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미셸 Michelle May 08. 2018

[요약] 배민다움-(2)

배달의 민족, 브랜딩 이야기

배민의 내부 브랜딩


  단기적인 성과를 계속해서 보여줘야 하는 기업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고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배달업체는 많고 지금이라도 또 생겨날 수 있지만, 배민이 사람들로부터 각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배민스러움’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브랜드 정체성의 바탕이 B급 문화이든 키치든, 그 문화적 맥락을 이어가는 모습은 한국 기업으로선 보기 드물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겉으로만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로부터 스며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정체성이 내재화되고 체화되어야 한다. 배민 회사에 방문해보면 그들이 내세우는 문화가 사무실 곳곳에 배어 있고, 직원 개인에게도 체화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구글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무실 분위기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자 화제였다. 한국 기업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배민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배민의 정신과 가치를 체화시켜 나갔는지 그 과정을 들어본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프로모션이나 광고 등에 대해 잘 들었는데요. 예를 들어, 잡지테러 같은 광고를 그냥 재미만을 위해 만든 건 아닐 것 같은데요. 

  솔직히 잡지 한 페이지에 광고가 나갔다고 해서 사람들이 배민을 막 기억해주고 매출액이 눈에 띄게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요즘 잡지 보는 사람들도 줄었고요. 

  그런데 저희는 매월 하나씩 잡지를 선정해서 이걸 3년 넘게 하고 있어요. 잡지 광고는 마케터와 디자이너를 배민답게 훈련하는 좋은 방식이에요. 계속 ‘배달의 민족스러운 것’을 내부에서 만드는 작업이지요. 한 달 동안 저희 구성원들이 카피 뽑는 회의를 해요. 단톡방에서 계속 이야기하면서 배민스러운 게 뭔지 논의하는 거죠. 

이 훈련을 계속 한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체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해요. 브랜드 가이드 같은 것을 만들어놔도 직원들이 잘 안 읽잖아요. 하지만 잡지광고 아이디에이션 과정을 통해 나도 모르게 배민 브랜드를 내재화하는 거죠. 구성원의 마음이나 몸에 브랜드다움을 체화시키는 것이 브랜딩에서 가장 우선적 단계 아닐까요. 

  회사의 브랜드 정체성은 공기나 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 회사를 지배하는 거죠.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이버는 네이버다워야 하고, 애플은 애플다워야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그걸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36개 넘게 만들었죠. (잡지 광고 36개) 


  브랜드 개념을 체화시키기에 정말 좋은 방법이네요. 

 카피를 뽑아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계속 아이디어를 던지고, 까이고, 죽은 걸 살리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거 괜찮은 것 같아, 좋은 것 같아’하다가 더 다듬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딱 떨어지는 문구가 나와요. 그걸로 잡지 광고를 하는 거예요. 구성원들이 시나브로 ‘배민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리는 순간이기도 하죠. 

 카피를 뽑아내는 데도 가이드가 있어요. 욕설이 들어가면 안 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면 안 돼요. 재미있다고 해도 누군가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도 안 돼요. 그냥 경쾌하게 끝내거나 중의적인 의미가 들어가야 해요. 저희가 언어적인 유희를 시도하긴 하지만, 어떤 특정인을 비방하면서 재미를 유도하거나 뭔가 비꼬는 것은 하지 않아요. 그냥 모든 카피가 깔끔하게 떨어지도록 의도하죠. 보고 나서 유쾌하고 경쾌하다고 느끼면 돼요. ‘풋!’ 혹은 ‘아~’라고 저희끼린 표현하거든요. ‘풋! 하며 가벼운 웃음을 짓거나 ‘아~’하며 기분 좋은 깨달음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게 우리가 소비자에게 기대하는 반응이니까요. 


  브랜드 컨셉을 체화시켜라 

  내부 브랜딩. 많은 기업이 내부 브랜딩을 소홀히 여기는 편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배민의 경영방식에서 배울 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이 개념에 대해 다소 길게 설명하려 한다. 

  많은 기업들이 업의 개념이라든지 미션, 비전 등을 설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든 것이라도 그것을 액자에 걸어놓거나 홈페이지 첫 화면에 띄워놓기만 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회사 구성원에서 회사의 미션이나 비전을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핸드백 시장에서는 오랜 기간 MCM이 시장의 리더였으나 루이까또즈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MCM을 많이 따라가고 있었다. 이렇게 상승세에 있을 때 LQ가 MCM을 추월할 계기를 마련하고자 새롭게 ‘슬로건’을 만든다. 

