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프롤로그)

로마인의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가 쓴 '남자에 관한 에세이'

by teagarden

해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불편한 일이 아니다. 내가 나고 자란 본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이 곳에서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이거든. 몇 달 전 베니스(내 영어 튜터)와 영어 수업을 하던 중에 노트북을 잡아당기다 뻑 소리가 났는데 그 뒤로 어댑터가 작동하지 않아서 노트북 일시 코마 상태를 맞이 했기 때문이지. 주문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새해가 되어 드디어 받게 된 만원도 안 되는 너 어댑터여 반갑기 그지없구나. 그래서 살아난 나의 어여쁘고 깔끔하게 생긴 노트북을 다시 켜니 그간 얼마나 정리를 안 하며 쓴 건지 바탕화면을 한바탕 쓰윽 정리하고, 생각난 것이 글쓰기, 그리고 바로 이어 생각난 것이 바로 너 브런치란다. 벼르고 벼르다 새 어댑터와 함께 기분 좋게 시작한 우리의 첫 만남. 글이 왜 이렇게 스르르륵 잘만 쓰이는 거니. 기분 탓인 거니.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를 검색했더니 왠 뜬금없는 대화 체니.

라는 분들께는 서론이 생뚱맞아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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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맞아도 싸~



아 그리고 보니 왜 신났는지 그 이유는 사실, 몇 권의 책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뱅기 타고 날아온 몇 권의 책 중 제일 처음 잡아든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다. 그녀의 에세이 책인데 웬걸. 유명한 작가는 뭐가 달라도 다른 거니, 사소한 남자의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재미나고 철학적으로 풀어놓은 책은 본 적이 없다. 세상에 나온 지 41년이 된 골동품 같은 책을 들춰보니 첫 장에 이렇게 쓰여있다.


보통인 남자를 보통이 아닌 남자로 개조할 수 없을까

헐. 없을 거 같은데? 뭐, 겉만 번지르르하게 바꾼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닌 거니까. 얼마 전 겟잇뷰티를 보니 요즘 젊은 남자애들은 눈썹도 다듬고 피부도 관리하고 화장도 하더라. 뭐 그런다고 그 사람이 옆에 두기 좋은 액세서리 같은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정말 내가 기대했던 혹은 존경하고픈 그런 남자 글쎄, 절대 될 수 없다에 한 표다. 보통이 아닌 남자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




한 40여 페이지를 읽어가는 중에 책에 대한 첫 느낌이 꽤나 신선하다. 왜냐고? 요즘 사람들의 글에서는 찾기가 힘든 어떤 단호함, 어떨 때는 경솔하거나 교만하기까지 생각이 되는 말투로 에세이를 썼거든. 아 단호박, 시오노 나나미! 우리 요즘에 이렇게 잘 안 쓰잖아. 누가 봐도 상처받지 않을 글, 누군가에게 호감을 주는 글쓰기를 배우잖아. 그래서 우리 사실 브런치 메인에 뜨고 싶어 하잖아! (제발 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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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여기서 잠깐 초반에 단호박 엘리트 시오노 나나미가 정리한 스타일 있는 사람은 다음과 같대.


1.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 경제상태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2. 윤리, 상식 등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

(이건 윤리 상식을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독자적이고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을 말해. 바로 용기 있는 그런 자!)


3. 궁상스럽지 않을 것.

(육체적으로는 비참한 인상을 주지 않을 정도면 되고, 궁상스럽다는 건, 마주한 이를 앞에 두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런 사람이래. 나도 이런 사람 질색이야!)


4.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성에 부드러운 눈을 돌릴 수 있는 사람.

(즉 그냥 인간적인 사람 말고, 진짜 휴머니스트!)




우린 이미 어쩌면 이런 사람들을 찾고 있는지도 몰라. 왜 반대로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한 사람씩은 있잖아. 나 저 사람은 이래서 정말 싫더라. 그 싫은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자기 색깔도 없고, 어떨 때는 궁상스럽고, 가볍기 그지없어서 묵직함이 없는 수다를 좋아하는 뭐 그런 사람 말이야. 나는 이상하게 내면에서부터 그런 사람을 좀 밀어내는 경향이 있더라구. 시오노 나나미는 그런 관점으로 이게 좋고 이게 싫다는 느낌으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신선하고, 조심스럽고, 가끔은 해괴하달까.




끝내기 전에 책 초반에 나오는 글을 옮기는 것으로 갈무리할게.


매력 있는 남자란 자기 냄새를 피우는 자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무슨무슨 주의주장에 파묻히지 않고 유연한 사람. 그러니 더욱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바로 그런 자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큰 선물일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달려야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안다는 것은 한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가 되어 누군가를 밝혀준다는 것은 더더욱 값진 것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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