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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셸 Michelle Jan 13. 2019

당신이 남자라면 할 수 있는 일  - (1)

나에게 물어보기 ; 성평등을 위해 우린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여자와 남자는 함께 자랐어도 다른 교육을 받아 온 적이 더 많았죠. '여자는 여자답게 자라야 해'만큼이나 '남자는 남자답게 자라야 해'는 때로 무거운 숙제였고요.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성평등에 있어서도 남성과 여성이 있는 운동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일 때가 많았다는 것이예요. 그리고 이 불공평한 기울어진 운동장은 여성들을 끌어내리면서, 남성분들에게도 궁극적으로는 피해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앞 단원들을 통해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해도 '나의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신경을 잘 쓰지 않아요. '성평등'이 남성분들에게 큰 문제로 부각되지 않는 이유도 그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와는 거리가 먼,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요? 나는 '나의 일'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고통을 받든 말든 상관없이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인가요? 혹은 정말 '성평등'이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인가요?



    그렇지 않죠. 우리의 마음 속에는 누구나 나와 다르게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측은지심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불의를 보면 더 강한 자의 쪽에 붙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할 게 아니라, 약한 자의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용기도 가지고 있구요. 물론 과거에 비하면 여성은 더이상 무한한 '약자만은' 아니예요. 어떨 때 보면 '약자의 프레임'으로 여성들을 모두 바라보고 있지는 않나,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아직 많은 부분 성별에 있어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예요. 특히 '직장 내 성평등'에서는 여전히 피해자일 때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할 수 있어요. 또 세상이 한층 더 나은 곳으로 바뀌어 나갈 수 있는 것은 목소리를 내는 작은 용기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남성분들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작은 용기들을 보태 주실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용기는 결코 작은 데서 멈추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성들도 불공평함을 느끼는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용기가 될 테고, 그 불편함들을 벗어나 결국은 모든 성별에게 더 나은 세상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여성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남성들이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또 여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 또한 남성들이 할 수 있죠. 결국 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것은 엄청난 기업가나, 부자들, 권력자들만이 아니예요.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평범한 남성들,' 즉 아빠들, 삼촌들, 오빠들, 남동생들, 결국은 '모든 남성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행동 방식들을 이번 편들에서 살펴보도록 해요 :)



성평등을 위해 우린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남자라면 할 수 있는 일

- (1) 나에게 먼저 물어보기


     첫 째.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과 같아도 좋은가?' 물어보기


     둘 째. '내가 만일 사회적 약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물어보기




첫 째.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과 같아도 좋은가?' 물어보기


    사실 이 질문은 원래 이 질문이 아니었어요. 책 '맨박스'의 토니 포터는 책장들이 다 덮여갈 때쯤 다음과 같은 말을 하거든요. '결국 그래서 당신은 당신같은 남자와 당신의 딸이 결혼해도 좋겠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반문하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 말이 굳이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결혼'을 생각한다면, 또 '관계 맺기'를 생각한다면 여자도 비슷한 질문을 할 수 있고, 스스로에게 해야만 해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건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선행되어야 하는 거니까요. 여자도 여자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죠. 내 아들은 나와 같은 여자와 결혼해도 괜찮은가?라고요.


    그래서 원 질문을 약간 비틀어봤어요.'내 딸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과 같아도 좋은가?'라고요. '내 딸'은 '내 아들'만큼이나 귀한 존재예요. 그런데 아직 이 세상은 '내 딸'에게는 '내 아들'에게 만큼이나 안전한 곳이 아니예요. 이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이 세상에서 옷을 조심해서 입고 다녀야 하는 것은 내 딸이고, 혹시 모를 몰카를 주의하며 공중 화장실에 마음 놓고 드나들지 못하는 것도 내 딸이예요. 위험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원룸에 혼자 자취하게 된다면 그 위치가 너무 공공연하게 알려져서도 안 되고, 밤 늦게 택시 타는 것도 주의해야 하지요. 여행을 다니는 것도 내 딸이 혼자 간다고 하면 망설이시지 않겠나요? 내 아들에게는 모두 당연한 '자유'인데도 말이예요.


    뿐만이 아니예요. 내 딸은 아마 꿈도 많을 거예요. 나는 내가 못 해본 것들, 겪어보지 못한 것들, 이루지 못한 것들을, 그래서 그것들 때문에 괴로웠다면 그 괴로움 대신 더한 행복을 누리게 해주려고 나는 내 딸에게 많은 것들을 아낌없이 주려고 노력할 테니까요. 함께 즐거운 시간들도 보내고요. 그렇게 내 아이는 잘 클 거예요. 아마 내가 잘 키웠기 때문에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을 거고, 경험해보고 싶은 것도 많을 거고, 알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겠죠. 그렇게 사랑스럽게 클 거예요. 나는 열심히 해왔으니까요.


