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에서는 모든 물건과 동물들이 살아 움직입니다. 바닷가재도 오케스트라 지휘봉을 잡고 테너로 노래를 부르며 양탄자도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을 태우기 위해 날아오죠. 요즘 인공지능 음성 비서인 IT제품들보다 더한 혁신입니다. 게다가 음악들도 하나같이 명곡입니다. 어렸을 때 욕조에서 물장구치며 놀다가 콧노래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들은 모두 디즈니 음악들이었는데요, 이렇게 순수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디즈니도 종종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인종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냐, 여자 캐릭터들에게는 불공평한 대우를 해주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그것들이지요. 자라나며 세상을 바꿔나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회사도 이런 비판을 들을 때가 있네요.
그렇다면 왜 디즈니의 이야기로 이번 편의 문을 열었을까요? 때로 “꿈과 희망의 나라"로 그려지는 미국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미국도 꿈과 희망의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요.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유리 천장 지수는 19위 입니다. 유리 천장 지수는 노동 시장에서 성평등 발전에 평균을 제공해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유리천장지수는 여성을 고등 교육, 인력 참여, 급여, 육아 비용, 출산 및 육아 권리, 경영 대학 지원 및 고위 직장에서의 대표성 등 10개 분야의 지표에서 여성의 평등성을 평가하는 지수로, 이코노미스트에서 5년 째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시, 19위라는 지표, 미국이 받은 점수를 확인해볼까요? 맞아요,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낮습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저 역시 인터뷰 여정을 통해 미국 전체의 성평등 환경을 조사할 수는 없었으나, 제가 관심있게 들여다 본 ‘할리우드의 문제’와 ‘미국 기업에서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살펴 볼까 합니다. 전세계에 문화적 감수성을 불어넣고 있는 미국 대표 산업 할리우드와 세계 곳곳에 막강한 영향력들을 미치는 기업들의 이야기이니 주목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선 할리우드입니다. 할리우드는 미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영화 산업의 중심지입니다. 역사는 100여 년 정도로 길다고 할 수 없지만, 할리우드의 다른 명칭이 ‘별들의 고향’이듯 미국 영화계에서 출세를 꿈꾸는 별들은 모두 할리우드로 향합니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막강하고 또 중요합니다. 마치 작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손끝 발끝에까지 피를 보내주는 심장처럼, LA의 작은 지역일 뿐인 할리우드는 세계 곳곳에 할리우드만의 문화적 감수성을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할리우드는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 반영한 결과물들을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게끔 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할리우드에서 생산된 문화는 각국에서 소비되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줍니다.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이 의식보다 중요하다며, 학교에서 물속에 잠긴 빙산의 수면 아래부분을 무의식으로 비유하던 그림으로 보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한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받는 영향은 의식적으로 받는 영향보다 더 무서울지도 모르겠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미국 문화의 영향을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받는 나라 중 하나는 아닐런지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영화를 좋아하기로 소문난 국가입니다. 일인당 연평균 극장영화 소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도 해요. (한국에 무대인사를 하러 오는 어벤져스 일당들은 얼마나 신이 날까요!) 아무튼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 산업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날, TED에서 할리우드의 한 미국 여배우 나오미(Naomi McDougall Jones)가 당당하게 무대 위에 올라섭니다.
저는 20 평생을 배우를 꿈꾸며 자랐습니다. 스토리텔링을 좋아해왔고, 그 일부가 되길 동경해왔죠. 저는 똑똑하고, 강단 있으며, 복잡하지만 재밌게 복잡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 역할을 해보길 바랐어요. 하지만 정작 오디션장에 들어가보니 달랐습니다. 300여 명의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배우들과 경쟁하는데, 경쟁하는 역할은 이랬습니다. (여성) 말이 없음. 캐릭터는 발코니에 서 있기만 하면 됨. 외로워 보이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옷의 일부는 누드이다. (사라) 브라이언의 사랑 상대이다. 매력적이고 귀엽고 관능적인 그녀는 이상적인 소녀이자 필름 전체에서 브라이언한테 선물과 같은 존재다. (엄마) 참한 남부 출신의 어여쁜 아가씨, 평화로운 삶을 살며 삶의 유일한 목적은 남편을 돌보는 것이다. (애비)19세기 춤을 추면서도 집단 강간 장면을 볼만하게 찍은 후에도 멀쩡해야 함 ….