  당시 MCM과 LQ를 비교하자면, MCM은 젊은 이미지를 표방하는 데 반해, LQ는 다소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약점을 뒤집어 보면 강점이 되는 법. 올드해 보이는 듯한 이미지는 성숙해 보인다든지 직장인 느낌이 난다든지 세련되어 보인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 느낌을 집약해서 그들은 ‘이지적(Intellectual)’이라고 표현했다.  

  MCM 디자인이 소위 블링블링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것처럼 밝고 현란한 반면, LQ디자인은 꽤나 점잖다. 그래서 눈에 확 띄진 않지만 늘 한결같아 쉽사리 질리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이런 점을 한마디로 ‘우아하다(elegant)’라고 표현하여, 브랜드 컨셉을 ‘이지적 우아함(Intellectual Elegant)’라고 정했다. 

본사 중역들은 이것이 바로 LQ가 지향하는 것이라며 매우 만족했다. 그리고 이 컨셉을 전국의 100군데가 넘는 매장에 전달했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를 일선의 판매원들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거나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LQ본사는 전사적으로 직원교육을 실행했다. 우선 ‘이지적 우아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당시 평창 동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해낸 나승연 대변인을 예로 들며 이지적으로 우아한 사람의 표상도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이지적 우아함이 깃든 행동은 어떤 것일까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아마도 많은 기업이 이쯤에서 만족하고 교육을 마칠지 모른다. 그런데 LQ에서는 1년에 걸쳐 본격적인 체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두 달 간격으로 여섯 꼭지의 과제를 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첫 꼭지에서는 두 달 안에 본인이 보고 싶은 공연이나 연극, 전시나 영화 등 문화행사를 보도록 했다. 그리고 그 공연에 나온 사람들 중에 ‘이지적으로 우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찾아내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적어내는 것이 과제였다. 물론 티켓은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했고, 과제를 잘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포상했다. 

  두 번째 꼭지에서는 두 달 안에 어떤 책이든 2권 이상 사서 읽도록 했다. 그리고 그 책에 나온 사람 중에서 이지적으로 우아해 보이는 사람을 뽑아 왜 그런지 적어내게 했다. 세 번째 꼭지에서는 길을 가다가 이지적으로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든지 스케치를 해서 올리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적도록 했다. 

그런 식으로 여섯 번의 결과를 발표하며 매번 크게 포상하자, 전국 매장에서 경쟁적으로 참여하여 그 열기가 뜨거웠다. 이렇게 1년을 하고 나니 직원들이 전화를 받을 때도 이지적으로 우아하게 받으려 애쓰고, 식사를 할 때도, 사복을 입고 다닐 때도 이지적인 우아함을 타나내는 것이 어느 정도 몸에 배게 되었다. 

  이와 같이 어떤 ‘브랜드 개념’은 소비자들에게 마케팅적으로 표현하기에 앞서 구성원들에게 우선적으로 내재화되어야 한다. 리츠칼튼 호텔의 유명한 모토인 ‘우리는 신사숙녀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사숙녀입니다’는 고객을 위한 슬로건이기도 하지만, 직원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다듬는 역할도 크다.  

  브랜드 개념이 구성원들 간에 공유되고 정신과 행동으로 체화되면, 기업의 역량을 집결하는 구심점이 되고 나침반이 되어 시너지를 창출하게 된다. 이러한 내재화 과정을 일컬어 ‘내부 브랜딩(internal branding)’이라 부른다. 


우리만의 서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독립된 전용서체가 있으면 비주얼 시스템의 일관성을 수월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고객에게 일관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임팩트가 강하다. 


  처음 배민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면서 저희의 키치한 느낌과 감성을 담자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7080년대의 키치함을 담은 폰트가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자료조사를 한 끝에 그냥 만들기로 했어요. 이젠 저희 회사 서비스의 대표적인 아이템이 글꼴이 됐어요. 

  여기저기서 많이 쓰면 우리 회사에 대한 입소문도 날 테니까요. 


  그냥 “수동바람”이라고 쓰인 부채 

  이 부채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나눠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강남역에서 알바들을 시켜서 뿌리자니, 계속 쓰지 않고 재미로 한 번 보고 버릴 것 같았어요. 사람들에게 이슈가 될 제품으로 남아야 했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반대로 이 부채를 사게 만들면 어떨까? 조금 더 재미있게 해보자는 생각에 소셜커머스(쿠팡)를 통해 판매했습니다. 박스 하나당 30개 총 333박스, 1인당 한 박스 구매 가능, 3000원에 무료배송. 이렇게 하니까 이야깃거리가 되더군요. 

  30개를 받은 한 명이 친구들에게 나눠줄 때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이게 배민 부채인데, ‘수동바람’이래, 웃기지 않냐?”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주기 때문이죠. 150만 원 예싼으로 만든 1만 3000개의 부채가 각각 다른 1만 3000개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이야깃거리가 얹어지면서 파급효과도 더욱 커졌습니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품질은 어떤가요? 

