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선생님이라고?

나이와 함께 얻은 무서움

by 사각사각

몇 주전에 처음 수업을 시작한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무척 어색해 하면서 수업을 받았는데 중간에 내가 무섭다고 했다. 허허, 교사 인생 이 십년이 가까이 다 되어가는 데 무섭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처음 만나는 날이니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약간의 테스트를 해서 학생은 바짝 얼어있었던 것 같다. 수업을 끝내고 부모님과 상담을 해야 하니 단어나 문제 풀기 등을 하면서 학생의 수준을 가늠해 본다. 무슨 데이터가 있어야 상담을 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옆에서 말을 아끼며 조용히 째려보고 있는 내가 무섭게 느껴졌나 보다.

나이와 함께 무서움을 얻게 되었다. 나는 학교 교사를 할 때 만만하기 이를데 없는 인간이었다. 화를 잘 내지 못해서 혹은 기가 딸려서 에너지를 항상 아끼는 편이므로, 화낼 기운도 없어서 화를 내지 않았다. 늘 내 몸이 가장 중하다.


어떤 학생은 내게 교실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때문에 “제발, 화 좀 내세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성을 해야 할만큼 난장판에 엉망징창으로 수업이 흘러갈 때도 많았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제대로 각 잡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으면 말을 안 듣는 경향이 있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정색을 하고 잔소리를 길게 하면 효과는 있다. 다만 지루한 분위기 때문에 한 명씩 잠을 자려는 포즈를 취하기 시작한다. 진퇴양난의 현장.


어쨌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내가 무섭다고?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러면서 본성을 드러내며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아마 이 시점부터 이 학생은 내가 전혀 무섭지 않아 졌을 것이다. 아,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조언을 하셨다. 학생들 앞에서는 절대 웃지 말고 무서운 선생님인척 연기를 할 것. 이제야 터득이 된건가.


하지만 못내 서운해졌다. 늘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다. 진지하고 정색을 하고 바른 말만 하는 걸 그닥 지향하지 않는다.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고 이런저런 소통을 하고 싶다. 아이들은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종족이니. 그 꾸밈없고 솔직하고 기발한 말을 듣는 걸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결국은 잡소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 학생에게 내가 무섭지 않다는 걸 완전히 인식시켜 주었다. 이 학생은 본인이 정치인 성향이라고 하는 데 실제 전교 부회장이 되었다. 이상하리만치 들어맞는 MBTI이 성향 때문에 또 재미가 있었다.


이 학생은 대중앞에 서는 게 즐겁고 일대일의 관계가 더 버겁다고 한다. 나는 그와 반대이다. 일대일이나 소그룹이 훨씬 편하다. 그래서 이 학생은 처음 만나는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이 더 부담스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차라리 수백명의 학생들 앞에 서서 연설을 하는게 본인의 외적 성향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무섭지 않다는 것 외에는 더 쓸말이 없어서 인생에서 외향성을 발휘했던 순간을 써보려고 한다. 이리하여 오늘의 글도 중구난방 제 뜻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자기 길을 가게 되었다.


어느 해에 담임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합창대회라는 걸 했다. 합창대회는 모든 반들이 목숨을 걸고 거의 한달동안 연습에 연습을 더하는 분위기였고 우리반이 고른 노래는 양희은 님의 ‘엄마가 딸에게’ 라는 곡이었다.


‘나 참, 왜 이리 처지는 노래를 골랐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뭐 상관치 않았다. 무슨 노래를 부르는 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큼 그 반에는 날마다 내 신경을 건드리는 사건사고들이 넘치고 넘쳤다. 나는 자유방목 스타일의 교사이다. '저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풀을 뜯어 먹어라.' 그런데 집에서 혼자 남몰래 연습해 보니 왠지 내가 한 구절 정도는 부를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 올랐다.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린가?


그리하여 대망의 합창대회날 그 무대에 당당하게 올라갔다. 참으로 미친 생각이었다. INFP는 잔다르크라는 건 여기서 드러난다. 어느날 프랑스의 시골에 살던 한 소녀가 난데없이 프랑스 전쟁터의 리더로 나섰다고 한다. 대체 무대공포증이 있는데 무슨 짓인가?


웅장한 강당의 무대에 올라보니 조명이 지나치게 뜨겁고 공간은 매우 드넓어서 아이들이 바짝 긴장 한 것이 느껴졌다. 그 중앙에서 개미만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걸 들으니 이미 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내가 나설 순간. 아이들이 홍해처럼 갈라져서 길을 내주었고 나는 박수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홀로 나섰다. 아무도 나가라 종용하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데 내 맘대로 나간 길.


마이크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구절을 부르는데 목소리도 심하게 흔들렸다. 이미 망한 노래에 한술을 더 떴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나름 어색하게 웃으며 무대를 내려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무대 아래 계셨던 여교장 선생님 외 몇 분이 울고 있었다. (이 노래가 원래 가사를 듣기만 해도 울만 하긴 하다) 다들 잘했다고 감동을 받았다고 난리였다. 그들은 내가 그 무대에서 너무 감격하고 울어서 목소리가 떨린 줄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고 한 구절을 혼신을 다해 불렀는데. 그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는 증명인건가.


이렇게 교장 선생님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준 관계로 우리는 그 대회에서 2등을 했다. 상을 받는 순간 달려온 반장 아이와 뜨겁게 허그를 하며 드라마를 한편 찍었다. 상을 받을 걸 일말도 예상을 못했으니 기쁨은 배. 의기양양하게 상금을 받아 반 아이들과 단체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무척 행복했던 하루로 남아 있다.


받는 자도 어리둥절했지만 주시니 받을 수 밖에. 아마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에 욕들도 꽤나 했을 것이다. 허나 이 한 몸을 불살랐으니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니 살다보면 어부지리로 잘되는 때도 있는 것이다.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합창대회에서는 재미가 아니면 감동을 주라!

무섭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