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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셸 Michelle Oct 19. 2019

[리뷰] 투박한 세상이 환해질 수 있도록

191018 [영화] '내 사랑'을 보고-feat. 모드 루이스의 생애

    몸이 너무 바쁘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서 인생의 새 챕터에 들어선 시기라 글이 많이 뜸했다.(는 이사~ 벗, 응~ 안물~! 케케케.. 사실 꾸준히는 꾸준히가 좋으니 핑계는 넣어두자. 하지만 그래도 나를 변호하자면, 새해 다짐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매일 글을 썼고, 아직 세상에 내보내기 민망한 것들은 작가의 서랍에 다 넣어두고 있다.)


    또 동료들,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며 채워 가는 일상 속 깨달음들은 시리즈 물로 내야 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도 들어서 내용들을 집 짓는 비버처럼 쌓아두기만 하다 보니 2달(?)이 훌쩍 지났다. (완성이 덜 되더라도 신선함이 살아있는 글을 내보내는 게 나은 걸까,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퀄리티를 생각해 오래 보완해 글을 내보내는 게 나은 걸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요ㅋㅋㅋ 개인적으로 나는 아직 후자이지만, 때로는 전자로 마구 글을 써지르고(?) 싶기도 하다.)


    여하간 '나찾글' 이후로 정식 글을 쓰기는 오랜만이다 :)


    요새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조커를 보고 나서는 참담한 마음을 추스르는 데 꽤나 걸렸는데, 이 영화는 잠시 조커도 떠오르게 하면서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이라는 측면에서) 묵지근한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브런치에는 영화 감상 잘 안 올렸던 것 같은데? 처음인가? 하여 오랜만에 명화 소개를 해드리고 싶다. :)


    포근한 분위기를 Fully 느끼고 싶으시다면, 잠자기 전 조명 조도를 약간 낮추고, 되면 캔들도 켜둔 상태에서 가만가만 읽어 내려 가시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초반 도입부를 쓰는 내 눈꺼풀이 자꾸 침대로 가자 한다..안 됏! 요놈들.. 헤롱헤롱..)







출처 : 매일 경제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버려질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관절염과 굽은 등, 저는 다리 등 몸이 불구였던 그녀는 하늘은 말고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다. 오빠로부터 버려져 숙모 집에 얹혀 살고, 제 한 몸 제대로 건사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누누이 들으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산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동네 잡화점에서 ‘가정부 구함’이라는 쪽지 하나에 의지해 외딴 집을 찾아간다. 어부이자 외로이 살고 있는 한 남자의 집이었는데, 남자도 예상치 못한 여인의 등장에 처음에는 놀라고, 받아주지도 않는다. 어딜 가나 사람 한 몫도 제대로 못 할 것이라 여겨지던 그녀. 이번에도 쫓겨날 뻔하지만 작고 여린 불구의 몸으로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일을 조금씩 해나간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녀의 맑고 순수한 예술적인 영혼은, 낡고 더러우며 좁디 좁은 시골의 작은 집에서 맑고 투명한 새싹처럼 움트기 시작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내 사랑’이라는 아련한 제목과 영화 포스터에서는 세월에 다소 푸석해진 에단 호크가 손수레를 끄는데 그 안에 탄 여인이 밝게 웃고만 있길래, 그래 이거다! 갑작스레 추워진 가을 밤에 딱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 솔직하자. 절절한 로맨스를 기대했다.


     하지만 웬 걸, 초반 1시간은 투박한 앵글과 색채, 화면 바깥으로도 흩날릴 것 같은 흙빛 먼지들로 영상이 가득해 로맨스는 펼쳐질 개미똥구멍도 안 보였다. 아니 이걸 계속 봐야 돼..? 와 별점이 높은 데엔 연유가 있겠지..? 를 오가다보니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점차 모드의 붓끝에서 시작되는 선명하고 해사한 물감색들로 화면이 살살 살아난다.


출처 : 일다 미디어


    1시간 55분의 러닝 타임이 끝나자 마음이 묵직하면서도 충만했다. 모드와 모드 남편(에단 호크 분)의 로맨스 뿐만이 아니라 모드의 세상을 향한 사랑 덕분이다.





    사실 모드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을 보면 모드는 예술적인 기질을 품을 수도, 펼칠 수도 없는 게 더 맞다.