  흰 바탕에 한나체로만 썼기 때문에 디자인적 요소를 최소화했어요. 대신 제품의 퀄리티에는 신경을 많이 써야 했어요. 웃기게 생긴 사람들이 웃긴 이야기를 하면 당연하게 바라보잖아요. 그런데 잘 갖춰 입은 사람이 웃긴 이야기를 하면 반전매력이 있죠. 제품 퀄리티를 높이면서도 웃음을 선사해 친근함과 재미를 노렸죠. 


  브랜드가 성공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척도 중 하나가 짝퉁 아닐까요. 짝퉁이 많으면 성공한 브랜드겠죠. ‘나이키’가 정말 멋지니까 ‘나이스’가 나온 것처럼 말이에요. 저희 브랜드를 따라 한 것들 하나하나가 저희에게 훈장처럼 쌓인다고 생각해요. 


  사실 회사의 브랜딩과 제품 마케팅은 또 달라요. 브랜딩은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페르소나를 만들고, 정체성을 쌓고, 인격체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거잖아요. 마케팅은 반기, 분기 별로 실적이 나와야 하니까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게 아니라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해야 하는 거죠. 


  저희는 앱솔루트 보드카처럼 계속 갈 거예요.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무작정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가는 거죠. 그 시대 유행했던 것을 잘하는 사람은 잠깐의 인기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깊이가 없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스타일대로 꾸준히 자기 것만을 고집했던 사람들은 결국 자기 존재감을 나타내더라고요. 저는 그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배민이 지금이야 스타트업의 정석처럼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떨까요? 몸집이 커져도 배민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건 도전과제일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가장 강조하는 게 인터널 브랜딩입니다. 내부 구성원들은 원래 자신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친구들이어야 해요. 그런 친구들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계속 그걸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문화로 이어가야죠. 

… 

  모든 고민은 하나예요. ‘어떻게 하면 잘 팔지?’가 아닌 ‘어떻게 하면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들지?’인 거죠. 그래서 저희 구성원들은 정말 모두 배민스러워요. 저희끼리 다들 미친 사람 같다고 웃어요. 저희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인사관리하고, 코딩하고, 재무를 해요. 아까 얘기했다시피 레고도 디즈니도 자기만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거잖아요. 배민스러운 사람들이 모여서 계속 배민스럽게 일하는 것이야말로 인터널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믿어요. 일하는 직원들이 계속 배민을 사랑하게 만드는 거요.  


  마케팅이라는 게, 말하자면 내 생각을 사람들 사이에 던져주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그걸 보고 반응할 때 내 아이디어도 실현되겠죠. 우리는 소비자이기도 하고 기획자이기도 하니까 우리끼리 소비자의 반응을 볼 수가 있죠. 집단사고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배민의 목표와 김봉진 대표의 목표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하는 것처럼, 배민 직원 모두가 가장 많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목표나 비전이 있나요? 

  네. 저희 내부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게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자’는 거예요. 저도 창업을 하고 나서 기업이란 결국 무엇을 만드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기업은 서비스나 재화를 생산하죠. 그럼 그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졌는가를 따져보면 행복해졌죠. 어떤 관점에서는요. 

  그런데 100년 전에 비해 우리가 행복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답변을 못하겠더라고요. 100년 동안 세탁기, 자동차, 인터넷, 페이스북, 구글이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은 그냥 조금 더 편리해진 것 뿐이지, 행복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편리함과 행복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경영자들 중 많은 분은 기업이 사람들의 생활을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요. 

  저희는 일하는 방식, 일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믿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저희만의 새로운 회사문화를 하나씩 실현해보자고 이야기해요. 이게 저희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크게 느끼는 부분이기도 해요. 

  물론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진 않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으니까요. 하지만 뭐가 됐든 시도해본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아한 버킷리스트는 워낙 유명하죠. 처음 만들게 된 계끼가 뭐예요? 

  회사에서는 비전이라는 게 반드시 있어야 되는데, 대부분의 비전은 어찌 보면 너무 거창해요. 제 직장생활을 돌이켜볼 때 다니던 회사에 비전이 있긴 했지만, 크게 와 닿지는 않았어요. 동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큰 비전이어서죠. 그러면 조직 구성원들은 그 비전에 맞추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게 돼요. 자신이 조직을 위해 희생했다고 느껴요. 그래서 저는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싶었어요. 당신들이 만들고 싶은 회사는 뭐냐고 물어본 거죠. 

  굉장히 사소한 것들이에요. ‘한적한 곳에 회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원증이 있었으면 좋겠다’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그런 사소한 걸 하나씩 이뤄나가면서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잖아요. 자기가 희생하면서 회사 다닌다고 느끼는 것과 내가 말한 것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을 실감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예요. 개인적으로 작은 꿈들을 성공시키는 경험을 해봐야 계속해서 더 큰 꿈도 이룰 수 있다고 믿어요. 

