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마지막 부분을 부여잡고 한참을 몰두해 있는데 큰 아이가 “엄마, 책이 엄청 재미있나 보다.” 란다. 상황을 파악해보니, 잠을 잘 시간이어서, 위층으로 올라가자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조선 명문가의 장녀로서 천주교도의 삶을 살았던 여인.남편을 잃고 아들과 떨어져 한평생을 제주의 관비로 살아야 했던 여인.
책을 읽는 매 순간 가슴이 아프고 저렸다. 자신이 가진 신념에 조금 더 집요하게 다가가서 그것을 삶으로 살아낸 여인의 삶. 숭고했다. 그리고 동경하게 됐다.
정약용의 조카, 황사영의 아내, 난주는 1801년 순조 원년, 천주학 사건으로 인해 남편을 잃는다. 심문을 당하던 중 난주와 난주의 시어머니(황사영의 모친)는 배교를 인정하며 살아남게 된다. 이후 제주도의 관비로 정배 되어 한양에서 제주에 가는 배를 타러 육지 끄트머리 어딘가에서 시모와는 헤어진다. 난주는 돌이 갓 지난 갓난아기를 데리고 추위와 싸우고 틈만 나면 들이댈 준비가 된 나졸들로부터 위험을 피해 가며 제주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제주도로 가는 길에 작은 섬 추자도에 배가 잠시 정박한다는 소리를 듣고 난주는 아이를 추자도에 버릴 작정을 한다. 너는 관비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남아 사람이면 누려야 할 평범한 삶을 살아다오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 이후의 이 여인의 삶은 노비로서의 삶이었지만 정신만큼은 고매하고 아름답고 생명을 사랑하는 귀한 여인의 삶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돌보는 삶은 생명을 낳고 사랑을 낳고 평화를 낳았다. 관비임에도 ‘한양할망’으로 불리며 입에서 입으로 칭송받은 동시에 나약한 한 여자였고, 자식을 생각하며 가슴을 뜯는 애절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이 책의 2/3 시점부터는 시간이 빨리 가서 마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책을 붙들고 읽었다. 난주가 살리기 위해 버리고 온 그 아들은 만나보고 죽었을까? 형벌로 늙은 나이에 지네굴에 내던져진 난주가 거가도에 정배 간 정방호를 만난 것은 꿈이었을까 생시였을까. 죽기 직전 생사를 오갈 때 꿈에서나 애틋한 마음을 전할까 그 마음을 늘 묻어두고 현실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온 그 평생의 빚진 마음의 짐을 나도 함께 나눠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난주의 삶은 내 가슴 깊은 곳에 그렇게 남았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만약 당신의 조혈모 세포가 누군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과 유일하게 맞아 기증을 의뢰받았다면 당신은 기증하겠습니까”였다. 처음 그 글을 읽고 생각해 본 적인 없는 다소 생소한 주제로 그 내용을 그냥 지나쳤다. 몇 시간 후 친구는 새 글을 올렸다. 본인의 일이라고. 본인의 조혈모 세포가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어떤 분의 것과 일치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투덜거려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던 나는 친구의 댓글에 울고 말았다. 기증을 결심했다고 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결정이었다. 그 후로 부당함, 두려움, 막연함, 생계를 잠시 중단하고 입원까지 해야 하는, 자기 몸의 소중한 것을 나누어 주는 일에 대한 하소연을 잠시 하긴 하였지만 난 친구의 그 결정이 감사했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잠시 아팠던 둘째가 떠오르며 그 환자분의 가족들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을까, 꼭 내 일처럼 울었다.
친구와 톡을 주고받는데, 난주의 삶이 떠올랐다.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의 삶을 소중히 여겼던 난주. 그녀에게 남은 것은 부유함도 아니요 건강도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을 살리고 소중한 가치를 몸으로 살며 전해준 그 삶이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우리는 누구나 다 특별하고, 어떤 삶이든 저마다의 향기와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친구를 보고 또 알게 된다.
이해인 수녀는 책 추천글에서 제주에 가면 난주라는 이름의 성당이 있는데 그녀의 삶을 알지도 못하고 그곳에 들어가서 기도하곤 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만나 그분을 알게 되었으니 이 책이 고맙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