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oughome 창업자 : 이정현(베로니카) 님
뉴욕에서의 마지막 하고도 하루 전 날이 밝았다. 마지막 인터뷰이님과의 인터뷰는 뉴욕 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하며 진행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뉴욕 거리거리에는 가을들이 내려앉아 있었고, 카페는 부티크 상점들이 개성 있게 놓여 있다는 소호에 있었다. 소호는 원래 공장과 창고가 많았는데 대공황 이후로 황폐해져 가난한 예술가들이 아틀리에를 여는 곳이었다. 감각 있는 예술가들이 갤러리도 열고 했지만 이후 임대료가 오르며 이들은 떠났고, 지금은 명품 브랜드 매장이 몰려 있어 뉴요커 스타일을 선도하는 ‘뉴욕 패션의 메카’로 불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반짝이는 것들이 많았는데, 우리로 치면 청담동 카페 거리와 같지 않을까 싶었다.
미국 일정에서의 마지막 인터뷰이 베로니카 님은 큐레이션(Curation), 협동(Collaboration), 창조(Creation)를 모토로 스타트업을 이제 막 키우고 계신 분이었다. 역시 링크드인을 뒤지다가 만나 뵙게 된 인연이었는데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어떤 분이실까?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는데 한 문구가 마음에 들어왔다. 파운더 소개 부분이었다.
“함께 성장하 자라는 신념과 다양한 "판",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 독립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을 지원”한다는 파트였다.
‘함께 성장하자’는 단어에 두근거렸다. 또 독립 창작자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의 “뉴욕 에이전시”라니?! 뉴욕에서 당당하게, 독립적인 아티스트들과 소비자들을 연결해주는 이 착하고도 감각적인 플랫폼을 한국 여성분께서 오픈해 운영하고 계시다니!! 내가 다 벅찼다. “비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또 초기 단계라지만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사이트를 성장시키실지 기대되었다. 게다가 베로니카 님은 이메일을 받은 후에, 현대 무용가이면서 자유로운 영혼이시라는 다른 학교 선배님도 인터뷰이로 소개해주시려고 했다.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뵙지는 못 했지만 이런 작은 호의는 당시 아무 근본 없이 허공에 이메일만 뿌려대고 있던 내게 큰 응원이 되어주었다.
함께 들어간 카페는 프랑스 남부 요리 전문점이라는데 분위기도, 식기들도 특징 있고 예뻤다. 종업원 아저씨도 말투에 부드러운 프랑스식 억양이 섞여 있었던 지라 프랑스에서 영어로 주문받는 기분이었다. 카페는 작고 깊었지만 아늑하고도, 아늑했다. 조도가 딱 초봄에서 초여름 햇살 느낌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런 작고 반짝이는 공간들이 뉴욕에는 더 많을 텐데 곧 일정이 끝나간다는 게 아쉬웠다.
식사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졌는데, 진지한 대화 소재들을 중심 있게, 하지만 통통 튀게 말씀해주신 인터뷰이님 덕분에 이야기는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베로니카 님은 웃을 때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히는 귀여운 인상의 인터뷰이 님이셨다. 또 학보에 나가는 글이냐며, 후배들을 더 이끌어 주시려는 듯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셨다.
베로니카 님은 전직 H&M 한국 지사 첫 오픈 멤버이자 VMD로 활동했다가, 이후 신세계 인터내셔널 갭 코리아에서도 VMD로 홍콩, 베이징, 서울의 매장들을 담당했다. 패션 디자인과 의류학과를 졸업하셨는데, H&M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일조했다.