지금의 세상을 내 딸에게 추천할 수 있나요?


    하지만 세상은 어떤가요? 내 딸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을 곳인가요? 지금의 세상을 내 딸에게 추천한다면 추천할 수 있겠어요?


    아 물론, '지금' 이 세상보다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은 당연히 좀더 나을 수 있겠죠. 우리 윗 세대보다 지금 우리 세대가 더 나아졌듯이요. 여성이라고 차별하는 상사들도 '지금보다는' 줄어들 거고, '지금처럼' 여성이 받는 고통도 조금씩 줄어들 거예요.


    하지만 그런 세상도 거저 오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런 세상이 올 수 있게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많지 않아요. 지금 당신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거예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예요,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고, 당신은 할 수 있는 힘을 이미 가지고 있어요.


    그럼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둘 째. '내가 만일 사회적 약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물어보기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난 걸까?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라고 어렸을 때 문득문득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특히 초등학교 때는 과학 시간에 글라이더를 뚝딱뚝딱 만들어와 교내 대회에 참가하는 남자아이들을 볼 때나, 사춘기가 시작 되었을 무렵, 중학교에 들어가서 점심 시간이면 공을 차고 땀을 뻘뻘 흘리고 들어오는 남자 아이들을 볼 때면 간혹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와 왜 그 모습을 부러워했지?라고 반문해 보니, 저는 단순히 그 행위만이 부러운 게 아니었어요. 그럴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게 부러웠던 거였어요.


    우선 저는 칭찬 받는 여자아이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단정해야 했고, 단정하기 위해서는 남자 아이 같은 행동은 했으면 안 되었어요. 단정하다는 말에는 여러 뜻이 있었는데요, 품행이 바르고, 성실하고, 지나치게 호들갑 떨지도 않으면서, 올곧아야 하며,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등 여러가지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단정한 아이가 되려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행위들에는 제약이 생기더라고요. 남자 아이들처럼 왁자지껄 하게 떠들어서도 안 되고요, 남자 아이들처럼 운동장에서 뛰어 다녀서도 안 되었죠. (치마를 입고 있으니까요! 사실 뛸 수 조차 없죠.) 오직 뛰는 걸 허락 받는 시간은 때때로 바지로 갈아입는 체육 시간 뿐이었어요.


    화가 나더라도, 큰 소리로 누군가에게 소리 치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은 상상도 못 했어요. 참거나, 아니면 그 화를 삭여서 조곤조곤하게 말을 하거나. 상상해보세요. 화가 나서 얼굴은 울그락 푸르락 한데 입술을 씰룩이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어정쩡한 상태를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많은 족쇄들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어요. 남자 아이들은 저 위의 모든 행동들을 다 해도, 아니 하면 할수록 남자답다는 이유로 칭찬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남자 아이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편할까?'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어요.



    그리고 반대로 '지금처럼 태어나서 감사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죠. 두 달 동안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다녔던 대학교 3학년 초였어요.


    저는 학생문화관 앞 바자회에서 파는 치즈 케이크를 쳐다보며 뛰어가고 있었죠. 등에는 가방이 덜렁덜렁 달려 있었고, 양 손은 전공책과 노트북으로 가득했어요. 머릿 속은 복잡했어요. '오 맛있겠는 걸?'하는 생각과 '일단 다음 교시 수업을 위해서는 빨리 가야하는데, 아 겁나 수업 듣기 싫다!'라는 복합적인 생각이 동시에 들었거든요. 학생문화관은 열 몇 개에 달하는 돌계단 위에 있었고, 저는 돌계단 위에서 아래로 뛰어 내려오는 중이었어요. 그리고 운은 없었죠.


    우당탕.


