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의 끝은 어디인가

끝은 없다

by 사각사각

'예민한 사람이다,' 이런 고백을 하는 건 망설여진다. 예민하다는 건 그다지 권장되는 성격요소가 아닌 것 같아서이다. 원만함, 쾌활함, 쿨함 등등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 예민함이란 개밥의 도토리처럼 어울리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예민함을 받아들여야겠다. 그런 의미로 예민함의 뿌리를 찾아가 봤다. 엄마에게 들은 일화를 떠올리며.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모유가 부족하여서 대신 분유를 먹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가 병을 가지고 들어오는 걸 보면, 먹지 않겠다는 의지로 고개를 홱 돌렸단다.


보라, 얼마나 영특한 인간이었나. 그래서 굶어죽을까봐 입을 강제로 벌리고 억지로 분유를 먹였다는 거다. 흠, 태어날 때부터 진한 모유와 맹맹한 분유의 맛을 구분하는 까다로운 인간이었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러하다. "아이고, 돌도 안 지난 게 얼마나 까탈스럽던지. 니 ㅇㅇ은 똥을 싸도 퍼질러 앉아 놀고 있었는데."


또 한 가지 혈액형으로 보면 나는 O형이다. 그래서 늘 담백한 인간이라 자처했는 데 이상스럽게도 예민함이 곳곳에서 드러나서 남들에게 지적을 받곤 했다. 흔히 말하는 소심하고 예민한 A형의 특징이 나타나는거다. 나는 그럴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세상 쿨하디 쿨한 인간이고 싶었기에.


이건 아마도 인간의 양면성에 속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예민하긴 하나 또 현재에 충실하고자 하니 지난 일을 잘 잊는다. 늘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 그러니 시작은 예민하나 마지막에는 쿨한 인간이라고 이 연사(아무도 듣지 않더라도)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오전 중 커피 한잔은 수면과 큰 상관이 없어 보인다. 몇 달 동안 커피를 끊어봤지만 수면은 복불복으로 매일 달랐다. 그렇다면 애정해 마지않는 커피를 끊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생에서 다시금 살 맛이 하나 추가되었다.


수면과 관련있는 건 하루의 운동량인 것 같다. 피곤하면 잠이 잘 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엇보다도 신경이 예민해지는 사건이 생기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엎치락 뒤치락 하며 그 문제를 껴앉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느라 정신을 놓고 수면에 빠져들 수가 없는 거다. 그러니 예민한 신경을 적절히 다스려야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다.


요즘에는 어떤 일이든 이미 벌어지거나 종결이 된 일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빨리 사라지게 하고 신경을 건드리며 남아있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거다. 어떤 이유로든 다시 소통하고 싶지 않은 연락처는 차단한다. 이렇게 하면서 머리속이 한결 가벼워졌고 삶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타고난 예민성이란 노력으로 조절은 가능하겠지만 완전히 바꿀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이 예민성을 발전적인 분야에 사용하는 게 최선이다. 예민성을 이용해서 깊어가는 가을 풍경을 포착하여 세세하게 쓰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주고 공감해줄 수 있다.


아마추어의 실력으로 그리는 그림일지라도 색감이 좋다는 평을 듣는 건 예민함 때문이다. 각각의 색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서 잘 구분하고 표현해보려 노력을 하기 때문에.

그러니 INFP를 대표하여 우리 모두 예민함을 예술로 승화하자! 나이에도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게 흥미롭고 즐겁다.


그래서 오늘도 환영받지 못하는 예민함을 끌어안아 받아들이고 자중하며 잘 다스려 살아가보고자 한다.

연습이 더 필요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