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집을 구하러 갔다. 다시 시작된 주차문제로 인해 반나절 동안 집주인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고 분통을 터트리고 나서. 드디어 비도 그쳤으니 또 태풍이 불어오기 전에 나서보자.
처음 보러간 집은 전세 6천만원이었다. 저렴한 편이었으나 위치가 매우 애매모호한 곳에 있었다. 그나마 있는 동네 마트와 번화가에서 몇 블럭은 떨어져 발길도 닿지 않는 구석진 곳이었다. 집에 식량이 없으면 그대로 굶어죽을 것 같은 위치에.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그간 겪은 주차 분쟁 일화를 주저리 주저리 털어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차다. 이 집에도 주차 외에 다른 불만은 없다! 주차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사갈 이유가 없도다. 주차 주차 주차! 주차 못해서 죽은 귀신이 따라다니는 것처럼.
집은 13세대가 산다는 아담한 건물이었는데 주차 공간이 그닥 넓어보이지는 않았다. 집은 일층이었는데 앞에 건물이 막혀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구조였다. 암막 커튼도 전혀 필요없을 지경이었다. 아주머니는 원룸에서는 주차가 완벽할 수가 없다고 하며 계속되는 나의 추궁과 다짐에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보면 번듯한 아파트에서도 주차 부족은 있을 수 있다. 재수가 없으려면. 어디 땅이 넓직한 무인도나 산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두번째 집을 방문했다. 주인 아저씨가 나오셨는 데 방은 작은 원룸 구조이고 옆에 생뚱맞은 다른 방 문이 보였다. 알고 보니 같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네 세대가 복층 전세로 사는 집이었다. 이거야말로 쉐어 하우스인데 방 하나에 5평 전세가 8,500만원이란다. 전원 주택 같은 형태인데 집주인이 형제들과 불화가 생겨서 같이 살지 못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가족과도 싸움이 생기는 데 남과 한 집에서 어찌 살까?
"여기 집에 여자들만 사나요?"
방문에 특수 자물쇠라도 하나 걸어잠궈야 할 것 같아 물어봤다. 얌전한 여대생들만 산다고 하나 혹시라도 남자 친구도 같이 들어와 살거나 친구들과 모여서 파티라도 한다면 답이 없을 것 같았다. 방안에 햇빛은 환히 들어왔으나 사생활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집안에 들어오면 철저하게 세상과 고립되고 싶은 인간이어서 더 물어보고 싶지도 않아 황급히 나왔다.
이렇게 이사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원래 결정을 빨리 하는 편이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구경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난날의 과오를 돌아보고 중차대한 집 문제니 좀 더 고민을 해보고 돌아다녀봐야 할 듯 하다.
부동산 아주머의 충고대로 밤에 가서 직접 주차 상황을 염탐해 봐야 겠다. 아~~~ 고달픈 인생!
밤 11시경에 주차 상황을 살펴보러 다시 가봤다. 큰 길에서 일차선 도로를 따라 들어갔는 데 가로등이 하나도 없었다. 건설 중인 건물이 몇 채 있었는 데 낮에 부동산에서 소개한 건물을 쉽게 못 찾았다. 게다가 골목 끝 쪽에 있는 ㅇㅇ교회에서 차가 계속 나와서 길 한쪽으로 비켜주어야 했다.
멀리 깜깜한 어둠 속에 점점이 불을 밝힌 건물이 하나 나타나긴 했다. 귀곡산장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떠오르고 밤에 집에 못 찾아 들어갈 것 같아서 깨끗이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