  ... 가령 ‘금발의 외국인 미녀와 일하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는데, 여기서 금발의 외국인 미녀는 진짜 미녀가 아니라 글로벌 인재란 뜻이에요.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에 국내 인재들이 취업하는 것처럼, 해외의 유능한 인재들이 배민에서 일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올 만큼 회사가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뜻이지요. 

  사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꿈이지만 단기간에 이루기 쉽지 않은 꿈이겠죠. 그 친구 마음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주고자 워크숍에 금발의 미녀를 초빙하는 이벤트를 했어요. 대표인 제가 직접 금발 가발을 쓰고 금발의 미녀로 분장했죠. 


  사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거든요. 월급이 몇 백만 원 올라도 몇 개월 후에는 내야 할 카드 값이 또 많고, 좋은 차를 사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달 몰아보면 그 차도 똑같고, 좋은 집을 사고 싶어서 30년 동안 적금을 부어서 샀는데 다음 해에 죽고… 우리 주변에도 그런 일들이 빈번히 생기잖아요. 그 책에서는 큰 행복의 느낌보다 작은 행복을 느끼라고 말해요.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맛있는 음식을 먹으라는 거였어요. 그게 끝이에요.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는 거죠. 

  저는 그 사실에 크게 공감했어요. 그래서 회사 안에서도 소소한 이벤트, 소소한 행복감들을 느끼게 해주려고 노력해요. 가령 생일파티도 옆 사람이 생일 축하해주면 더 행복하잖아요. 회사의 KPI달성, 2000만 다운로드 달성, 월매출 몇십 억 달성도 축하할 일이죠. 하지만 우리가 회사생활하면서 밸런타인데이를 재밌게 보낸다거나 초복에 닭을 같이 먹는다거나 하는 작은 행복들이 더 즐겁고 재밌잖아요. 

  그래서 복지제도를 비용과 보상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측면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그냥 살면서 소소한 것들에 대해 자주자주 축하하고 기뻐하자, 그래서 만든 게 ‘피플팀’이에요. 


  피플팀의 역할?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소외되지 않고, 함께 나누고 즐길 일이 있으면 모든 구성원들에게 꼭 미리 알리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에요. 돈을 많이 들인 화려한 복지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끼리 올바르고 건강한 관계를 쌓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죠. 

  아주 사소한 것들일 수 있지만 구성원이나 개인, 배우자, 양가 부모님, 자녀들의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 등을 챙겨요. 돈을 쓰는 것도 아니에요. 일주일 전에 그냥 생일을 알려줘요.  '다음 주에 장모님 생십이십니다'라고요. 그 직원의 부서장한테도 같이 알려줘요, 다음 주에 이분 장모님의 생신이라고. 그러고는 그날이 되면 부서장하고 피플팀이 그 구성원이 오후 4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요.

  개인으로 보면 나름 중요한 날이잖아요. 그런 날에 회사에서 미리 일찍 보내줘서 자기가 장모님에게 무언가 챙겨드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은 훨씬 올라가겠죠.

  인간은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하루가 1/365만큼 쪼개져서 동일한 가치를 갖진 않잖아요. 어떤 날은 딸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처럼 가치가 큰 날도 있고 평범한 날도 있고요. 아무 일도 없는 날 야근하면 덜 서럽지만 결혼기념일에 야근하면 정말 심각한 거죠.


  배민의 대표로서 김봉진의 비전은 뭐에요? 10~20년 뒤에 그리는 개인의 모습이나 회사의 모습이 있어요?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인간의 삶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페이스북을 자주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하지 않잖아요. 처음에는 좋았겠죠. 옛날 친구들하고 얘기도 나눌 수 있고 내 얘기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스트레스 받잖아요. 글 올리면 내 친구는 ‘좋아요’를 적어도 70개는 받는다던데, 나도 50개는 받고 싶은데 못 받으면 서운해지지요. 

  냉정하게 말해, 기업은 자기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로는 인간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다고 봐요. 그래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일하는 과정의 즐거움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기업 문화를 만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화’가 중요하다고 반복적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배민이 하는 서비스 자체 때문에 다음 세대들이 더 행복해지고 좋아질 거라고 보진 않거든요. 하지만 다음 세대에 도움이 되는 문화를 남길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만든 문화 덕분에 세상이 좋아질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그 문화를 잘 만들어가는 게 이 회사에서 제가 가진 꿈이에요. 

  그 과정에서 얻은 이야기를 나중에 10년 정도 지나서 책으로도 남기고 싶어요. 그게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꿈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