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을 할까 말까 고민이 되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흰머리는 특히 운전을 할 때 앞 거울로 보면 진짜 도드라져 보인다. 한숨을 참으며 가르마를 바꿔본다. 얼마전까지는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타면 흰머리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런데 이제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비슷하게 흰머리가 장마철 잡초처럼 속속 올라오고 있다. 물색 없이 햇빛에 반짝이며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흰 머리카락들. '우이씨. 짜증나.'
염색을 하면 머릿결이 상한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가면 푸스스한 머릿결을 갖게 되는 데 이건 잦은 염색의 결과인 것 같다. 반질반질 윤이 나야 할 머리카락이 푸석해지는 걸 보면 늙음이 확 느껴진다. 아이들은 머리카락이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갈 정도로 결이 부드러운데. 그렇다면 염색을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으나 아직 포기하기가 힘든다.
왜냐면? 음,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다. 온라인상이니 동안 얼굴이라 주장했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한 오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내 실제 나이를 들으면 저마다 입을 모아 “아, 그렇게까지는 안보이시는데요.”라고 하며 놀랐다. 이건 외모보다도 철딱서니 없는 말이나 행동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빈도수가 눈에 띄게 적어지고 있으며(가끔 듣기는 하나) 스스로 보기에도 중년 아주머니의 늙음이 느껴진다.
게다가 늘 어린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니 늙수구레한 선생님이 될 수가 없다. 아이들은 젊고 파릇파릇하고 함께 놀아주는 예쁜 선생님들을 좋아한다. 그 나이대의 발랄함과 유쾌함에 맞춰 주어야 한다. 옷도 밝고 상큼한 색감으로 입어주기를 원한다. 핑크나 이런 쪽은 뚱뚱해져서 안되는 데 요구를 하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내 옷을 왜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싶지만 꾹 참고 짙은 초록이나 파랑, 원색으로라도 입어주자.
그래서 잠자코 염색을 하기로 했다. 적당한 플라스틱 그릇을 하나 가져다 놓고 1제와 2제를 섞는다. 그리고 작은 빗을 들고 머리에 처덕 처덕 바르기 시작한다. 검은 머리는 별로 선호하지 않으니 밝은 갈색으로 골라봤다. 그리고 글을 쓴다. 갈색 머리가 오래 가도록 하려면 한 삼십 분은 두어야 하지 않을까? ‘아, 먼저 머리를 감고 염색을 했어야 하나. 샴푸도 해야 하는데.’ 에라, 틈만 나면 누워지내는 와식 생활 전문의 귀차니스트에게는 염색 한번 하기도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아마 선생님을 그만두기 전에는 염색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흰 머리가 과반수를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놔 두는 방향을 택하게 될 것이나. 아무리 염색을 한 달에 한번씩 해도 흰머리는 제 고집대로, 우후죽순, 죽순보다 빠르고 힘차게 자라 나올 테니까.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겨뤄봐도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을 테니. 극명한 흰 머리의 주장을 갈색 염색약으로 달래 봐도 흰 머리 위에 갈색 모자를 쓴 우스울 꼴이 될 테니까. 그럼 진짜 모자로 덮어야 하는 데 열이 많아서 모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은 너무 먼 미래를 걱정하며 살 필요가 없다. 성경에도 오늘 걱정이 족하다 하셨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하늘에 나는 새를 보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을 하느냐? 하나님은 인간을 더 사랑하시니 너희를 먹이고 입히지 않겠느냐. 이런 흐름의 구절이다. 오늘은 염색으로 덮었으니 잊자 잊어.
흰머리는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이제 네 나이를 자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어른스럽게 살아라.’ 이런 인생의 가르침을 주시는 백의 민족임이 분명한 고집 센 분. 근데 너무 부지런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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