    모드가 지나쳐온 삶의 결들은 모드에게 하나같이 가혹했기 때문이다. 피붙이로 있던 가족은 친척에게 자신을 돈 주고 버려 버리질 않나(말은 맡겼다지만..), 불구의 몸으로도 댄싱 바에 가보고 싶어 외출했다 들어올라 치면 숙모에게는 핀잔과 한심함, 걱정 가득한 눈총을 받는다.


   어떻게든 독립해서 살기 위해 택해 본 가정부 일은 녹록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남자도 보통 무뚝뚝하지 않다. 게다가 오랫 동안 외로움 속에 홀로 지냈다 보니 사람 대하는 태도도 영 별로고, 심리적으로 꼬여 있기 까지는 덤이다.


    성격이 이런 데다 처음에는 이 작자(?)와 사랑을 하게 될 줄 몰랐을 정도로 모드에게 가혹하며, 무시하기까지 한다. (속으로 ‘모드, 도망쳐!’를 외쳤으나, 모드가 도망칠 곳이 없음을 금방 깨닫고 시무룩해진 채로 영화를 계속 봤다..)


출처 : Arts & Disability Ireland


    헌데 모드는 그 상황을 유연히, 때로는 지나치게 순수해서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슬기롭게 헤쳐나간다.


    섬세하지만 막힘 없는 붓터치로 그림 그리기라는 작은 행복을 조각씩 모아가고, 처음으로 이웃에게 카드를 팔며 그림으로 돈을 벌기 시작 한다. 물론 점점 펴지는 그녀의 생에도 마음 한 켠에는 말 못할 응어리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낳자마자 죽었다는 그녀의 딸이다.



    다만 모드는 슬픔에 의연하게 대처할 줄 안다. 크고 작은 슬픔들에 묵묵히 아이같은 심성으로, 알록달록한 원색 물감으로 덧칠한다. 그림 그릴 종이가 없을 때 집 안 벽면에 작은 꽃들과 새들부터 그려 넣기 시작하던 붓 터치들은 점점 확대된다. 모드는 계단 참과 토스터기, 선반과 의자 할 것 하나 없이 집안 전체와 구석구석, 심지어 밖을 내다보는 창문까지도 알록달록한 화단으로 변모 시킨다.


    그렇게 외부와 거의 단절되다 시피 한 외딴 시골 집은 환상적인 요정의 꽃밭처럼 변해 간다. 모드는 종이 판대기, 화판 할 것 없이 그림을 그리게 되고, 모드의 그림은 점점 입소문을 타더니, 급기야는 예술 애호가들을 넘어 미국의 닉슨 대통령까지 소장하고 싶은 그림이 되어 뉴스에 나온다.



    다만 인생 전체에 걸친 먹구름을 다소 극복하는 듯 보인 모드의 삶에는 잠시 다시 그림자도 드리운다. 그 뉴스를 보고, 집을 나간 모드에게 숙모가 다시 연락하는데, 연락을 통해 늘 마음에 묻고 살았던 딸은 알고 보니 오빠와 숙모가 좋은 집에 팔았다는 것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부족하나마 서로 의지하며 지내던 남자와도 다툼 끝에 별거하게도 된다.



출처 : SBS 연예 스포츠


    물론 영화의 끝은 해피 엔딩이다. (로맨스 영화는 그러라고 있는 거 아녀..? 암튼)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잔잔한 감동과 따뜻함으로 마무리 되어 이들의 마무리를 더 상세히 쓰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나의 모습도 돌아 보면서 부끄럽지만 감사하기도 했다.



    감사할 일이 많고, 이미 가진 것이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문득 통근이나 이직 등 세상 살이로 마음이 힘들 때면 내 배경 탓을 하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이 조금 더 잘 살았더라면 내가 편했을까? 내가 첫째가 아니었다면? 나도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었더라면? 기타 등등... 겉으로는 착한 척 하면서도 내면 깊숙이까지는 떳떳하지 못하기도 했다.



    모드는 비록 몸이 불구였지만, ‘암탉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기억해 주고 싶어서요’라고 벽면에 닭을 그려 넣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혼이라니..! 그녀는 주어진 게 없었고, 주어진 것들은 다 비뚫어지거나 망가진 것들이었음에도 불평없이 자신의 삶을 피워 나갔다.



