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와의 동거

나 참, 인간도 아니고.

by 사각사각

이 집에서 합의도 없이 여러 곤충들과 차례로 동거를 하고 있다. 몇 달 전에 잠시 또 출몰하였던 바퀴벌레는 욕실에서 요리조리 도망가다가 운명을 달리 하였다. 그 후에 바퀴벌레 약을 구석구석 놓은 이후에는 자취를 감췄다. 다행이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곤충 중 하나는 바퀴벌레이다. 개인 공간을 침범하지만 않는다면 딱히 기피할 이유가 없는데 바퀴벌레는 굳이 마주할 때마다 질겁을 하는 인간과 동거를 하려고 한다. 자존심도 없는 곤충 같으니.


작년 여름에 기거하고 잊을만하면 가끔씩 나타나던 쌀벌레는 출몰하지 않고 있다. 왜냐면 쌀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계획을 했다기 보다는 여름이 되어 요리를 잘 하지 않고 외식을 자주 하니 쌀을 미리 사두지 않은 것 뿐이다. 고로 올해는 쌀벌레와 동거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골치 아픈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 몸체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디 작은 초파리라는 녀석이. 이 녀석은 사실 눈에 잘 띄지도 않아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분들은 방심하는 새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책상에 앉아 밥을 먹거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라치면 한 무리가 떼로 나타난다.

그리고 무험하게 내 음식에 끊임없이 알짱대면서 한입 맛을 보려고 한다. 감히 겁없이 먹을 거에 손을 대려고 하다니. 보이는 족족 손으로 때려 죽였으나 인해전술을 쓰기 때문에 역부족이다.


어제는 우아하게 카모마일 티를 한잔 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초파리 두 마리가 컵에 달라붙었다. 날아가려니 하고 입으로 훅 불었더니 조준을 잘못했는지 컵 안으로 떨어져서 두 마리 다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윽, 한참 즐기고 있던 향기로운 티는 초파리의 무덤으로 버려졌다.


또 다른 날에는 오후에 잠시 누워서 노니락거리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한참 유투브를 즐기고 있는데 귓가에 날카로운 날개짓 소리가 들려서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참깨 만한 녀석들이 인간을 단번에 벌떡 일어나게 하는 소리를 내다니 존재감이 엄청난 녀석들.


게다가 이 분들은 시력이 안 좋은지 피해가지 않고 인간의 얼굴이며 몸에 마구 달려들기도 한다. 매우 불쾌하고 성가시다. 싸우자는 건가?

초파리는 완전변태 곤충이다. 성충이 된 초파리는 12시간 정도 지나면 짝짓기를 하고, 2일 정도 후에는 알을 낳는다. 알은 1~2일 후에 부화하여 애벌레가 되고, 4~5일 정도 시간 동안 두 번 허물을 벗고 다 자라서 참깨와 흡사한 형태의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 상태에서 7일 정도 지나면 초파리가 된다.
<나무 위키>

윽, 이 분들은 잡을 수도 없게 날아다니면서 짝짓기를 하시는 고수분들이었다. 누굴 놀리는 건가.

초파리 덕분에 아주 약간, 미미하게 부지런해지기는 했다. 일단 쓰레기통이 주범이니 베란다로 멀찌감치 옮겨 놓았다. 그래 봤자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만 초파리들이 방 안으로 침범하는 일이 적어졌다. 이전에는 방 옆에 베란다 문을 열어 머리만 쏙 내밀고 쓰레기를 버리곤 했는데 이제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마다 걷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바로바로 처리한다. 먹잇감이 없어야 한다니 설거지도 바로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나오는 대로 얼른 냉동실에 넣어준다. 고이고이 모아 얼려서 냉동실이 꽉 차게 되어야 버려주지만.

몇 달 전에 사둔 바퀴벌레 끈끈이를 한번 들여다 보니 바퀴벌레 대신 초파리가 한가득 잡혀 있었다. 초파리들의 사체를 보니 이상스러운 쾌감이 느껴진다. 이로써 초파리와의 전쟁에서 어느 정도 이겼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간도 아니고 벌레라니 이 불쾌한 동거를 완전히 종료하고 싶구나.

왜 사냐건 웃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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