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작가 : 에스터 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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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정의한다면
#현재 하고 계신업무
#일하고 계신 분야의매력과 도전 의식을 일으키는 부분
#학업적인 선택
초등학교 한 교실을 떠올려보자. 어느 반에나 꼭 한 명씩, 선생님께서 무슨 질문을 던지면 ‘왜요?’라고 되묻는 학생들이 있다. 그런 학생들이 있으면 선생님한테는 수업 진행이 어려울 수 있지만, 반전체의 즐거움 총량은 상승한다. ‘왜 해는 동쪽에서 뜨나요? 동생은 어떻게 태어나나요?’부터 ‘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데요?’의 질문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당황하는 선생님과 그 학생의 줄다리기는 나머지 아이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그 ‘왜?’라는 질문은 아무나 던지지는 못하는 질문이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신 이렇게 기존의 관점에 아무도 생각지 못한 새로움을 더 하는 몇몇의 창의적인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더 다채로워지며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뀐다.
그리고 에스더 채님은 내가 드린 ‘행복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에 ‘왜요?’로 응답하신 분이다.
저는 이 질문이 흥미로웠던 점이, 왜 이 질문을 했는지 궁금했어요. 원래 삶은 계속 행복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행복이라는 게 때와 장소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 을 추구한 다기보다는 ‘지금 순간에 무엇이 즐거운지’를 파악하는 게 저희가 계속 찾기 위해 노력하는 무언가 인 것 같고요. 아무도 ‘행복’을 정의 내리지는 못할 것 같아요.
‘행복이 뭐냐’는 질문에 돌아온 질문지 밖의 답이었다.
에스더 채님은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하시며, 작가로, 연설가로, 또 개인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1인 기업가로도 활동하고 계신 분이다. 한국에서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시고, 미시간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에서 연기와 연극학을 전공하셨다. 이후 Golden Reel Award, AFTRA Best Scene Award, 아시아 한류 스타상 등 국내와 미국을 넘나들며 다수의 수상을 하셨고, 미국 드라마 NCIS와 Law and Order : Criminal Intent, 웨스트 윙, The Shield 등 다양한 작품 속에서 활약을 펼치셨다. 또 '그리하여 화살은 날아가고'라는 1인극과 1인극을 책으로도 편찬하신 작가시다 3 Heart Production이라는 제작사의 대표시며, Net KAL 과 TED의 멤버로 계신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해오신 분은 어떤 분이실까? 또 다른 곳도 아닌 미국에서 ‘어떻게’ 배우를 하고 싶으셨을까?
처음 에스더님께 연락을 드렸을 때, 메일로 인터뷰 승낙과 함께 개인 홈페이지와 테드 토크 동영상을 받았다.
>> 개인 홈페이지 :)
>> TED Talk : 브루스 리가 죽지 않았다면?
(What If Bruce Lee Didn’t Die) | Esther K. Chae | TEDxPhoenix
열어 본 영상 속에는 엘레강스한 흰색 드레스를 입으신 에스더 님이 강단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강단 위로 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에스더 님은 마치 신의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시듯 우아한 목소리로 그 목소리와 소통을 했다. 대체 이 정체불명의 장면은 무엇이지? 남자는 정말 신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브루스 리’로 통용되는, 이소룡의 음성이었다. 에스더 님의 토크는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음성과 화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알고 보니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인종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이런 기발한 토크 형식으로 전달할 수 있구나! 감탄하며 끝까지 영상을 시청했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앞서 말했던 ‘왜요?’를물을 수 있는 사람, 혼자 ‘아니요?’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 우리는 이렇게 창의적인 사람들을 집단으로 묶어 ‘예술가’로 통칭한다. 캔버스에 점 하나를 찍고도 그 점에서 비롯된 무수한 세계를 상상력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사람,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세상에 없던 아름다움 한 줄기를 세상에 더하는 게 예술가라면, 예술의 갈래는 넓고도 깊다.
그리고 오늘은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작가, 프리랜서 프로젝트 개발자로 예술성을 발휘하고 계신 ‘에스더 채’님의 삶의 이야기이다.