어떤 과정들을 거치셨던 걸까? 또 어떤 가치와 세계관으로 살아오셨던 걸까? 큰 거리감이 생길 뻔했지만 알고 보니 베로니카 님께도 20대 때 심적으로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 아닌 남들과 비교도 많이 하고 그랬었어요.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면서 가치관이 점점 더 명확하게 바뀌었어요.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믿고, 상대적인 비교와 이기심에서 벗어난 삶이야 말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 얼마나 반가운 말씀인가!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폭풍 속에서 때로 불꽃 싸다구를 맞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이번 인터뷰에서는 어떤 벅참을 느낄 수 있을까, 이후 베로니카 님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게다가 알고 연락을 드린 것은 아니었으나 베로니카 님께서 계셨던 H&M은 우수한 조직 문화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H&M 직원들이 꼽은 회사의 가장 좋은 분위기 중 하나는 양성이 평등한 조직 문화였다. 여성 직원이나 임원의 비중이 높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스웨덴 본사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수평적으로 모든 직원들에게 해외근무 기회를 부여”하며, “다양한 직무 변경 기회도 제공해 직원 개개인의 성장을 돕는” 것도 H&M의 독특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참조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400457#csidx8a7a754f1c08eb89b390d3c7aabafc2
그렇다면 어떻게 H&M은 양성이 평등한 조직 문화를 갖게 된 것일까? 북유럽 스타일의 조직 문화란 건 어떤 것일까? H&M에서의 일했던 순간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베로니카 님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H&M에서는 제가 속한 부서의 부서장님이 벨기에인 게이였는데, 아무도 그 자체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차별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도 전혀 없고요. 여성과 남성을 뛰어넘어 더 멀리까지 포용하는 건데, 그런 부분이 양성 평등도 당연하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또 회사 직원들이 단체로 워크숍 같은 걸 가면 호텔에 출장 뷔페를 시키거나, 심지어는 회식 자리를 가 음식을 주문할 때에도 한 명 한 명의 취향을 다 취합하고 반영하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편의를 위해서 한 음식으로 무조건 통일하거나 상사분들 취향에 맞춰서 갈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H&M은 비건, 베지테리언 등의 다양한 취향들을 모두 존중해서 음식을 준비해요. 느린 과정이라고 해도요. 너무 좋지 않나요?
사소한 행동이지만 직원들의 개성이 저렇게 존중받는다면, 그런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기분은 어떨까! 또 다양성이 양성평등의 기반이 될 수 있다니! 너무나도 신선했다. 원래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할 뿐. 원래 서로 다른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처럼, 사실 여자와 남자가 동등하게 육아 휴직을 쓰거나, 승진에 있어서도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함은 ‘다양성’의 스펙트럼에서 보아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물론 베로니카 님께서는 두 회사 문화가 명백히 다른 점 중 하나는 업무량 차이도 있다고 했다. 한국 기업은 H&M의 업무량에 비해 10배는 되어 일손도 여유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직장 내 양성 평등에 관한 이야기는 ‘다양성’에서 끝이 아니었다. 이후 직장 내 남녀 성비와 여성 임원진들의 수, 기업 문화 등에 대해서도 베로니카 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당연한 상식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통찰들을 가져와주셨기 때문이다. 가녀린 분이신 줄로만 알았는데 또박또박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시려는 베로니카 님의 모습 속에서 올곧은 당참이 느껴졌다.
-1-
#현재 취미
#행복의 정의
#지향하는 가치
#담당하고 계신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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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지금과 같은 디자인 혹은 플랫폼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때?
#학업적인 선택의 배경
#학부 때 해오신 활동
#처음 글로벌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게 되신 때 #첫 직장을 선택하신 계기
#그때 하신 업무
#VMD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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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해결하신 방법
#처음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신 때
#담당하고 계신 업무의 매력
#가장 어려운 부분
#진로나 삶의 멘토
#스펙 경쟁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 패션 경영 (혹은 Visual Manager) 부문에서 일하고 싶다면?
#하고 계신 일을 추천해주신다면?
#지금 행복하신가요?
그럼 그 자세한 이야기는 2부에서 다시 나누기로 하며 다시 정현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현재 취미
#행복을 정의한다면?
#지향하는 가치
#담당하고 계신 업무
가장 먼저 아이스 브레이킹 겸 취미를 물어보았다.
# 현재 취미
취미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제 취미 자체가 마켓 리서치와 정보 수집이에요. 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리서치가 샵을 구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관심 있는 샵이 있으면 돌아다니다가 직접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서는 구글링으로 샵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내부 정보와 관련된 기사들을 다 봐요. 또 그렇게 구글링을 하다 마음에 드는 샵을 찾으면 직접 가보는 반복적인 일과예요. 일과 취미의 경계가 없어요.
