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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셸 Michelle Jan 13. 2019

당신이 남자라면 할 수 있는 일  - (2)

타인과 함께하기 ; 성평등을 위해 우린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 글에서는 두 가지 포인트를 살펴 보았어요. 

     첫 째.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과 같아도 좋은가?' 물어보기

     둘 째. '내가 만일 사회적 약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물어보기


    그리고 이 방법들은 '자기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편에서는 '타인과 함께 하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해요. 우선 스스로 성찰을 마쳤으면, 어떻게 하면 그 좋은 성찰의 방향들을 실질적으로 삶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가 중요하니까요. 


    그럼 어디 한 번 떠나볼까요?



성평등을 위해 우린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남자라면 할 수 있는 일

- (2) 타인과 함께 하기


      셋 째. '여성'들과 함께 하기

     넷 째. '부양의 책임'도 나누고, '양육의 즐거움' 역시 나누기

     다섯 째. 궁극적으로 결국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셋 째. '여성'들과 함께 하기


    처음에는 이 부분의 제목이 '여성들과 연대하기'였어요. 그런데 그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연대'라고 하면 너무나도 거창한 활동들만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함께 시위나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사회적으로 의견을 내면서 최전선에서 활동을 하고 등등. 물론 그런 활동들도 좋지만, 저는 사실 그보다도 훨씬, 아주 작은 행동들에서부터 세상이 조금씩 변화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작은 행동들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들의 삶도 변화한다고요.

    그리고 그 행동들은 우리 주변의 '여성'들과 '함께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씀 드리는 '여성'이라 함은 누구일까요? 제일 가까이에서는 나의 여자 친구, 여자인 친구, 아내, 엄마, 여동생, 누나, 동료와 같은 사람들이 있겠죠. 그리고 '함께 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여성의 일들을 '여성들만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고, 함께 나누어 하며,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일들에 귀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저는 저희 아빠와 비교적 소통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특히 아버지께서 은퇴를 몇 해 안 남기시게 된 후에 집에 돌아오시는 시간이 빨라지시면서, 아버지는 저의 직장 생활에 대해서 많이 여쭤봐 주세요. 또 저는 집에 돌아가면 미주알 고주알 그 날 있었던 일을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주말에 가끔 단 둘이 식사를 할 때에도, 또 회사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것 같을 때에도 저는 아버지께 많이 여쭈어요. 늘 지키지는 못 하지만, '일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즐기는 자는 아무도 못 따라온다' 등등 여러 삶의 신조 중 하나를 전달해 주신 분 중 하나도 아버지시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아버지와 친근한 사이가 된지도 사실 얼마 안 되었어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저한테 아버지는 '멀고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거든요. 아버지께서는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시다 보니 주말에는 피곤한 상태로 쉬실 때가 많았죠. 가끔 주정을 부리실 때면 도망 다니기에 바빴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아버지와 대화를 했던 기억도 잘 없었어요. 게다가 교육은 어머니의 몫이라고 늘 하셨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저 사이에 벽이 늘 가로놓여 있는 기분이었어요.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어렸을 때 물고 빨고 했던 건 아버지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게 어디 기억에 남았겠나요. 나는 왜 아빠가 어려울까 내적 방황을 하던 청소년기에는 서운함도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요. 가족내부에서 여러 위기를 겪은 후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죠. 중국에 다녀오고 나서 이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어머니는 사회적 기업 운영이라는 일을 하시기 시작하셨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조금씩 지지해주기 시작하셨어요. 사실 그렇게 지지해주시기까지 마찰도 많았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양복을 스스로 다려 입는 것에서부터, 요즘은 장 봐오기, 가족들이 먹을 반찬도 조금씩 하기 등 많은 부분에서 집안 일을 함께 해주세요. 밭 가꾸기도 취미로 하시면서 자식들과도 조금씩 대화도 하려 하시고요. 또 제가 저의 문제로 상담을 다닐 때에도 저를 끝까지 믿어주셨던 것도 아버지셨죠. 지금은 어머니가 직장에서 힘든 순간들이 있으면 아버지께 주로 털어놓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 보려고 하실 정도로 어깨를 내어주시기도 하세요. 저는 이렇게 행동의 변화를 보여주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결심을 하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기까지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행동의 변화는 '주변 환경'의 변화 덕분인 것도 있지만, '스스로'의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이것만큼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내 주변의 여성과 함께하기'에는 여러 형태가 있으니까요. 가장 간단하게는 '대화'부터가 시작이죠.