한 소녀에게는 얼마나 답답한 현실이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를 보고 자라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배우만을 꿈꿔 대학까지 연기를 하는 방향으로 졸업한 소녀에게 주인공은 커녕, 오로지 '대상화'되는 역할로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은요. 제2의 메릴 스트립을 꿈꾸며 자라온 소녀에게 오로지 누군가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거나, (물론 누군가를 잘 뒷받침해주는 역할은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집단 강간을 당하기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현지에 계신 교수님께서도 뒷받침해 주셨습니다. 밴더빌트 대학교의 비교문학 부교수님 신혜린 교수님께 여쭤봤을 때였어요. 교수님께 직접적으로 ‘여성’이어서 혹은 ‘동양인 여성’이어서 불편함을 겪으신 적이 있는지 여쭸더니 돌아온 교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가 하는 분야 중의 하나가 아시안 아메리칸 문학이잖아요. 직접적으로 차별을 겪는 경험은 별로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과 어려움이 어딜 가나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특히 아시아권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은 저희 주변의 미디어만 둘러봐도 온 사방에 널려 있어요. 누가 저에게 와서 노란둥이라고 하지 않아도요. 미국에서 TV만 봐도, 메이저 TV프로그램에 아시아인이 출연하는 비중이라든지,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맡게 되는지. 캐릭터 다이내믹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전개가 된다든지를 보면 보이죠. 화이트 워싱-동양인으로 설정한 극중 역할을 백인 배우가 맡는 것-도 아주 많고. 이런 예만 봐도, 당장 미국의 인종문제라든가 젠더 문제가 아직도 많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죠.
예를 들어 얼마전에 엑스 마키나라는 영화가 있었는데요, 인공 지능 로봇이 나와요. 감독이 인터뷰를 하면서 이건 로보트 얘기니까 젠더도, 인종도 없다고 하죠. 그런데 주인공을 보면, 알리시아 비칸데르라는 배우인데요, 주인공인 로봇 여자는 백인이고, 그 사이드 킥으로 등장하는 배우는 일본계 혼혈 배우로 등장해요. 그런데 그 배우는 말도 못하고 명령만 받고, 성노예로만 나와서, 굉장히 주변적으로 나와요. 사실 이 캐릭터가 하는 역할이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만 봐도, 할리우드에서 동양여성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알 수 있는 거죠.
우리 주변에 미디어라는 건, 현실을 표현하고 여과하는 방식이잖아요. 우리는 미디어 시대에 살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이 산재해 있는지 볼 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현실을 표현하고 여과하는 방식.’ 또 달리 말해, 미디어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해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 그리고 여배우가 표현했듯 어쩌면 미디어는, 또 할리우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고정관념들을 단순히 비춰주고 있었을 뿐일지도 몰라요. 그렇게 우리의 고정관념들은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었던 거지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같아서 헷갈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영화속에서 여자들은 비중 있는 역할을 하지 않고, 아시아 여성 인물은 ‘성노예’로만 비춰질 때 우리는 현실속 ‘여성’도 어쩌면 그렇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예요.
이렇듯, 미국도 완전한 나라는 아닙니다. 아직도 해결해야할 부분이 많은데요, (그렇다면 정말 성평등의 부분에 있어 앞서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싱가포르? 북유럽?) 하지만 미국도 우리나라보다는 나은 나라이며, 특히 ‘기업들이 노력하는 부분’에서는 엄청나게 앞서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번 편에서는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왜 미국에 비춰보면 좋을지 알아보았는데요, 따라서 다음 편에서는 어떻게 미국의 기업들이 노력하고 있는지,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들이고 있는 노력, 구글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눠볼게요.
