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이 아이의 기말시험일이다. 거의 날밤을 새고 한두시간 자고 학교에 가는 패턴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대단하다. 내 기억으로는 학창시절에도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잠에는 장사가 없다고 수면 부족이 심하면 도무지 깨울 수가 없다. 잠깐 일어났다가도 꾸벅꾸벅 졸면서 다시 잠에 빠져든다. 마음이 약하여 단호하게 깨우지 못하겠고 실은 졸리면 자고 일어나는 게 효율적이다. 열심히 하는 자세는 훌륭하지만 고개를 떨구며 힘들게 졸고 있는 아이가 안쓰럽다. 졸리냐고 물어보면 화들짝 놀라서 잠시 깨는 아이.
왜 아이들은 나만 보면 졸리다는 걸까? 인간 수면제인가 보드랍기 그지 없는 극세사 이불인가.
과외가 체질에 안 맞는 게 문제 한 두개 맞고 틀리고 일등급이고 이등급이고 이런 세세한 구분을 하는 것에 그닥 집착하고 싶지가 않다.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꿈을 이루고자 하는 자세는 좋지만 지나친 기대나 목표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숨이 막힌다. 항상 인생에 대안이라는 게 있다는 걸 인식하고 융통성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
대학이라는 것도 스카이 대학을 나오거나 인서울을 하면 인생이 탄탄대로로 펼쳐진다는 건가? 물론 어느 정도 상류층으로 수월하게 진입할 수는 있겠으나 그런 인생만이 성공의 척도인건가. 이런 치열한 경쟁 사회와 학벌 중시 풍조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과외를 하는 자로서 전혀 채근을 안하는 건 아니나 지나치게 성적에 매달리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도 견딜 수 있기를 바라고. 다만 꾸준함의 가치를 배우며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인생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또 과외가 마치 요술봉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어 달 하고 엄청난 결과를 바라는 것도 스트레스다. 공부란 차근차근 애써서 오랜 시간동안 해야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인데 KTX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리라 믿는 게 부담스럽고 옳지 않다. 사실 교사의 역할이란 안내자 정도이다. 결국 성적을 잘 받는 건 학생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인내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왔는냐에 달려있다.
알고 지내는 샘이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문제집을 사주고 문제를 다 풀도록 옆에서 검사만 했는 데 명문대를 들어갔다 한다. 이를 들은 주변의 아이들이 이 할아버지에게 여럿 몰려와서 공부방처럼 운영이 되었단다. 결국 따져보면 그 손자는 혼자 자기주도학습을 한 것이고 할아버지는 관리 정도 하신 것뿐이 아닌가? 이런 상황이 대부분의 실상임을 학생들을 가르쳐 본 사람들은 공감하는 바이다.
영업을 하는 거겠지만 학원의 간판들을 보면 문법의 신, 독해의 신 온갖 신들이 출몰한다. 이걸 보고 '저는 신이 아닙니다'라는 글을 쓰려다가 말았다. 본인이 신이라고 해도 보통의 인간을 모두 신으로 만들수는 없지 않는가?
인생을 살다보니 우리에게는 늘 또 다른 기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대학을 떨어져도 다른 대학에 붙을 수 있다. 예전에도 고백한 것처럼 나는 인생 전반을 보아 전기 시험에 떨어지고 후기에 합격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결혼도 한번 실패했으니 다음이 더 나으려나? 음, 늘 같은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경험이 쌓였으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반면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으니 장담은 못하겠으나.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가길 바란다. 가파른 등산로든 넓직한 고속도로든 한적한 시골길이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택하여, 소신대로 묵묵히 끝까지 걸어가는게 성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