대부분 기억에 없으나 드문드문 떠오르긴 하는구나. (그래도 아~ 몰랑 ㅋ) 어찌 되었든 항상 어떤 사안이든지 실을 알고 싶은 일인이다. 진실을 알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하고 그것으로 또 그만이다. 결과에 대한 포기도 빠른 인간.


세월호 사건도 여러 정황에 의문점이 많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마음은 더 답답할 것 같다. 그 사고가 벌어졌을 꽤나 기까운 근거리 지역의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선생님들 중에는 그 학교에 지인이 있거나 관련된 사람들이 있었기에 학교는 술렁거렸고 모이면 깊은 한숨과 함께 한정된 정보를 이리저리 짜맞추면서 단편적으로 사고에 대한 분석과 대화를 나눴지만 도무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이었다. 다만 내가 그 중 한명이었을 수도 있다고 상상을 하면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짜볼 수 있다. 실로 어이 없는 사실 중 하나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가만히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지시를 얌전하게 따른 아이들이 아니고 말을 안 듣고 뛰쳐 나와 갑판을 거닐던 아이들이었다. 선생님 말씀은 항상 잘 들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내가 그 선생님 중 한 명이었다면 어떤 행동했을까? 수학여행 코스는 인천에서 출발하여 유람선을 타고 제주도로 가면서 에는 갑판에서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매우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들었다. 예약을 하지 못하여  날 그 간에 그 배를 타지 못한 학교들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를 하였던 사고였다. 인간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도 있으나 때로는 내가 당사자가 아니면 타인의 고통을 간과하는 잔인함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슬프게도 꼿꼿하던 정의감이란 것도 조금씩 내려놓게 된다. 내가 먹고 사는 중차대한 일에 급급하니 타인의 삶을 돌아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인간은 육감이라는 게 있지만 참으로 미리 예상할 수도 없고 믿을 수 없는 일이라 그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했을지 담할 수가 없다. 다만 내가 그 사건의 일원이 될 수도 있었다고 가정을 하면 이 든 일들이 좀 해가 쉬워진다.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오늘도 두서 없는 글이 되려는 조짐이 실히 보인다. 수업에 대한 즐거움과 솔직하게 살자는 의도로 시작했는데 갑자기 진실에 대해 논하다가 세월호에 대한 기억과 상상으로 빠져버렸다. 가끔 운전을 하거나 글을 쓸 때도 의도하지 않은 하나의 생각에 깊이 들어가 버리거나 생각이 중구난방으로 튀어갈 때가 다. 이것이야말로 의식의 흐름에 따른 글쓰기? 갑작스럽게 하나에 꽂히는 위험한 성향이 있으나 나오기도 빨리 빠져 나오니 스스로 진단하기에 정신적으로는 괜찮은 것 같다. 결국 스토리가 여기까지 흘러 왔으니 마무리는 세월호에 대한 남아 있는 기억으할 수 밖에 없다. 갑자기 삼천포로 빠졌으나 결론은 지어야하니.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든 일을 빨리 잊으려는 향이 있다. 다혈질 성향이 인구의  반은 된다고 하니 주전자의 물처럼 부글부글 끓다가 갑자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까맣게 잊으며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파도를 치는 감정은 다시 주도면밀한 이성으로 돌려 놓는다 해도 중요한 사실과  사건의 전말은 기억은 해야 한다고 본다. 말도 안되고 예상이 불가한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진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수 있도록. 


개인적인 기억 중 하나로는 세월호에서 돌아가신 담임 선생님 중에 삽심대 초반의 젊은 기간제 교사가 한 명 있었다. 신분으로는 교육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순직이냐 아니냐로 보상에 대해 논하는 과정이 한참 후 신문 기사에 나왔었다. 기간제 교사로서 상당히 근거리에 근무하였고 같은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기에 이 기사는 한동안 내 생각을 사로잡았고 입장이라면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값이 어떻게 정해지든 관심이 없을 것 같으나 인간 답지 않았던 논쟁으로 기억된. 내가 없는데 보상이 다 무엇인가? 다만 학교에서 느꼈던 온갖 차별과 주변에서 느꼈던 사람들의 무신경한 태도와 함께 꽃다운 나이에 어느 날 닥쳐온 타인의 죽음이라는 막막함이 겹쳐져서 잊을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죽어도 순직은 안되겠구나?그러니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이렇게 또 인간의 기억에는 자기가 공감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은 것만 선별적으로 남을 수가 있다. 다만 가지고 가는 기억이 조금씩은 다를지라도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있는 사람이 많아져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 또 다른 의문은 인간의 기억이란 믿을 만한 것인가? (ㅎ)

주절주절 그래도 기억은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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