빈티지 마켓, 앤티크 숍, 뮤지엄과 같은 일상에서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들을 좋아합니다. 여행을 다닐 때면, 브랜딩이 잘 된 부띠크 호텔이나 에어 B&B를 찾아 묵고, 그 지역의 뮤지엄과 갤러리, 플리마켓은 꼭 들러요. 특이한 점은 저는 TV를 집에서 없애서, 필요한 시사채널이나 다큐멘터리만 인터넷으로 시청합니다.
취미와 일이 합쳐진 분이라니! 보통 일이 끝나고 과부하된 두뇌에게 잠시 휴식기를 주기 위해 취미를 택하기도 하는데, 취미와 일이 합쳐지면 어떨까?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결국 일도 즐기며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경계가 없다고 하시지만 그만큼 매 순간이 즐거우실 것 같았다.
또 남들과 다른 게 있다면... 저는 TV 대신 만화는 매니아적으로 좋아하고 캐릭터 모으기를 좋아하는 거예요. 만화는 유튜브로 따로 봐요. 카툰네트워크 같은 데에서요. 혹은 꽂히는 만화 영화가 있다면 같은 것도 계속 봐요. 영어 공부도 할 겸 일할 때에도 만화를 틀어놓고 일을 해요. 만화 영어가 사실 굉장히 정확해요. 애들한테 보여주는 거니까. 대화도 너무 좋고, ‘We Bear Bears’도 진짜 재밌어요. 꼭 보세요. 캐릭터 모으는 건, 토이스토리의 라쏘 베어 아시죠? 제가 라쏘를 모아서 30마리 정도 있어요.
라쏘 베어를 다 추천해주시다니... 정현님의 눈에서 또리또리한 열정이 뿜어 나왔다. 자료 조사만 열심히 하시는 분일까 싶었는데 이런 귀여운 취미가 있으셨다니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져서 훨씬 좋았다. 그럼 운동은 좋아하시는가 싶어서 운동도 여쭤봤다.
운동은 원래 격렬하게 안 좋아하는 스타일인데요. 헬스장에서 이게 운동이다! 같은 격렬한 운동은 제가 못 하더라고요.
좋고 싫음이 뚜렷한 분이시구나 싶어 웃음도 나오고 공감도 갔다. 체력을 위해서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하지만 아직 나는 숨쉬기 운동과 걷기 운동이 제일 좋다. 정현 님께서는 격렬한 운동은 안 좋아하는 대신 스트레칭과 요가 위주의 가벼운 운동을 하신다는데, 뉴욕 브라이언 파크에서 하는 야외 요가 수업이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라고 하신 게 재밌었다.
그럼 이제 늘 여쭤보는 행복과 지향하시는 가치에 대한 질문을 여쭤보았다.
#‘행복’을 정의한다면?
행복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법이라고 생각해요.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불행해질 수 있으니, 행복은 스스로의 마음가짐 같아요.
또 저는 제가 행복하려면 뭔가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 몰입(involve)되어야 행복하다고 보아요. 지금은 이너프 홈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이 비즈니스가 발전을 하고, 뭔가 또 다른 게 나오고, 또 다른 게 나오고 하는 그 자체가 도전인데요,
지금 좋아요.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미국에 오니 제 주변이 갑자기 많이 바뀌었는데, 매 순간이 도전이고 힘들긴 하지만 그 안에서 또 행복을 느끼게 돼요.
행복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이고 '몰입'이라는 말씀이 참 좋았다. 또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법. 정현 님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보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신 점이 행복과 연결되신 게 아닐까? 매 순간이 도전이고 힘들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말씀의 울림이 컸다.
그렇다면 지향하시는 가치가 무엇일지도 궁금했다.