    열 몇 개 계단 중 몇 개 만을 남겨놓고 그대로 굴렀어요. '수업 듣기 싫다'던 소망이 이루어지던 순간이었죠. 아찔한 순간에 주변 모든 사물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고, 바닥은 겨우 손으로 짚었지만, 왼쪽 발이 그대로 꺾였어요. 주변에서 '어머, 괜찮으세요?'하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치즈 케이크를 팔던 언니도 웅성웅성했죠. 덕분에 그 상태로 부축을 받아 다리를 질질 끌며 생활관 의무실로 가서 냉찜질을 받았고, 난생 처음 정형외과라는 곳을 들르게 됩니다. 그렇게 두 달은 조심해야 해서 왼 발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결과를 들었고, 저는 중고나라를 뒤졌습니다. 발 때문에 학교를 휴학하는 일은 제게는 상상도 못할 영역이었거든요. 그렇게 구한 휠체어에 두 달은 신세를 졌습니다. 마침 또 외부 봉사활동을 신청한 기간과도 겹쳤기에 휠체어를 타고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우리에게 매일 너무 일상스러워서 때로 지겨운 '지하철 타기'는 누군가에게 말도 못할 정도로 모험 천만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루는 봉사활동에서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어요. 2호선은 순환하잖아요? 마침 그 날의 2호선은 성수역에서 멈추는 성수행이었습니다. 지하철에 타기만 하면 모든 눈길이 제게로 와 꽂히는 것 같기만 한 기분에, 눈 질끈 감고 '연예인이 되었다고 치자'고 상상하면서도 지하철 타기가 매일매일의 힘겨운 통과 의례 같았던 날들이었어요. 매일 아침 속으로 오늘은 별 다른 사고 없이 다녀오자가 목표였던 날들에 마침 그 날은 성수에서 내렸는데요, 이게 웬 걸? 성수에서 나가려니 어디에도 엘리베이터가 보이질 않는 겁니다. (지금은 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당황했는지 보이질 않았어요.)


    '대체 이렇게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은 어떻게 이동하시라고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거지?'가 제게 든 엄청난 의문이었습니다. 다른 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찾기 어려웠을 뿐, 없었던 적은 없었거든요. 순간 머릿 속이 하얘지면서 온 몸이 하얘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어쩌지?'


    다행히도 그 날은 저를 다른 역까지 데려다주신 고마운 남성분이 계셨어서, 저의 당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어요. (그 밤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해져 집에 돌아와 벅차하면서는 그분께 카카오톡으로 치킨 한 마리를 보내드렸지요.) 하지만 두 달 간 휠체어를 타는 매일매일은 '내가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매일 하도록 했습니다. 또 그 상상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어요. 내가 만일 태어날 때부터 앞이 안보였다면? 혹은 귀가 들리지 않았다면? 등등. '내가 만일' 시리즈는 계속 되었어요.





    그럼 대체 이 이야기들을 '왜 지금 이 순간에' 꺼낸 걸까요? 제가 그런 생각을 했거나, 어쨌거나 저는 결국 제가 어떻게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어떤 부분은 제가 선택했지만, 어떤 집에 태어나거나,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거나, 어떤 성별로 태어나거나 하는 문제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운이 좋아서 '우리의 지금 현재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지난 달, '박정훈 기자님'을 인터뷰했을 때였습니다. '약자성'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들려주셨어요.


    "돈이 없을 수도 있고, 지역 차별, 학력 차별을 받을 수도 있고... 남자라도 다 강자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걸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죠.

    또 동등한 입장에서 동등하게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결과도 동등해야지 정상일 텐데, 고대 나온 사람들 30명, 10명, 몇 학 번 다 보면 여자는 다 가정 주부고 남자는 다 고위직이에요. 그 시대에 고대를 나온 사람이었으면 다 잘 살았을 거고 다 괜찮은 환경이었을 건데, 차이가 나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봐야하죠. 차별이라는 게 누구나 다 약한 부분이 있는데, 그 약한 부분에 대해서 확장을 시켜 나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런 것에서 이런 어려움을 겪었는데, 예를 들어 나는 학벌이 안 좋아서 취직을 못하는데 이 사람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취직을 못 하네? 이것 참.. 어떻게 보면 비슷한 처지라는 거죠.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받지 않는 부조리함이 있을 수 있는 거고요.


    사실은 자신의 약자성에서 출발해서, 나는 이런 점에서 부족해서 차별을 받았는데, 여자도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출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약자에 대한 차별'에 관한 이야기는 '여성'에게만 그쳐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삶이 있고, 그 삶의 무게와 형태와 깊이는 모두 다르잖아요. '자유'의 입장에서 사회의 불합리함이나 차별 때문에 절대적으로 한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어쩌면 '평범한 여자'로 사는 삶들에 부러움을 느낄 수도 있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게 소망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건 선택 밖의 일이었다고, 그래서 그 선택 밖의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연대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도 선택 밖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연대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부터 생각하는 것'이 되겠고요.


    그래서 한 번 이렇게 생각해보자고 말씀드려보고 싶어요.

    내가 만일 몸이 불편한 입장에서 태어났으면 내 매일매일은 어땠을까?

    내가 만일 성소수자로 태어났더라면?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났다면?


    그렇게 태어났더라면 매일 매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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