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내용을 써야 할까?

글쓰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

by 사각사각

원래 계획성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글을 쓸 때도 딱히 미리 주제를 정하고 쓰기 보다는 그날 떠오르는 단상을 집중적으로 쓰거나 경험에 대해서 풀어놓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때로 다른 분들의 글을 읽다보면 내 단어 선택이나 표현의 한계성을 느낄 때도 있고 부족함에 대한 반성도 하기는 한다. 한 때는 글쓰기에 대한 책을 도서관 서고에서 모두 골라서 여러 권을 늘어놓고 연구하는 자세로 읽어본 적도 있다. 중요한 내용은 메모를 하기도 했었던 것 같은 데 기억이 가물가물. 공부는 또 의외로 좋아하니 읽기와 메모도 꾸준히 했던 편이다.


하지만 쓰는 것은 일단 쓰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이것을 영어로 예로 들어보면 영어도 듣기, 읽기와 말하기, 쓰기는 두 가지의 다른 영역으로 본다. 듣기, 읽기가 수용적인 기능이라면 말하기, 쓰기는 생산적인 기능이다.


그러므로 보통 우리나라 환경에서 영어를 공부하게 되면 듣기, 읽기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반에 학생들은 삽십 명이 넘고 모두에게 몇 분이라도 말할 기회를 주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듣기, 읽기는 교재가 풍부하니 혼자라도 비교적 더 쉽게 습득이 되는 기능이다.


말하기는? 어떻게 영어회화를 잘하느냐? 고 물어본다면 일단 입을 열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한 단어라도 말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부터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처럼 단어로 시작해서 두 어구, 세 어구로 수많은 오류를 거쳐서 차차 완전한 문장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쓰기의 영역도 생산적인 영역이므로 직접 써 보지 않고는 실력을 늘릴 수가 없는 분야인 것이다. 일단 마음속에 있는 진솔한 생각이나 경험을 쓰고 풀어놓은 다음 다시 처음부터 읽어가면서 계속 수정해나가면 된다. 어떤 프로젝트 심사평에서 ‘신변잡기를 늘어놓은 수준에 그쳤다.’ 라는 문장을 보고 문득 마음 한구석이 아프게 찔려왔다. 혹시 내 얘기를 하시는 건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하지만 신변잡기로 시작은 하나 나름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인생의 진리(?)를 살짝 가미하면서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에세이란 원래 자기가 평소 깊이 생각하거나 일상에서 경험한 일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쓰는 글이 아닌가?


시나 소설이 아니라면 주변 이야기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고 오히려 너무나 난해한 심오한 사상에 대해 논한다거나 일상의 이야기를 결론이 예상되는 드라마 대본처럼 쓴다거나 하면 매력이 떨어지던데. 에세이라도 자기만의 개성이 있고 끝까지 읽도록 하는 참신함과 의외성 내지는 반전도 있어야 한다.


시를 쓸 만큼 독특한 아름다운 단어나 표현을 골라내기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소설을 쓸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고 지구력이 있지 않다. 소설을 쓰려면 하루에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서 머릿속에서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생성되는 이야기를 신나게 자판으로 두드리면서 시간 자체가 흘러가는 것을 잊어야 할 것 같다. 그 따라잡을 수 없는 끈기와 천재적인 상상력은 존경스럽기만 하다.


에세이에 대해서 좀 연구를 해볼까 궁리중이다. 에세이만 계속 구입하여 비교하고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좀 고민다운 고민을 해보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한 사실 하나는 의사 분이 쓰신 글을 보며 깨달은 점이다. 의사란 직업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다. 이 분이 존엄한 죽음(연명의료 결정법에 대하여) 에 대해 쓴 글을 보자.


그러기를 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흘렀다. 며칠 사이에 종양은 더 커졌고 환자의 얼굴은 점점 사람의 형상을 잃어가고 있었다. 기세 좋게 자라나는 암 덩어리가 상대정맥을 눌러서 머리의 혈액이 심장 쪽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중략)

암 덩어리는 썩었고, 균이 자라면서 곪았고, 곪은 것은 터졌고, 터진 것은 밖으로 흘렀다. 피고름, 누런 분비물, 덩어리진 분비물은 물론이고 입에서는 침이, 기도절제로 터놓은 숨길에서는 각종 썩은 가래가 흘러나왔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김범석 저, 236페이지)


의사가 아니라면 이렇게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서 의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자세한 묘사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 글을 끝까지 읽다보면 나의 경우라도 그 끔찍한 최후를 그려보며 완전히 설득당하여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을 두 손 들고 찬성하며 포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환자의 참혹한 마지막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연명 치료 중단을 요구하고 저자는 산소 호흡기를 끄게 된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주제를 가지고 실제 근무 했던 환경에서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한층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나라 말기 암 환자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다만 이 개월 정도이고 외국은 육 개월 전부터 호스피스 상담을 시작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의지력이 남다르게 강한 민족인가?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사실적인 묘사에 뇌에 충격을 받으며 고민을 하게 하는 글이다.


그리하여 ‘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쓰는 것이 가장 나다운 글’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면 매일 산책 중에 떠오르는 가지각색의 단상과 좌충우돌하는 수업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그것이 가장 내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가장 생동감 넘치고 어떻게 보면 모두가 직업이 선생님은 아닐 테니 가장 전문적인 분야일 터이다.


하지만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마음이 가는대로 일단 쓰는 시도를 하고 있을 뿐 아직 내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었다거나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계속 써보는 수밖에는 답이 없다! 어쩌라고. 그냥 쓴다. 글쓰기에 집중하는 이 시간 자체가 치유요 행복일뿐. 이기적인 인간이다.

해가 나오길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