    반면, 따뜻한 집, 아직 건강하신 부모님, 또 건강한 동생들과 언제든 나의 연락을 반갑게 받아줄 친구들. 나는 가진 것이 많아도 때로는 가지지 못한 것들에 무기력해 하거나 노여워 했고, 가지지 못한 것들만 아쉬워 하며 남들과 비교했다. 어떤 부분은 영혼의 불구자였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모드에 대해서 검색해보고, 그녀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게 되었다.



(아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모드의 그림 몇 장. 하지만 일단 영화를 보고 감상하기를 더 추천하는데~ 잔잔한 여운과 감동 때문에.. 하지만 더 감상해보고 싶다면 여기를 눌러보시라. )

출처 : http://www.hani.co.kr/arti/PRINT/864517.html



    어린 아이가 그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뭉툭하고, 알록달록한 모드의 그림들. 그녀가 작은 체구였기에 그녀가 주로 채운 화판은 작은 사이즈였지만, 모드는 그녀가 보고 있는 세상 모두를 담고 싶어했다. 그 세상은 누군가의 눈에는 한적하고 단조로운 어느 시골의 풍경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드에게는 그렇게 단조로운 일상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소중했다.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남편의 모습, 소들이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 고양이들이 꽃밭에 노니는 모습, 새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모습 등 전부가 세상에서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 행복이자, 기쁨과 환희였다.



    ‘나도 글을 쓰고 싶고, 예술을 하고 싶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글로 아직 돈을 벌 수도 없는 걸? 글로 돈 벌기가 쉬운 줄 알아?’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러면서 ‘글로 돈을 벌려면 일단 잘 써야 하는데, 그렇게 잘 쓰려면 얼마나 열심히 해야하고,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하며 지레 겁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게 모드는 예술을 대하는 태도 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알려주었다.



    ‘돈이 없어 화판이 없다’는 것은 큰 장애물이 아니라는 듯, 집안 전체를 꽃 밭으로 만들어 버린 모드.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생각 따위 없이 자신의 소중한 기억으로 다채롭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상을 담아냈던 모드.

    낯선 남자까지 자신의 남편이자 평생의 동반자로 맞이하며 사랑 깊은 영혼으로 교감하던 모드...



    이상해보이기만 하는 모드를 창틀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던 남자의 시선이 떠오른다.

    창문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보면서 경탄하고, 창 밖을 하염 없이 보던 모드의 시선도 떠오른다.


출처 : LA Times


    결국은 우리 주변의 것들은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른 게 아닐까?



    내가 삶에서 갖추어야 할 것은 그 어떤 풍파와 장애 속에서도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세상을 향한 사랑을 잃지 않는 태도’ 아닐까?



    세상을 지고 떠난 별에 마음이 아프고, 세상이 우리에게 던져준 시련에 용감하게 저항하지는 못하고 내가 지닌 상처를 다른 이에게 쉬이 무기 삼아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슬프지만, 모드라는 한 완벽한 여인이자 아름다운 영혼 덕에 조금은 따뜻한 밤이었다.



The End.



아 뽀나스 투척.



출처 : 일분카카오 - https://1boon.kakao.com/mk/5a24e38c6a8e510001c6e06c

    호리호리한 몸채에 까다롭고 꼼꼼한 면이 있을 것 같은 영화 속 여배우와는 다르게 작고 귀여우시고 포근한 느낌의 실제 모드 할머니.


출처 : cbc.ca

커텐이며, 할머니 주변을 둘러싼 온갖 화방 용품과 물감, 꽃이 가득한 앞치마, 바구니 등 사진 하나가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출처 : https://thinkwhimsical.wordpress.com/ (모드 할머니와 남편 에버렛 할아버지)

영화에서 에단 호크의 에버렛보다 실제 할아버지는 더 서글서글한 성품이셨던 것 같다. 다른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면 얼굴에 사람 좋은 웃음도 많으시다.


그리고 모드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8년인가 더 일찍 돌아가셨다는데, 그 사연이 참 아름답고도 감동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는 작은 집을 계속 지키셨었는데, 재산을 노리고 침입한 강도와 몸싸움을 하시다가 생을 마감하셨다고 한다. 하늘에서는 모드 할머니와 만나 다시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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