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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셸 Michelle Aug 23. 2021

에세이 | 비가 오는 밤입니다

21.08.23 - 일주일에 에세이/자기 계발 글 하나 발행 - 25편

안녕하세요 미셸입니다. :)

오늘은 정말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어요. 컴퓨터 앞에 계속 앉아 있는데도 마음도 산란하고, 정신도 잘 집중되지도 않고...


그래서 오늘 글은 그냥  오늘 밤, 지금 이 순간의 제 실타래 같이 엉겨있는 감정들의 글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일 년에 감성적이어질 때가 몇 번이나 될지 싶어 저조차도 생경합니다.


요새 분명 좋은 말씀들도 많이 듣고 다니고, 책 속 멋진 글귀들도 차곡차곡 읽어 내려가기도 하고, 마음을 복잡하게 하던 것들도 많이 내려두었는데, 오늘은 딱히 쓰고 싶은 글이 없어요. 글감들을 모아둔 노션 페이지는 있는데, 오늘은 그 페이지 안에는 들어가 보기도 싫었습니다. 보통은 그래, 잡았다 이 주제! 하고 써내려 가는데, 오늘은 글자들도 제 안에서 파업하는 날인가 봅니다. 주제도, 단어들도 만사가 다 어렵네요. 온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고,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온 세상에서 나 혼자인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더 싫은 밤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말 걸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오랜만에 철저하게 혼자인 건 너무너무 좋은데, 또 혼자인 게 너무너무 싫기도 한 거죠.


해야 할 일들과 수강을 끝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눈앞에 산더미처럼 있다는 걸 잘 아는데도, 그냥 오늘은 빈 화면에 깜빡거리는 마우스 커서만 들여다봅니다. 그냥 띄워진 다중 창들 다 닫아버리고 어디 안개 피어오르는 휴양림 같은 데라도 가버리고 싶어요.


어제 가지 못했던 등산 때문일까요? 아마 그럴지도요.


어제 밤새워 생각하느라 깨어 있어 몸이 피곤했기 때문일까요? 아마 그럴지도요.


중요하지 않은 업무들은 다 가지치기해냈으면서, 마음의 여유가 들어설 공간은 아직 다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아마 그럴지도요.


최근에 한 달간 감사하게 출석률 8-90%로 이어온 기상/취침 그룹을 잠시 쉬기로 마음먹으면서, (방은 유지하되 리딩은 좀 쉬는..) 저도 모르게 초반과 달라진 태도로 카톡을 보내는 저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제가 제 아쉬운 마음을 꾹꾹 외면하고 있기 때문도 있을까요? 아마 이게 가장 그럴지도요.


온기 가득 한 분 한 분 신경 써서 답장하던 다른 날과 다르게 내 마음이 이렇게나 빠르게 변할 수도 있다니, 무척 아쉬우면서도 제 스스로에게 제가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분명히 이렇게 저렇게 정이 많이 든 분들이었고, 감사했고, 마음 깊숙이는 함께 해주신 분들이 원하시는 것 그 이상으로 저도 그냥 이어나가고 싶은데, 저는 뭘 두려워하는 걸까요? 아마 오랜 시간과 신경을 쓰는 것만큼 괜히 나중에 더 힘들어질까 봐 미리 걱정한지도 모르겠고 제가 공부하고 집중해야 하는 것들에 방해가 될까 봐 신경 쓰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럴 때에는 삶에서 뭐가 정답일지 조금은 쉬운 선택법(?)이라도 있었으면 참 좋겠네요.


제 마음속 방어 기제가 작동해서 저를 차가운 껍질(?) 속으로 넣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렇게 저를 좀 바깥 시선으로 들여다보자니, 그냥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며 으샤 으샤 에너지를 내던 감사한 분들께, 제가 기운 드리고자 하면 하는 대로 따뜻이 받아 주시고 노력해주시던 분들께 정이 많이 들었었구나, 인정할 도리밖에 없는 것 같네요.


그만큼 더 나이 드는 어른이 되고, 기본이 단절이었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사소하지만 정감 어린 말들에도 금방 즐거워했다가, 언젠가는 다시 차가운 이성으로 돌아와 앉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문득 삶이 뭔지, 관계가 뭔지, 내게 중요한 일이나 가치는 뭔지 돌이켜 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얕고 넓은 관계에도 썩 만족했던 것 같은데, 요새는 글쎄요.


많지 않아도 깊고 좁고 튼튼한 관계들이야 말로 코로나에도, 각박한 세상에도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아닐까 싶은 거 보니 마음도 이제는 철 들고 여물어 가나 봅니다.


머리에 잘 들어오지는 않아도 그냥 최대한 앉아서 활자들을 읽어 내려가고, 유튜브에서 찾거나 추천받은 플레이리스트들에 귀를 기울입니다. 암막 커튼 밖으로는 찻소리도, 빗소리도 모두 들립니다.


별 시답잖은 이야기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만으로도 몇 시간을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친구들이, 온갖 말도 안 되는 몇 안 되는 단어들로도 함께 깔깔 웃을 수 있는 동생들이, 거대하고 말도 안 될 것 같은 상상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단짝 친구나 친한 언니들이…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시간을 재화나 자원으로 치환해 생각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까운 존재들이 무척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아, 어쩌면 그냥 비 오는 밤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별다른 이유는 없을지도요.






비오는 밤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어떤 노래들을 들으시고요?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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