다음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함께 알아두면 좋을 사실
1.
그럼 우리나라는 유리천장지수로 측정했을 때 어디에 위치할까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29위입니다. 전 세계에 약 150개 국가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양호한 편 아니냐고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교의 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OECD 국가 중에서는 꼴찌입니다. 꼴찌라도 뭐,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됩니다. 5년 연속일 뿐인걸요. OECD 국가 중에서는 여성이 일하기에 가장 좋지 않은 환경일 뿐입니다.
다른 분야에서는 어떨까요?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15% 언저리이며, 경영진에서 여성의 비율은 2%에 불과합니다. 전국에서 100명의 국회의원을 모아두면 15명이 여성이라는 뜻이고, 전국에서 또 다시 100명의 경영진을 모아 두어야 그 중 2명이 여성이 됩니다. 정말 적은 비율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함께 해보면 좋을 활동
2.
혹시 우리의 무의식이 너무도 쉽게 생성된다는 생각에 놀라셨나요? 그렇다면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영향력으로부터 여러분을 자유롭게 해드릴 수 있다면 어떠세요? 그럴 수 있는 재미있는 활동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앞서 말한 할리우드 여배우가 TED 무대에 오른 후 청중들에게 부탁한 3가지가 있습니다. 아니, 부탁이라기 보다 청중들이 함께 앞으로 실시하면 좋을 활동 3가지를 이야기했지요. 그 중 두 가지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한 달에 한 번,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를 봐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너무 어렵다고요? 그럼 앞으로 여러분들이 시청할 영화 속의 여성 캐릭터들이 정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관찰해 보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보세요. 여성 캐릭터들이 과연 몇 명이나 출연하나요? 그들은 무슨 옷을 입고 있으며, 혹은 옷을 입고 있지 않나요? 어떤 쿨한 액션들을 취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남성 캐릭터들을 뒷받침하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겁니다. moviesbyher.com라는 웹사이트를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여성 감독들의 영화를 모아둔 사이트인데요, 이 영화 사이트를 사용해서 영화를 봐도 되고 그냥 영화를 본다면 여성 캐릭터들이 어떤 모습일지는 주의 깊게 확인해보는 겁니다. 한 번 주의를 기울여 보기 시작하다 보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때로 돌아갈 수 없을 거에요. 눈에 보이는 것을 눈에 안 보이게 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 될 겁니다.
또 여러분이 보고 싶은 영화에 투자해 주세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비율로 나오는 영화에도요. 영화 <도둑들> <암살> 등을 제작한 최동훈 감독님은 여성 캐릭터들을 동등한 비율로 활용하고 또 다양한 캐릭터로 활용하기로 유명합니다. 그가 ‘도둑들’은 찍고 난 다음에 LA에 가서 영화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너는 왜 이런 영화 찍는데 여자를 네 명이나 넣냐”고 질문했습니다. 보통 한 명도 충분하거든요. “세상의 절반은 여자이니까요”라고 최동훈 감독님은 답변했습니다. 인상적인 답변이었습니다. 그래요. 세상의 절반은 여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절반을 영화 스크린에서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모두 우리의 손끝에 달린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활동은 당신이 여성 감독이라면 용기를 내어 영화를 만들어 줄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여성 감독의 목소리는 정말 소중한 목소리입니다. 그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용기를 내어 주세요.
* 위에서 언급한 나오미 양의 테드도 아주 볼만합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마치 현실 속 '헝거게임'을 짧은 시간 동안 관람하는 기분이에요. "할리우드에서 여성이라는 것의 의미"라는 영상인데요, 한 번 확인해보실 분은 테드 영상 전편을 확인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https://www.ted.com/talks/naomi_mcdougall_jones_what_it_s_like_to_be_a_woman_in_hollyw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