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숭고함

소설이 어려운 에세이

by 사각사각

그녀는 슬슬 밥벌이가 지겨워졌다. 오십의 나이에 아직도 밥벌이에 매달려야 한다니 언제나 죽어서 편안해질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장수하기 싫다는 한결같은 주장과 함께. 평균 수명 팔십까지는 살 거라면서 장수는 아니라 고집한다. 어째 ‘이런 팔자를 타고 났을까’ 하는 신세타령도 양념처럼 가미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으면 주변인들은 뻔한 위로들을 했다. “그래도 능력있어서 수입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한 십 년만 더 고생하면 돼요.” 등등. 동의를 안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무엇보다도 노는 일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생계비를 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다면 재능기부든 봉사활동이든 그림 그리기든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꾸리며, 한 마리 백조처럼 우아하게 살 수 있을텐데. 과외는 얼마간의 수업료는 받지만, 학생이 열의가 있고 시간이 남아돈다면 그 시간조차 개의치 않으며 가르칠 수도 있다. 아무튼 돈 걱정을 떠나서 살고 싶었다.

사람의 삶의 형태는 요상하고도 다양하다. 어느 분은 남편의 공공연한 외도를 참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가 있고 남편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져주고 있기 때문에 이혼을 할 수 없다 하였다. 충격적이었다. 남자 친구와 달달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는데도 새로운 인생을 열어갈 이혼은 할 수 없다니. 말문이 막혔지만 남의 인생은 늘 명료한 정신으로, 날카로운 이성을 앞세워,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잘 보이기 마련이니 비난은 삼가한다. 내 인생이 그리 보여야 할텐데.


여성의 경제력이란 이리도 중요한 문제이다. 경제력이 있어야 이혼도 할 수 있다. 자존감을 지키고 다른 사랑을 찾아갈 원동력은 돈이었던 것. 그녀는 자기가 경험한 바 외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쉽사리 타인의 이혼을 권유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녀의 상황을 다소간 공감했다. 경제력이 없는데 아이가 있다. 게다가 남자 친구도 그다지 믿음이 가는 사람은 아니라 보여졌다. 일단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삶이 제자리를 찾고 문제가 해결이 된다!


또 다른 주변의 여성분들 중 미혼의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어머니와 한 집에 살며 늘 푸념이 늘어진다. “어머니가 아프시다며 나를 이렇게 저렇게 힘들게 한다. 시장에 가서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들고 오게 한다.” 등등.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 이 도시에서 혼자 살 원룸 하나 얻는 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면 충분한데 어째서 독립을 하지 못하는 거지?


편의점에서든 아르바이트라도 하라! 나이의 압박과 육체노동의 어려움이 있으니 이조차 툭 내뱉어서는 안되겠지만.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간절함은 통한다. 독립하여 가끔씩만 부모님을 찾아가면 애틋함이 배가되고 효녀된다! 누군들 세상에 나가서 쉽게 돈 버는 일이 있단 말인가.


그녀가 이혼을 할 때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겨우 몸을 누일 팔 평짜리 원룸 하나를 마련할 정도밖에는. 집은 남편의 무작위 대출로 허공으로 날아갔다. '고고하게 지켜온 결혼생활을 더는 참을 수가 없구나' 결론이 이르렀다.

넘을 수 없고 끝도 없는 인간의 벽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내 능력은 부족하다! 티브이에 나와서 아무렇지 않게 온 가족의 생계를 도맡고 있다는 멋진 여성과 비교해 보면.' 이렇게 포기했다. 여한은 없다. 할 수 있는 바를 다해 너를 사랑했으니.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없고 일을 할 수 있으니 이혼을 결심하는 데 다른 제약이 없었다. 모든 일이 간단할 수 밖에는. 협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제출하고 판사의 질문에 이혼 의사를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대답하면 끝. 근무하고 있던 학원에 급히 돌아가야 했으므로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싸우면서 나눌 재산조차 없으니 얼마나 가벼운가. 이런 단순한 결말이라니 고맙다. ㅇㅇ아.


지난 세월의 억울함과 덧없음이 켜켜이 담긴 눈물 보따리는 매일 밤 하나씩 풀어내야한다. 이혼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니 함부로 입에 올릴 수는 없다. 괜스리 스트레스 순위에 가족의 죽음 다음으로 2위인가에 이혼이 당당히 올라있는 게 아니다. 각설하고 재산은 모두 잃었으나 살아갈 방법은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랄까. 여기에서부터 무소유에 대한 동경이 시작됐다.


그녀는 돈을 벌어보기로 마음을 다시 고쳐먹는다. 이제 공부방 오픈이 한달 여 남았으니 초등학교 앞에 가서 전단지도 돌리고 부동산 아저씨도 명함을 달라고 했으니 다음에 방문할 때는 두둑이 챙겨드려야지. 하하. 밥벌이는 숭고하다!

열심히 벌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