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일상이 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 주변의 사물을 더 자세히 묘사하고 제 삼자의 관점 혹은 시점을 바꿔가면서 쓴다면 평범한 사람의 삶도 소설이 될 수 있지않을까? 여기에 허구의 양념이 더해져 한층 맛깔나는 음식이 된다면. 현실(에세이)과 꿈(소설)을 오가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도 망상에 빠져 있는 순간들이 많으니 이걸 그대로 옮겨 적어넣으면 된다.
'죽은 자의 집 청소' 라는 책을 읽을 때 그녀는 이 이야기가 소설같이 느껴졌다. 실제는 에세이지만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특수 청소업에 대한 이야기여서 각각의 에피소드가 마치 소설같았다. 이 작가분은 과거에 소설을 쓰던 분이어서 에세이에도 소설이 묻어난 것 같다. 특유의 묘한 끌림 덕분에여러번 읽었다.
게다가 2022 노벨 문학상을 받으신 분도 소설과 에세이 사이를 넘나드는 분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시도하고자 했던 글은 이미 현대 프랑스의 주요 문학사조라고 한다. '나 역시 의도하진 않았으나 시류를 잘 타고 가는 인물이로군.'
그녀는 소설을 쓰는 분들이 존경스러웠다. 대체 그 수백 페이지나 되는 글을 어떻게 하루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써 내려가는지. 이것도 간단히 보자면 매일 조금씩 써서 이어붙이면 되리라.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닐텐데 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요'라는 한결같은 꿋꿋한 자세로.
그녀는 오늘 회사에 출근을 했다. 예상하던 것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였다. 어째서 공부방의 학생들이 쉽게 술술 들어오리라 기대를 했던 건지. 이건 마치 보험회사에서 이달의 실적을 올리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현장과 비슷했다. 어쩔 수 없다. 묻어가는 수밖에는. 실적을 올려서 보상으로 회사에서 보내주는 두바이인지 호주인지 해외여행도 희망해 보고 해야지 별 수 없다.(내 돈 주고 가도 되는데 굳이 회사 동료들과 여행가나 싶지만)
게다가 새로운 18명의 팀원까지 얻게 되었다. 하, 그토록 단톡방 싫어하는 데 울며 겨자먹기로 또 편입됐다. 대체 돈 주고 왜 사나 싶은 환영의 유료 이모티콘이 쏟아지는 가운데 예의상 "잘 부탁드린다'는 메세지를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홀로 북치고 장구 치고 도랑치고 가재 잡으면서, 일인 개인 사업자가 되려고 했는데 어쩌다 이 거대한 팀에 합류하게 된건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꿈만 같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그녀는 조직에서 하라면 또 크게 거부하는 일이 아닌 이상 지겨워지기 전까지는, 머리를 최대한 굴리고 융통성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해내긴 한다. 군대를 다녀온것도 아닌데 '하면 된다'는 무대포 정신이 있다. 영업을 예상보다 꽤 잘 할 때도 있있고. 예전에군대를 다녀 오신 어떤 나이 지긋하셨던 선생님께서 얼마나 트라우마가 심하셨는지, '하면 된다'는 문장에 학을 떼며 반대한다고 열을 올리셨던 일화가 갑자기 떠오른다. 이해가 되는 것이 '해도 안될때도 있다'는 건 인정해야한다.이 산을 삽으로 떠서 저 쪽으로 옮기라 하면 안 된다!
그녀는 어제 병원에 다녀왔었다. 또 고혈압이 나왔다. 세번을 거듭한 끝에 마지막은 정상으로 나왔지만 고혈압 전 단계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 내 혈압! 역시나 체중을 줄이라는 언제나 반복되는 데자뷰의 판결이 나왔다. 늘 상한가로 올라가는 체중계의 숫자가 믿어지지 않는다.
옷 무게가 한 2키로 정도 추가된 것 아닐까? 아니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이 늘어서 건강한 돼지가 된거 아닌가. 아무리 합리화를 해봐도 믿을 수 없는 숫자가 입가를 올리며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체중을 줄이면 혈압, 당뇨, 자궁근종이 모두 예방되고 치료될 수 있다고 한다. 휴우, 슬프다. 그리 쉽지가 않은 일인데 너무 단순하게 말하신다. 과외를 때려치워야 밤늦게 식사를 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체중도 관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계를 유지하고자 그만둘 수가 없다니 이건 비극의 한 장면이다.
늦게까지 일하느라 피곤하니 단 것이 너무 땡긴다. 기력이 딸리니 간식이나 단 것을 먹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때문에 살이 계속 찐다. 어제도 어느 집에 놓인 간식 바구니에서 쏘시지, 초콜릿, 과자에 젤리까지 눈 앞에 쓰레기를 쌓아가며 야금야금 끊임없이 섭취했었지. 의사 샘의 충고가 귓가에 아른거렸지만 죽음보다 무서운 멈출 수 없는 식욕이었다. 이러다 어느날 죽는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은 수명은 너무 길어졌다. 예전(조선시대?)처럼 오십이나 육십 사이에 죽는 게 적당한 거 같다. 환갑 잔치를 하면서 무사히 육십에 이른 것을 축하하는 게 적절한 수명이지 않을까? 갱년기라는 건 네 몸이 명을 다하고 있으니 죽음을 준비하라는 경고가 아닐까? 이걸 인간이 의학을 발달시켜서 무지개 다리를 임시로 봉쇄하고 애써 고무줄처럼 잡아늘리고 있지 않은가. 아, 숙명적으로 인간은 자기 죽음의 때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다.
그녀는 아직 엄연히 살아있으니 여기에서 불온한 생각을 멈춘다. 공부방 전단지를 열심히 돌리고 학생 모집에 노력에 노력을 더해봐야겠다. 평균 수명은 살 수 있을 이상적인 근무 시간을 만들게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