에스더 님과의 약속은 산타모니카 해변 근처의 호텔에서 잡혔다. 숙소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였기에 이동을 위해 우버를 이용했다. 가던 도로 위에서는 영화 촬영용 트럭을 발견했다. LA는 역시 영화 산업의 도시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구름이 조금 끼었지만 해만 살짝 가릴 정도로 딱 좋은 날씨였다. 산타 모니카 해변은 은은한 햇살에 푸르게 넘실댔다.
에스더 님은 신비로운 포스 속에 환한 미소, 아이 같은 해맑음을 동시에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또 영어가 더 편하시다 보니 대부분의 답변을 영어로 해주셨는데, 질문마다 답변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하시며 우아한 목소리로 답해주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행복’을 정의한다면?
아마도 영어와 한국어 뉘앙스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는 것 같긴 한데요. 행복을 “Joyful”(기쁘고 즐거운 것)로 생각을 한다면, 이 상황에서 뭐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삶이 바빠지거나, 사회에 트렌드를 좇고 있다면, 젊은 여성분들이 ‘반추’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주변 소음들을 자제하고, 미디어를 많이 자제하면서, 본인들에게 재밌고 즐거운 게 뭔지 인지할 수 있으면 그게 참 좋을 것 같아요.
#현재 하고 계신 업무
배우로 일 하고 있어서요, 이번 금요일에는 ‘크리미널 마인드-비욘드 보더’의 보이스 오버(한국인 목소리 사운드 트랙) 녹음하는 오디션을 보러 가요. 그리고 CAL State University, Northridge에서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고, 글도 쓰고 있어서요. 취미를 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네요. 시간이 나면 요가를 가요.
시간이 많지는 않다고 하시면서, 에스더 님은 요즘 시간이 많지 않은 이유를 보여주시기도 했다. 바로 얼마 전에 태어난 딸아이 사진이었다. ‘요즘 제 가장 큰 프로젝트라서, 시간이 정말 없어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너무 예뻐서 행복하시다는 표정이 온 얼굴에 가득했다.
보이스 오버라고 하면 어떤 녹음이신 건가요?
우선 일반적으로 뒷 배경으로 나오는 목소리를 녹음하는 건데요, TV쇼나 영화에서 흐름이 더 사실적으로 되도록, 반나절이나 한 나절 동안 녹음을 해요. ‘루핑(Looping)’이라고 해서 재밌는 작업도 하는데요, 장점 중 하나는 화면에 굳이 나오지 않더라도, 일반 배우들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독특한 형태의 산업이고,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죠. 보상이나 혜택이 같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연기 외의 부업으로 그 일을 하고 있어요.
(루핑:프로덕션 사운드 트랙에서 손상이 되거나 하여 살릴 수 없는 음향 부분을 영상 이미지에 맞추어 속도와 감정을 조절하여 재녹음하는 작업의 일부)
TED fellow, 3 Hearts 프로덕션 대표, NetKAL Fellow 등 다양한 활동과 함께 현재 배우로 일하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활동하고 계신 건가요?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미국에는 연기 조합들이 있어요. 연극배우 조합들도 있고, 영화나 TV 배우 조합들도 있어요. 그래서 계약 내의 우리들이 생각하는 인디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시스템 내에서 오디션이 나오면 저의 매니저가 오디션 정보를 주고, 인터뷰에 나가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그걸 잘 해서 오디션을 따내게 되면 세트에 나가서 촬영을 하는 건데요. 지금 10년 동안 많이 상황이 바뀌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공평해지기도 했지만, 다른 면에서는 기회가 많이 없어진 게, 제 매니저와 광고 에이전트가 있는데요. 물어봤더니 광고 같은 경우에는 1000에서 4000대 1로 경쟁률이 높아져서요, 오디션을 따는 게 훨씬 힘들어졌다고 해요.