    예를 들어, 저는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이후에 남동생과 집에서 가끔 치킨을 시켜먹을 때 소소한 행복을 느껴요. 둘 다 지금은 이성친구가 없어서 가능한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그날 하루는 어땠는지, 힘겨운 일은 없었는지, 뜻깊은 일은 무엇이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거든요. 이렇게 가만가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졌던 시간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일상 속에서 겪는 불편이나 좋고 싫음도 공유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대화'라는 시도는 '가족 관계'를 떠나 다양하게 뻗쳐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여자 친구, 아내, 여자인 친구, 여자인 직장 동료, 여자 직원, 여자 상사 기타 등등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고 교류하는 모든 여성들... 그런 여성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고, 여성도 '함께' 이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있음을, 그들도 이 사회의 한 구성원임을 자연스레 느끼는 거죠.


    그래서, '여성들과 함께 하기'를 세 번째로 꼽고 싶어요.



넷 째. '부양의 책임'도 나누고, '양육의 즐거움' 역시 나누기

(아내와의 맞벌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육아 휴직 제도 충분히 활용하기)


    편견에 맞서는 일은 쉽지 않아요. 그리고 그 편견들은 외부에도 있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마음 속으로 스멀스멀 들어와 우리 내면에 우리도 모르게 자리하고 있을 때도 많죠. 저희 아버지도 어쩌면 '가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분이셨고, 그런 편견에 휩싸인 세대 중 하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엄마에게 들어 충격적이었던 사실이 하나 있어요. 바로 제 여동생이 태어나던 해에 '엄마께서 일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결국 어머니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셨다는 사실이에요. 사실 당시의 시대 흐름에 따르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여자라도 경제 활동을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저에게, 엄마가 그 기회를 포기하셨던 것은 꽤나 큰 충격이었어요. 게다가 언젠가 제가 '꿈이 뭐였냐'고 질문 드리자, '외교관'이라고 답하셨던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자 왠지 슬퍼지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요즘도 주로 아이가 생기면, 육아 휴직을 사용하거나 심지어 퇴사까지 고려하는 쪽은 주로 '엄마 쪽'인 경우가 많았구요.


    하지만 이런 선택은 되려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회사를 그만 두시고 나자, 아버지는 '부양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짊어지셔야 했었고, 다섯 식구를 온전히 아버지 혼자 먹여 살리셔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셨습니다. 물론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게 보편적이지만 저는 그 보편적이라는 기준에 대해서도 한 번 다시 되짚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가장의 무게'에서 '가장'은 대체로 아버지여야만 할까요? 왜 '어머니'는 가정을 위해 팔을 걷어 붙이고 함께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요? 물론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책을 보면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뒷바라지 해 소일거리를 통해 쌈짓돈을 모으시는 어머니의 모습도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여자가 소극적으로 '돕는' 혹은 '뒷바라지 하는' 모습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과 같은 시대에는 남자와 여자가 비슷한 수준으로 교육 받지도 못했고, 자연스레 화이트 칼라 직종에서 여성이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비중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다르잖아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여성의 대학 진학율이 남성의 대학 진학율을 앞질렀고, 그 이후 매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입학하는 것으로 입학율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태에요. 하지만 이 격차가 취업률에까지 완전히 반영되지는 않습니다. 여자 대학생과 남자 대학생의 취업률 '격차'가 매년 줄어드는 추세인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결혼, 출산, 가사 노동, 유리 천장 등으로 인해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여성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지금처럼 '교육의 평등'이 성별에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이처럼 일부 성별만 '노동의 힘겨움'을 짊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 '덜 힘들 수 있도록' 힘겨움을 나누면, 그 이후의 즐거움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섯 째.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앞에 '성평등을 위해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을 언급하는 부분에 있어서 다양한 여성 리더 분들의 이야기를 전달했었는데요, 그 때에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로는 "궁극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를 들었어요. 


