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의 타이밍

충고는 어렵다

by 사각사각

그림을 그리러 갔다. 지난 주에 힘든 일을 미술 선생님께 털어놓았다. 하지만 마음을 정하고 계정을 탈퇴하고 나서 마음의 괴로움도 함께 떨쳐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은 오늘은 은밀하게 방으로 불러들이셨다. 하아, 진지하게 상담을 해주시려 작정한 것 같았다. 정말 입을 굳게 다물고 그림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기쁨은 내 존재를 잊는 무아지경의 시간인것을.


선생님은 그림은 말을 하면서도 그릴 수 있다고 하시며 계속 한시간 반동안 내가 주절거리게 하셨다. 하아, 나는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고 한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걸 좋아한다. 말할 때는 대화만,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에만 집중하고 싶다. 기술이 한참이나 부족해도 정성을 다해 고운 빛깔을 찾아내는 데 열정을 다하려 한다. 이 부분을 우회적으로 말씀 드렸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셔서 상담을 시작하시는 분께 차마 속마음을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선생님이 대화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충고를 원치 않는 상태라면 그건 바람결에 날리는 벚꽃잎 같은 거다. 누구도 잡으려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말이 된다.


자기 문제의 해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 하거나 정답을 내려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방이 진지하게 답을 구하며 묻지 않으면 충고를 할 필요가 없다.


어쨌거나 한 시간 반동안 내 고민들과 온갖 단상들을 늘어놓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답답한 마음의 해소도 되었겠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대화가 아니었다고 밖에는 평할 수 없다. 어색한 분위기를 채우고자 다량의 말을 빈 공간에 쏟아놓은 것일뿐. 게다가 선생님의 충고는 그다지 와 닿지도 않았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극복해야 하고 치유가 필요한 부분을 다시금 깨닫기는 했으나.


작정하고 누구를 가르치려 드는 건 옳지 않은 대화의 태도이다. 성인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본인도 옳고 그름과 최선의 답을 다 알고 있다. 다만 사실을 간과하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심지어 청소년도 자기 문제나 상황은 분명히 알고 있다. 심드렁하고 의지가 없어 보이는 학생에게 주말에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라고 했더니 단호하게 "싫다. 저는 혼자 누워있고 싶다."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일방적이고 개인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해결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얼른 이 학생이 원하는 바를 감지하고 수긍하며 충고의 꼬리를 내리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본인의 문제는 정작 보지 못하면서 타인에게는 끝없이 충고를 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지도.


날아오르는 나비를 그려보았다. 선생님이 아무리 칭찬을 하시고 표구를 하라 해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걸 안다. 내가 정한 기준에 만족감이 차오를 때까지는 표구를 하지 않으리.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이다. 게을러서 절대 완벽해지지 못하나 기준은 까다롭고 높은 편. 완벽하기는 진작 포기한다.


인간은 고집스러운 존재이니 자기 판단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자. 하지만 나 역시도 때 아닌 충고를 늘어놓을 때가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 '그럴 수 있어.'는 진정한 인생 명언.

날아라 나비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