제 경우를 설명을 드리자면, 기본적으로 할리우드에 나가서 촬영을 하는 고용 배우가 본업이고요, 다른 방면으로는 생산하는 예술가(Generative Artist)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모든 배우들이 두 일을 동시에 하지는 않는데요, 저는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에서도 일을 하면서, 제 글도 쓰고, 제 프로젝트도 개발을 하는 그런 커다란 두 갈래 길이 있어요. 그래서 제 나름의 생산적인 작업들을 하면서 더 독특한 기회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 거죠. 어딘가에서 초청을 받아서 강연을 하게 된다던지, 한국의 문화예술위원회(Arts Council Korea)에서 초청을 받는다던지. 그건 꼭 제가 할리우드 배우라서가 아니라, 글도 쓰고, 연기도 하고, 학생들도 가르쳤기 때문에 그 덕에 TED Fellow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거죠.
3 Hearts 프로덕션은 어떤 건가요?
프리랜서, 연기자로 일하지 않을 때의 모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프리랜서로 일 할 때의 제 프로덕션 회사예요. 연극 작품이 출판된 것도 3 Heart Production 하에서였고요.
최근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가요?
현재로서는 제 딸아이가 가장 큰 프로젝트고요. (웃음) 제 마지막 프로젝트는 “So the Arrow Flies”라는 제 연극이 2015년도, 아이가 태어난 같은 주에, 한국에 책으로 출판이 된 거였어요. 아기가 태어나서 신경을 잘 못 썼지만, 그게 제 개인 작업 중에서는 가장 큰 일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1년 정도를 쉬면서는 아이를 돌봤고, 이후에는 학교에 나가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고요.
또 요새는 미디어 트레이닝과 트레이닝 컨설팅(Mediatraining & training consulting)을 해주는데, 세포라의 직원들을 훈련하는 일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지속적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 이후에는 온라인 뉴미디어 드라마 시리즈 가이던스(Online NewMedia Drama Series Guidance)라는 시리즈가 있어서 그곳에 에스더라는 역으로 나와서 촬영을 들어갑니다. 또 TED X Talk로 인해 스피킹 에이전시(Speaking Agency)에서도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일하고 계신 분야의 매력과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
최근에 제가 친구 연극 대본을 읽었을 때 좋았던 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험이라는 거였어요. 배우는 사람들에게 보지 않았던 부분을 ‘저런 감정 이입을 넣어서 저렇게 표현할 수 있고, 저런 스토리 라인이 있구나’를 보여주게 되는 거니까 좋죠.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단체로 모여서 작품을 만들어나갈 때 굉장히 아름답고, 재밌고, 매력적으로 느껴지죠.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만드니까. 특히 배우는 누군가의 아이디어나 작품, 환상, 꿈의 상징이 되잖아요. 원래 있는 보이지 않던 것을 영화나 무대에 보이도록 재현하는 게 배우니까요.
챌린징 한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비즈니스 사이드에서의 면모예요. 아까도 보셨듯이, 만약에 마지막 순간에 결정이 나면 그 날 하루의 일을 다 조정을 해야 하니까, 좋다가 나빴다가 하는 게 있죠. 배우라면 마치 응급실에 있는 의사처럼 늘 대기상태여야 하는 거예요. 주말만 빼고요. 다른 하나는 체력이에요. 신체적인 체력이나, 감정적인 체력이나, 심리적인 체력이나. 체력 관리가 가장 중요하죠. 어젯밤에 아기 때문에 잠을 충분히 잤느냐에 상관없이 촬영장에 가면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인터뷰 당시에는 ‘라라 랜드’가 개봉하기 전이었지만, ‘라라 랜드’의 ‘미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리우드의 성공한 여배우가 되는 꿈을 꾸며 ‘미아’ 역시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보며 영화 제작 스튜디오 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만을 본업으로 삼기에는 퍽퍽한 현실일 수 있다. 창의성을 발휘하면서도, 어떻게 생계를 꾸려 나가시는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스크린 뒤 배우들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에스더 님께서는 자세한 설명으로 그 새로운 세계에 초대해주고 계셨다.
그렇다면 이렇게 배우이자 작가, 예술가의 삶을 걸어오시기 전에 에스더 님은 어떤 학업적인 선택을 해오셨을까?
#학업적인 선택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시고, 미시간 대학교, 예일 대학에서 연기, 연극학을 전공하신 걸로 보았습니다.
