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십대 말에 암에 걸리게 되었다. 갱년기 증상으로 호르몬제 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해마다 암 검사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유방암의 증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방암 자가 진단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스스로 가슴을 만지면서 혹이 느껴지는 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혹도 커다랗게 만져졌고 분비물도 있었다. 엄마가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유방암 2기 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기 말이라면 암을 마라톤으로 비유한다면 중간 정도에 온 것이다. 절제를 하는 방법 밖에 없었으므로 급히 친인척을 동원하여 병원 관계자를 찾아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암이라는 진단은 누구에게나 무서운 선고이다. 일생에 한번 걸릴까 말까한 병이고 인간이 자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극단적인 병. 그 당시에 서점에서 이 생소한 병을 알아보고자 유방암에 대한 책을 사서 보았었다.
엄마는 담담한 성격의 사람이다. 어떤 일에도 호들갑스럽거나 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온화하고 조용하다. 암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 마주하는 암에 불안과 걱정이 왜 없었겠냐마는 엄마는 그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주위 사람에게 전염시키지 않았다. 다만 수술을 앞 둔 전날 나를 보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OO아, 아무래도 절제를 하는 방법은 옳지 않은 것 같아. 한방이라든지 다른 치료를 찾아보는 게 좋겠어.”
이미 어렵게 수술 날짜를 잡았고 내일이 수술인데 두려움이 갑자기 엄습한 것이었다. 엄마를 설득하고 아무 일 없이 수술이 잘 끝날 것이라고 뜻 모를 위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수술 당일에 기억이 나는 것은 마취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간 엄마가 무척 걱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술 상황을 알려주는 안내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정해진 시간보다 자꾸 시간이 연장되어 늘어나고 있었다. 마음은 달려오는 초초함과 불안에 점점 쫒기고 한시가 다르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병원 뒤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며 무사하게 수술을 끝내주십사 무수히 똑같은 기도를 했었다.
수술은 거의 여섯 시간은 걸렸다. 엄마가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발을 만져보니 죽은 사람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오 년 후에 다시 암이 재발하였고 엄마는 두 번째 절제수술을 하게 되었다.
두 번의 수술을 거쳐 엄마는 이제 77세의 할머니가 되셨다. 엄마는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낸 것일까? 암은 이겨냈지만 그 치료과정은 결코 녹록하지가 않았다. 방사선 치료라는 것은 암을 수술한 자리에 집중적으로 방사선을 쐬어서 남아있는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이다.
엄마는 가슴 부위의 치료로 화상을 입었다. 화상 치료제를 바르면서 방사선 치료를 받다니 세상에나. 가슴 부위 전체가 검붉게 변하여 건조해지고 당기는 화상 피부를 완화하고자 연고를 바르는 기분은 끔찍하였다.
엄마도 “이런 무식한 치료가 있니? 암세포 죽이면서 다른 멀쩡한 세포도 다 죽겠다.” 씁쓸하게 웃으며 비꼬듯 말했다. 치료 후에도 암과 함께 제거한 임파선 때문에 한쪽 팔은 반팔을 입기 곤란한 정도로 계속 두 배로 부어있는 상태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엄마를 암으로부터 살려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엄마의 ‘무한한 긍정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부작용인 메스꺼움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엄마는 씩씩하게 매번 식사를 잘 하셨다. 의사 선생님이 권하신 알카리성 고기인 개고기와 오리고기.
으악~ 개고기라니. 나는 한두 번 그 해맑은 멍멍이가 연상되는 가느다란 뼈가 들어간 붉은 빛깔의 개고기를 보고 나서는 손도 대지 못하는 데 엄마는 집으로 포장을 해 와서 맛나게 드셨다.
먹는다는 행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받고 에너지를 충전하여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그 후 엄마는 몸에 좋다는 음식만 철저하게 골라 드시며 잔병이 많으나 아직까지 대체로 건강하신 편이다.
엄마는 웃음이 많았다. 때로는 공감이 가지 않을 정도로 헤프게 웃음이 많은 편이다. 한동안은 항암 치료로 머리가 다 빠져서 가발을 쓰고 다녔는데 어느 날 외출했다가 바람에 가발이 날아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깔깔 웃었다. 지나가는 아저씨가 깜짝 놀라며 잽싸게 주워주었다고 한 것 같다. 못 말리는 긍정성이라고 밖에는.
그래서인지 나이답지 않은 동안도 유지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세상살이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음에도 엄마는 늘 긍정과 웃음을 유지하는 분이었다.
한 사람이 암을 이겨낸 것은 개인적인 일이고 지극히 보통의 주부로 살아온 엄마 외에 다른 사람들에 큰 영향을 준것도 아니요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평생 엄마가 암을 이겨낸 불굴의 정신이 고고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요즘 가끔 발동되는 우울기질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내 성격도 엄마에게서 물려 받은 것 같고. 엄마를 생각하면 그 무시무시한 괴물같은 존재인 암을 견디고 꿋꿋하게 이겨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항상 존경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사랑해요. 아~ 이 불효녀는 이제 엄마를 찾아갈 때가 왔네요.’
표현하지 않는 다면 그 사랑을 어찌 알리요.
하지만 제 아무리 연구자라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어떤 때에는 그냥 직관적으로 보이는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이렇게 오래 사는 분들의 비결은 ‘한결같은 긍정성’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