#지향하는 가치
“Simple Life is Happy” 저는 행복에 가장 큰 가치를 둡니다. 단순하게 살아요. 사람들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돈이나 명예 등등. 사람들마다 다 다르잖아요? 뭐가 맞다고 할 수는 없는데요. 내가 정해진 기준에서의 행복을 찾아야지, 저 사람은 저렇게 잘 되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비교를 하기 시작하게 되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해서 트럼프나 이건희처럼 되는 건 0.0001퍼센트인데 그렇게까지 안 되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불행한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는 늘 요구하는 게 있죠.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무조건 1등을 해야 하고, 성공을 해야 하고. 성공을 하면 돈을 많이 벌고, 이런 식으로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고, 그런데 그런 틀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거든요. 뭔가를 했을 때 점수가 나오는 건 대학교까지밖에 없어요. 사회에 들어가는 순간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평가받는 시대는 끝나는 거죠.
그렇다고 이 시스템만 탓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고요. 나 스스로가 바뀌어도 앞으로의 긴 인생을 70-80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스스로가 조금씩 바뀌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저는 생각해요. 개인이 학교 시스템을 통째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학교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니까. 개개인들이 결국 조금씩 다르게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또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간다고 하여도, 그 꼭대기는 그저 좁은 피라미드일 뿐이라서요, 피라미드 밖의 넓은 세상에 나와서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여쭤보고 다닌 분들 중에 가장 “모범 답안” 같은 답변이어도 너무 맞는 말씀이라 속으로 깊이 공감하고 박수치며 말씀을 들었다. 베로니카 님의 가치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가치’가 무엇일지 오래 고민하셨던 게 느껴졌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사셨기 때문에 지금처럼 혼자 외로운 싸움일 수도 있는 스타트업의 업무들을 헤쳐나가고 계실 수 있으셨던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또 무조건 1등을 해야 하고, 성공을 해야 하는 틀에서 벗어나 피라미드 밖의 넓은 세상에 나와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담당하고 계신 업무
이너프 홈 주식회사(Enoughome Inc.)의 창업자/아트 디렉터(Founder/ArtDirector)
Enoughome.Inc 단순한 공급자(supplier)나 중계업체(agency)가 아니라, 창작자들의 창작물을 새로운 유형의 제품으로 만들고, 한국에 있는 창작자들은 뉴욕 마켓에, 뉴욕에 있는 창작자들은 한국 마켓에 소개하거나 제품으로 개발, 판매하는 창구입니다. 단순한 ‘소개’가 아니고 ‘연결’해주는 네트워킹 플랫폼 브랜드가 되었으면 싶은 거죠. 특히, 신진 아티스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들에게 집중해서 새로운 기회 의장을 만들어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으로 융복합에 주목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 융복합과 컬래버레이션은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저희는 컬래버레이션에 집중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기 위해 실질적으로는 창작자들의 네트워크와 마켓의 바이어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매 달 새로운 콘셉트의 프로젝트와 재미있고 신선한 제품들을 개발하고 있어요. 2016년에는 모바일 케이스 브랜드인 MNNcase를 론칭해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온라인 샵과 편집 샵에 입점해서 지금까지 반응이 좋아요.
실례지만 사업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셨는지요?
플랫폼과 제품 제작에 있어서, 사업 자금이 크게 필요한 경우는 아니었어요.
뉴욕에서도 꾸준히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수입을 전부 투자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 소규모의 크라우드 펀딩 업체들이 다양하게 있어요. 올해는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해서 저도 사업 확장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런 프리랜서 일을 찾게 된 경로는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한국에서의 5년 경력이 자연스럽게 프리랜서 일로도 이어졌어요. 전 직장의 동료가 추천을 해주거나, 관련 분야의 분들과 꾸준히 네트워킹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결혼을 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제 거주 비자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업을 미국 국가에 자본적인 투자를 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비자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개인 회계사를 통해서 이러한 법적인 절차는 전문가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처음 낯선 땅에서 사업을 시작은 어떻게 할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까 싶어 마구 여쭤보았다. 한국에서 대기업들을 다니시다가 낯선 곳에서 스스로의 사업을 꾸리 시다니! 어떻게 이런 용기 있는 선택을 하게 되신 걸까? 그것도 뉴욕과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을 잇는 '큰 판'이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지만 커져 나가고 있을 것을 보며 얼마나 뿌듯하실까 싶었고, 뒷 이야기들에 대한 호기심이 일렁일렁 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