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잘 됐다고 칭찬하는 선생님

여기 있습니다

by 사각사각

오늘은 공부방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하고 화창하여 운동 삼아 2.5km정도는 금방 걸어가리라 생각했죠. 걸어보니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거리입니다. 이년 후에 또 이사를 감행해야 하나? 거의 40분 정도가 걸리네요, 하지만 오늘은 봄볕이 따스하게 온몸을 감싸고 내려앉아서 걷기에 좋은 날이었습니다. 땀이 나서 두꺼운 겨울 점퍼를 벗어들고 힘차게 걸었어요.


공부방에 첫 학생이 들어왔습니다. ‘오메, 반가운 우리 고객님. 어서오십쇼.‘ 모 선생님이 소개해 주셨죠.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갈 방년 17세의 아리따운 여학생이었습니다.


이 학생이 오는 것이 얼마나 기다려지고 반가운지요. 고요한 공부방에 일찌감치 가서 귀를 쫑긋하고 기다렸다가 이 여학생이 오면 쪼르르 뛰어나가 취향에 맞춰서 믹스커피도 타주고 과자며 사탕 접시도 준비해 놓죠.

오늘 이 학생을 보니 평소와는 다르게 머리를 뒤로 묶으니 미모가 더 빛이 나네요. 하얗게 화장한 얼굴에 렌즈도 특이해요. 무슨 색깔이냐고 다정하게 물으니 회색이라네요. 음, 애니매이션에 나오는 신비스러운 주인공 같고 독특합니다. 속으로 ‘칼라 렌즈 한번 껴볼까.’ 하는 주책맞은 생각이 드네요. 화장도 아주 센스 있게 딱 적당히 했어요. 한 듯 안 한 듯 분홍빛 아이 쉐도우를 살짝 바르고 마스카라로 속눈썹도 살짝 올려주고요.

칭찬이 절로 나옵니다. “오늘 아주 예쁘다. 화장이 너무 잘 됐는데.” 하하 호호.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얌전한 학생에게 너스레를 떨며 혼자 호탕하게 웃었네요. 예쁘다는데야 싫다는 사람 없겠죠. 마지못해 배시시 웃는 여학생.

갑자기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던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학교를 때려치운 해에 그 반에 여학생들은 화장을 너무도 진하게 했습니다. 담임으로서 갖가지 업무와 말썽에 시달리던 저는 그노무 화장한 상판만 봐도 짜증이 샘솟았죠.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기도 했고 다른 선생님들까지 가세하여 그 반의 학생들 품행이 방정맞다고 하면 더 화가 끌어 올랐습니다. ‘나는 왜 무서운 선생님이 못되는가?’ 자책이 되고요.

그날도 한 여학생이 뽀얗게 갸루상처럼 화장을 한 얼굴에 지렁이처럼 진한 아이라이너를 하고 교무실에 왔습니다. 저는 그때 다른 일로 무척 열이 받아 있는 상태였는 데 그 학생을 보고 몇 마디 잔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주르륵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학생은 은근히 뺀질뺀질 말 안 듣고 철딱서니 없는 학생이었는 데 담임이 눈앞에서 울어버리니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몰라했죠.


“선생님, 왜 이러세요. 울지 마세요.”

"....."(어흑어흑)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히지만, 그 당시는 아마 꾹꾹 눌러왔던 각종 스트레스가 눈물샘으로 폭발한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가 날 때 난데없이 우는 습관도 있고요. 기분이 착잡하여, 담임이 교무실에서 찔찔 울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저를 달래러 온 여학생들 몇몇과 근처 치킨집에 가서 한턱 냈죠. 학생들만 아니었다면 맥주도 한잔 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앞, 뒤가 안 맞는 결말이지만 그냥 그렇게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우울한 기분을 달래고 싶은 날이었나 봅니다. 어이없게도 화장 잘했다고 치킨 사준 셈인가요? 인정하는 것이 학교 교사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사고가 자유분방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늘 상황에 따라서 상반되거나 이중적인 생각을 하는걸 깨닫곤 합니다. 내 자신이 이해가 안 되니 타인은 오죽하겠습니까? 인간은 한 마디로 종잡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해서 단정적인 어투를 사용하는 걸 조심하게 됩니다.


화장이라고는 해 본 일이 없는 세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니 지나치게 화장을 한 얼굴을 보면 “아, 안 해도 예쁜데 왜 화장을 하고 다니니?” 이렇게 잔소리를 하는 꼰대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교육을 떠난 상태에서,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화장을 한 학생을 보니 “아, 화장 잘 했다. 예쁘다.” 고 서슴없이 칭찬이 나오네요. 뭐, 방학이라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났으니 기분전환 삼아 화장 할만하기도 하고요.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낯으로는 등교하기가 싫다.” 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아이들도 많이 봤기 때문에 익숙합니다.


사람은 마음이 호떡 뒤집듯이 바뀌는 존재입니다. 큰 기대는 말고 그저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는 게 어떨까 싶네요. 아무튼 전 답답한 학교생활도 싫고 내 맘대로 공부방이 체질에 맞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자기 합리화 일수도 있으나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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