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2008년 10월 결혼하고 신혼부부로 7개월 여 살다가 남편은 워싱턴 DC로 떠났다. 우리는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기러기 부부가 되었다.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아기 소식. 가슴이 쿵쾅거렸다. 혼자서 임신 초기를 잘 보내야 한다는 긴장감도 잠시, 결론적으로 아기는 유산이 됐다.
늘 그랬지만 일이 많을 때였다. 그날은 토요일 당직 근무여서 출근을 했다. 과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남경씨, 오늘 당직이지? 내가 오늘 못 나갈 것 같아서 대신 언론 모니터링 좀 해주고 그거 보고서 좀 작성하고 그리고 급한 보고 건 있으면 바로 움직여 주고, 좀 부탁해!
그렇게 당직 업무를 하며 언론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더랬다. 오후 2-3시쯤 됐을까, 민감한 내용이 언론에 떴고 나는 부당직자에게 자리를 잠시 부탁하고 사무실로. 보고 내용을 뽑아서 윗선들에게 보고 한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 날 저녁부터 하혈이 시작됐다. 병원에서는 아기집이 안 보인다며 피검사를 하자고 하더니, 아이가 유산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3일을 쉬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가 조직되기 이전에 일어난 유산이었다. 몸에 큰 타격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온 첫아기는 바로 하늘로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그 와중에 명함러 너까지 끼어들 필요는 없잖아!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그 감정에 빠져있을 틈이 없었다. 큰 건이 터졌다. 입찰을 맡아 진행 중이었는데 입찰 거절된 업체에서 문제제기를 했고 그 가운데 담당자인 내가 있었다.
이 업체 사장(그의 명함 뒷면에는 수많은 직함이 적혀 있었다. 이름도 제각각 무슨 그런 모임이 정말 있긴 한 건가 하는 조직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대통령ㅇㅇㅇ 지지 산악회 회장' 같은 직함)은 노발대발하며, 담당자인 나의 업무 방식에 대해 청와대 신문고를 비롯 출입 기자들 모아서 까발릴 것이라고 난리를 쳤다. 병원에 누워있는 시간에도 전화는 빗발쳤다. 누워있는 게 더 스트레스. 하루빨리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결국 삼자대면을 해야 하나 했더니, 다행히도 그전에 그 업체의 진면목을 알아차린 예산집행부서의 담당자가 모든 오해를 풀고 일을 정상화시켜 주었다. 업체 사장은 내가 언급한 이야기를 자기 직원에게 잘못 전달했다. 일을 딸 수 있으니 프로젝트 준비에 돌입하라는 지시도 이어졌나 보다. 인력도 충원했단다. 당신이 일하자고 해서 준비했는데 입찰이 안되었으니 책임을 지라며 생떼를 부렸다. 심지어 그 회사 직원은 내가 어느 부서 소속인지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그들과 일한다고 했다고 우겨봤자 믿어줄 이가 만무했다. 일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갑상선 양성 종양
남편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어머님께서 나더러 목이 불룩하니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하셨다. 거울을 보니 목 아래가 불룩하게 부어 있었다. 갑상선 쪽에 혹이 생긴 것이었다. 병원을 가서 혹에 차 있는 혈액을 제거하면서 조직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양성 종양이라고 했고 일단 작게 만들었는데 다시 커지면 그때는 제거하는 시술을 하자고 했다. 남편은 떠났고 아기도 떠난 후, 그 종양이 커져 있는 것을 다시 보았다.
병원에 가서 간단하게 시술을 했다. 부분 마취를 하고 갑상선에 난 혹을 태우는 고주파 시술이었다. 뻐근하게 아파왔다. 하지만 할 만했다. 그리고 잠시 누워있다 퇴원을 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께서 와 주셔서 불안하지 않게 시술을 잘 마쳤지만 역시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혈액으로 조직 검사와 갑상선 상태를 검사하니 다행히 나쁘게 발전하지 않았으며, 갑상선 기능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약을 복용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불룩하게 나온 불안한 모양만큼은 나쁜 녀석이 아니었다. 그 정도인 것이 감사했다.
교통사고
그리고 한 달 여 시간이 지났다. 추운 12월 어느 날 아침. 원피스와 코트를 골라 입고 무릎까지 오는 롱부츠를 신었다. 출근할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 날 따라 자리 양보를 많이 했다. 내가 서 있었던 곳은 버스 운전자 뒤 쪽 좌석 2~3번째 자리 앞. 녹색 신호에 버스 전용차로에서 달리던 버스는 일반 1차선에서 미끄러지듯 오는 택시와 쾅. 부딪혔다. 택시는 좌회전 신호가 닫혔는데도 좌회전을 무리하게 시도했고 내가 타고 있던 버스는 직진을 하다 사고가 났다. 아침 7시 30분. 나는 서 있는 승객 중 제일 앞 쪽에 서 있는 승객이었고, 충돌하자 버스 앞 쪽으로 넘어졌고 내가 쓰러진 자리 위로 2~3명이 더 넘어졌다. 버스 오른쪽 앞유리가 와장창 부서졌고 곧 119 구급차가 도착했다. 외상이 있는 몇몇 승객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왼쪽 발목 안쪽이 부츠를 뚫고 까졌고, 왼쪽 무릎에 커다란 타박상을 입었다. 촬영을 해보니 십자인대 파열. 전치 6주 진단이 나왔고 나는 거의 4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바뀐 과 분위기
퇴원 후 새해, 첫 출근 날, 시무식이 있던 날, 눈이 많이 내렸다. 출근길이 더뎠다. 어떤 이는 차를 버리고 걸어왔다고도 했다. 직장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나는 8시 반이 되어서야 사무실에 도착했다. 과 분위기가 별로였다. 새해가 되었는데 과장이 우리 사무실에 그대로 있다는 것은, 그가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그 뒤로 전 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노트(우린 그것을 데스노트라고 불렀다)에다 뭔가를 열심히 기록했고 꽤 자주 집합을 시켰다. 아침 7시 출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문자가 온다. '전 직원 7시 50분까지 모이세요.' 회의 내용은 스트레스 해소용인건지, "월요일, ㅇㅇ씨, 왜 이건 이렇게 했나?","ㅇㅇ씨, 왜 이건 안 했지?" 뭐 이런 식이었다. 직원들은 할 말이 많았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병원 입원으로 사무실 분위기를 따라잡지 못했던 나는 과장에게 말대답을 하다가 과 차석이 발로 툭 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회의 후 직원들은 한결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퇴사 전 마지만 사무실 분위기다.
퇴직
더 이상 내가 꿈꾸던 비전을 발견할 수 없다 생각했고 남편이 해외 근무를 계속하게 되어 퇴직을 선택했다. 휴직도 가능했지만, 정부 중앙부처인데도 남편 해외 근무로 직원이 휴직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죽어있는 정책이었다.
Next step
나는 트리니다드토바고라는 나라로 갈 준비를 했다. 카리브해에 있는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북동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섬나라. 기름이 많이 나서 국가 GNP가 당시 우리나라와 비슷했던 나라. 2개의 섬, 트리니다드 섬과 토바고 섬. 그래서 국가명은 트리니다드토바고였다. 그곳에서 우리의 신혼생활은 이어졌다. 꿈과 같은 곳(지금 돌아보니, 더욱 꿈과 같은 곳)에서 우린 이내 첫 아이 J를 임신했고 남편의 외할아버지는 그 해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