    왜 여성들은 '궁극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야' 할까요? 물론 여성들도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라는 타이틀을 단 이유는 '시스템'을 바꾸려면 여성들은 우선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것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채용 절차에서부터 여성들은 차별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업이나 기관 등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고 바꾸어야 하는 '높은 자리'에서는 소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스템 바깥에 존재하는 경우죠. 반면에 남성들은 다르잖아요? 이미 남성들이 존재하는 위치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이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는 곧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스템 안'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그런 '시스템 안'일 경우에는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까요? '시스템 밖'의 사람들을 더 '시스템 안'으로 데리고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어요. 함께 성장해 나가고픈 여성 동료나 후배가 있다면 그녀가 때로 더 높은 목표에 욕심을 낼 수 있도록 지지해주며, 그녀의 편에 설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당연히 그 여성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직 내에서 본받고 싶은 리더가 여성이라면 (또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경우는 많지 않겠지만) 그 리더가 계속 해서 그녀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지해 줄 수 있습니다. 그녀의 삶 앞에는 이제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은, 무수한 난관들이 펼쳐질 것이지만, 그녀 한 명이 당신의 도움으로 그 난관들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 이겨내는 순간순간들은 모여서 그녀 뒤를 따라올 수 있는 무수한 새싹들에게 그 다음의 가능성도 열릴 것입니다. 또한 그 여성 동료나 그 여성 리더가 내 여자 친구, 아내, 여동생, 누나는 아닐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일 아니라면, 그럴 만한 여성 동료를, 여성 리더를 찾아보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노력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것'에 있어서 인식도 개선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남성들은 '나 자신'에 대한 인식부터도 바꿀 수 있습니다. 앞의 챕터들에 걸쳐 이야기했듯이, 남성들부터도 한층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영화 <500일의 썸머>, <인셉션> 등에 출연했던 배우 조셉 고든 래빗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별에 따라 자기 자신을 규정짓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되고 싶은 무엇이든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당신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남자 아이이건, 여자 아이이건 말이예요. 어떻게 자기 자신을 정의하고 싶든지 간에,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독특하기 때문에 어떤 범주도 한 사람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요. 조셉 고든 래빗의 말처럼, '남성'임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을 '남성'이라는 성별 안에 가둘 필요는 없습니다. 남성들도 어느 때고, 언제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면서 변화에 대한 용기를 지속적으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8년 간 미국을 이끌었던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이야기로 이 챕터를 마무리 해볼까 합니다. 인도네시아와 하와이를 오가며 활동했던 강인한 인류학자이자, 사회 활동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로 유명한 오바마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 준 가치들은 내가 정치에 입문한 이래로 계속해서 나에게 하나의 표준이 되었다"고 할 정도였는데요, 그의 짧은 에세이를 함께 들여다보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저는 많은 시간을 제가 누구인가, 세상은 절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저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보냈습니다.  

    사회로부터 그 모든 남성성에 대한 메시지들을 받아들이는 건 실로 간단한 일이었고, 저는 남자로서 옳은 길과 그릇된 길이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전 터프한 남자나 쿨한 남자가 되고자 하는 제 생각들이 저 자신이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건 제 불안한 젊음의 징후였던 것입니다. 제가 제 자신이 되기로 결정한 후부터 제 삶은 한층 더 편안해졌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약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딸은 얌전하고 아들은 강하게 키우는 사고방식을 계속 바꾸어가야 합니다. 딸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과 아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질책하는 것을 바꿔야 합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심판하고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보상하는 사고방식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길이나 온라인에서 여성들을 일상적으로 희롱하는 것을 용인하는 태도를 계속 바꿔야 합니다. 여성의 존재와 성공에 의해 남성들이 위협을 느끼도록 가르치는 태도를 계속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남성들이 기저귀를 갈 때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대신,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는 이버지들에게 오명을 씌우고, 일하는 어머니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태도를 계속 바꾸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자신감, 경쟁력, 야망을 가진 여성을 백안시하는 태도를 계속 바꾸어야 합니다. 유독 여성과 유색 인종 소녀들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문화를 계속 바꾸어야 합니다."



    21세기의 페미니즘이란, 모두가 평등할 때,
우리 모두가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남자일 때,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에는 5가지가 있다고 정리해 드리고 싶습니다. 1편에서는 '나에게 먼저 물어보기'였다면, 2편에서는 '타인과 함께하기'가 그 내용이었습니다.


<나에게 먼저 물어보기>

     첫 째.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과 같아도 좋은가?' 물어보기

     둘 째. '내가 만일 사회적 약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물어보기


<타인과 함께 하기>

      셋 째. '여성'들과 함께 하기

     넷 째. '부양의 책임'도 나누고, '양육의 즐거움' 역시 나누기

     다섯 째. 궁극적으로 결국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물론 제가 제시해드린 이 다섯가지 방안도 정답은 아닙니다. 글을 쓰는 제 자신이 '남자'가 아니기에 정확히 '남자' 입장이 어떠한지, '남자'가 느끼기에는 어떤 측면에서 노력하면 정말 좋을지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는 어떠했으면 좋겠고, 어떻게 실천하면 좋겠다를 제시해 드릴 수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래서 만일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리고 읽고 계신 당신이 남성분이라면, 당신의 멋진 의견도 들어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



정말 성평등을 원하고,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우리는 남성으로서 어떤 일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제시해드린 실천 지점들 말고, 성평등을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들에는 또 어떤 행동 지점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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