학부 때는 어떤 전공을 하셨나요?
불문과였어요. 영어를 어려서부터 한글과 같이 사용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영문과는 너무 쉬울 것 같았고, 다른 언어를 배워보고 싶었어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학점에 맞춰 가야 했으니까요. 또 불문학에 관심도 있었고요. 고대 캠퍼스에 방문을 했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실제를 몰랐죠. 캠퍼스 내에 여학생 화장실이 많이 없는지는 실제로 잘 몰랐어요. (하하하하)
사실 고등학교 생활을 생각하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집에서는 부모님께서 다 서포트를 해주시는 편이었는데, 학교만 가면 혼나고. 운동도 잘 해서 운동회에도 나가고 했는데, 동아리 활동을 너무 많이 한다고, 반장이 그러면 안 된다고 불려 가기도 했죠. 창의성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힘든 환경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요. 튄다고도 혼나고요.
에스더 님도 학점에 맞춰 대학을 선택했다는 게 신기했다. 또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학창 시절부터 활발한 학생이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이었다. 에스더 님도 질문이 많은 학생이셨을까. 그러면 인문학 전공 학생에서 어떻게 배우의 길로 접어드셨을까?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학문적인 선택을 해오셨나요?
아주 간단한 이유였는데요. 한국에서는 연기나 창작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고려대학교를 다닐 때 제 기억으로는 한국 내에서 처음 호주로 교환학생을 간 학생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교환 학생을 갔을 때, 연기, 영화 등을 하다 보니 거기 계신 교수님께서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재능도 있고, 굉장히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미국에는 네가 공부를 하고, 정식으로 학위도 받을 수 있다고 하셔서 인터넷이 없었어도 알아보게 되었어요. 다 직접 메일링을 해서 일일이 입학 관련 문서들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연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 모놀로그니 뭐니 오디션을 볼 기본 정보도 없었어요. 그래도 일단 이론 석사를 하자고 생각을 해서, 미시간 대학교나 하와이 대학교에서도 장학금을 받았는데, 미시간을 갔죠. 지금 생각해보면, 왜 아주 추운 미시간을 갔는지, 차라리 하와이에 가서 따뜻하게 놀 걸이라고 후회도 해요.(하하하하) 그리고 제 논문 교수님께서 아프리칸-아메리칸 연극 작법을 하시던 분이셨는데요, 너무 좋은 교수님을 만났어요. 그 교수님께서도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석사생이지만, 네가 정말 무대에 서기를 원하니까, 교수님께서 가셨던 예일 드라마 스쿨(Yale Drama School)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추천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준비를 하고, 오디션을 봐서, 나중에 그쪽 드라마 스쿨에 입학하게 된 거죠.
그런데 사실은 이 계통에 있기에는 가방끈이 너무 길긴 해요. 아무도 학위를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거든요. 이런 학업적인 패스를 선택한 데에는 한국적인, 보수적인 마인드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집에서는 당연히 대학원을 가는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어쨌거나 이런 실기 석사가 있구나 해서 가긴 갔는데, 학문적인 것 외에도 제가 직접 LA나 뉴욕에서 바로 배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던 거예요. 그런 면에 있어서는 이렇게 공부했던 기간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를 보는 버퍼링 기간이 된 거죠.
에스더 님의 특별한 꿈 뒤에는 그 꿈을 응원해주는 교수님이 존재했다. 연기를 해본 적이 없었던 에스더 님은 좋아하는 길이 있었는 줄도 몰랐지만, 호주라는 새로운 환경에 놓인 이후, 이후 은사님의 격려로 배우의 길에 처음 접어들었다. 또 학업적인 선택을 해나가시면서, 현장에서의 경험보다 학문적인 경험을 많이 하시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에스더 님께 이런 경험들은 차곡차곡 모여 지금의 에스더 님을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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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서 창조적인 힘을 유지하시는 방법
#진로나 삶의 멘토
#배우나 작가가되기 위해 학부 때부터 하면 좋을 준비
#미국에서 배우가하고 싶다면
#하고 계신 일을학생들에게 추천해 준다면
#지향하는 가치
#지금 행복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