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이어야 하는가.
첫째 아들이 새로산 뮤직 북을 열심히 눌러보고 따라하고 음악에 맞춰 춤도 추더니, 갑자기 칠판 위에 책을 붙여 보겠다고 분주하다. 실패. 계속되는 실패. 결국 아빠가 아이디어를 내며 도와준다. 그런데 책 무게에 비해 테이프가 참 힘이 없다. 계속되는 실패로 짜증이 나려는 아들에게 왜 굳이 그걸 벽에다 붙여야 돼? 라고 물어보니, 곰돌이를 가르쳐야 돼. 라고 말한다. 그 말에 아이의 마음을 금방 읽는다. 아, 곰돌이에게 그 노래들을 알려주고 싶구나. 결국 청중을 한명 두고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문득 내 모습이 교차한다. 나도 너와 같구나. 브런치에 가입하고 구독자가 아무도 없는데. 그래 누가 될지 모를 청중을 앞에 두고 어떤 음악을 틀고 이야기를 하게 될지 나도 정한바 없다만, 뭔가 거창한 계획을 걸고 시작하지 않고 작은 생각들을 가볍게 나누면 어떨까 해서. 아, 곰돌이에게 말하는 너와 내가 똑같구나. 어느 덧 자세를 잡고 아들은, 곰돌이에다 동생까지 의자에 앉혀놓고 열강이다.
시각디자인과 제품디자인을 복수전공한 미학사, 공학사로서 세상을 발걸음을 떼었을 때 난 첫 직장으로 정부기관의 인턴으로 입사하게 된다. 말이 좋아 인턴이지 일용직 계약직으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과 같은 포지션이었지만 마음만은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천방지축 낭랑 24세 철부지 신입이었다. 소속은 공보관실이었지만 사무실은 IT팀 전산실에 속해 웹페이지를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에 대한 신념, 철학같은 것은 조금도 찾아보기 힘든. 그냥 주어진 일에 뭐든 뚝딱 만들어내기는 하는 막내였다. 그러기를 2년을 꽉 채우려는 시점 정규직으로 채용이 된다. 8급 상당의 공무원. 인사위원회는 나에게 7급을 주어야 된다, 아니다 9급을 주는 게 맞다로 탁구를 치다 결국 8급짜리로 결정이 났다. 일의 특성상 홍보팀과 자주 마주해야 했고 황무지와 같던 홍보팀, 다들 가기를 꺼려하던 팀에 내가 가겠노라고 자청했다. 우리 팀에서는 난리가 났다. 왜 그런 팀에 가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이 때부터였나보다. PR이라는 것에 끌리게 된 것이. 홍보팀에서는 주로 웹페이지 기획과 관리, 신문 및 뉴스 보도내용 정리, 홍보책자 등의 제작과 관리 정도였다. 글을 써서 보도자료로 내는 것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럴만한 재량도 안됐고 그리고 내 직급은 까마득했으므로 상하관계가 분명한 조직사회에서 책임감있게, 그리고 모든 상황을 파악해 입체적인 조직의 목소리를 반영한 글을 쓴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보고서를 끝발 날리게 잘 쓰던 선배에 폭 빠져, 그 분의 글쓰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내 것으로 만드려고 했더니 나중에는 꽤 보고서를 잘쓴다는 소문이 났다. 독서모임에서 독후감을 자발적으로 써서 사내 게시판에 올리니 숫자는 적었지만 팬 선배 및 동료들이 생겨났다. 팀장은 급한 보고거리가 있으면 만만한 나에게 자주 던져줬고 글쓰기를 즐겨하던 나는 싫어하는 내색없이 급한 보고서를 곧잘 마무리하곤 했다. 보고가 잘 되면 그것으로 그냥 기뻤다. 그 공을 과장이 가져간다 하더라도 말이다.
7급으로 승진한지 6개월여 되었을까. 갓 신부였던 나는 해외 근무하는 신랑과 같이 살고 싶어 사직하고 함께 해외 생활을 시작한다. 두번째 직장은, 첫째를 낳고 첫째가 돌이 지나고 나서였다. 일이 하고싶어 죽을 지경이어서 아들녀석과 무작정 귀국해 이곳 저곳 이력서를 넣었다. 그 중 APEC기후센터라는 곳에 홍보담당자로 채용되어 둘째가 태어나기까지, 약 2년 반정도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이 때 나는 날아갈 듯한 업무만 했다. 하루에 많게는 3~4건의 국문/영문 공지글을 썼다. 1년에 국문만 130여건이더라. 보도자료도 써서 기자들에게 배포하고 내 글이 기사가 되어 신문에 나오거나, 내가 쓴 공지글이 키워드자동메일링 구글 서비스를 통해 나에게 다시 전달 될 때, 이 분야 사람들에게 내 글이 읽혀진다는 것에 참으로 즐거웠다.
내 글이 잘쓰는 글이라는 확신은 없다. 하지만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혀진다는 그 매력에 빠져 글을 참 재미있게도 썼다. 회사에서 하는 일을 분석해서 쉬운 언어로 재가공해 퍼블릭에 발표할 때 그게 그렇게도 재미있다는 내 말에, 누군가는 그러더라, 참 별 게 다 재미있다고. 맞아! 난 이런게 별스럽게 재미있으니 내가 100% 완벽하게 타고난 것은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즐기면서 평생 가져가도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
앞에서도 썼지만 내 학력은 겨우 학사에, 전공은 산업디자인이다. 그림을 썩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브랜드를 보는 눈은 있다. 고 주장하고 싶다. 아니, 지금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눈을 길러보리라. 이 쪽 달란트를 가지고 글 쓰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어느날 아침 잠을 설치다가 퍼뜩 떠올랐다. 그래 이것 아닐까. 하며. 쇼핑이 여의치 않은 해외에 살다보니 인터넷 아이쇼핑을 할 때가 많고 그러다가 그 많은 브랜드에 대해 좀 적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렇게 한번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