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나는 혼자 놀기를 잘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정말 집에 혼자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삼 형제 중 막내였고, 외할머니, 아버지, 전업주부인 어머니, 가끔씩 키우던 강아지, 고양이, 닭, 새 등이 빼곡히 나의 인생을 채워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5살 때부터 두 발 자전거를 몰고 동네를 혼자서 쏘다녔고, 뜨끈한 온돌방에 이불을 덮고 누워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태권 V 등 머리에 올라탈 수 있는 모든 로봇을 스케치북에 그렸다. 혼자서도 나름대로 시간을 잘 때우는 아이였다.
마흔 전까지는 서울 생활에 대해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서른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면서 대인관계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고 그에 반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이게 되었다. 빽빽이 들어찬 건물 숲과 어디를 둘러봐도 넘쳐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모를 갑갑한 감정들이 고개를 들었다. 많은 소음들과 더 많은 시선들이 밀랍과 버무려져 나를 덧칠해가고 있었다.
바람도 숨을 쉬고 있구나.
새벽 5시, 구름 사이로 빨갛게 스며드는 아침 해와 이슬에 살짝 젖은 비릿한 풀냄새를 타고 바람은 나에게 숨을 선사한다. 데크에서 바라보는 높은 하늘과 그 아래 푸름을 이어 붙인 산들은 정지된 한 장의 명화가 되어 나의 눈을 기쁘게 해 준다. 혼자 놀기 잘하던 아이에게 이곳은 더없이 흥미로운 공간이다. 내가 닮고 싶은 곳이다. 물론 도시나 촌이나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기에 잘 맞는 동네라도 불편함은 항상 존재한다. 크게 다가오지 않을 뿐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교통이다. 서울에서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어디를 가든지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 나는 버스보다는 단순한 지하철을 좋아한다. 버스는 정류장을 지나치는 경우도 많고 환승도 쉽지 않다. 춘천은 최초에 지하 전철화가 같이 논의되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 때문에 지금의 지상전철로 최종 확정되어 건설되었다. 춘천을 가로지르며 도심 미관을 해치는 우뚝 솟은 지금의 철로로는 새로운 역을 세우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과 같은 촘촘한 전철역은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사는 강북으로 왔지만 아직도 생활권은 퇴계동, 석사동에 머물러 있다. 꽃가게, 처갓집, 작은 아들 학원이 모두 예전 동네와 가깝다. 김유정역이나 남춘천역을 이용하기에는 거리가 있어서 불편하다. 버스도 한 번에 가는 노선은 없고 주로 명동이나 다른 동네를 거쳐 간다. 그래서 거의 자가용을 이용하고 있는데, 주말과 휴일에 운행하는 거리가 적게는 40km에서 많게는 80~90km가 된다. 강사 활동을 하고 있는 와이프의 업무 이동까지 포함하면 연간 2.5만 km 정도를 탄다. 부부끼리 살거나 완전히 귀농한 경우가 아니라면 차량 유류비가 상당히 많이 든다. 전기차를 고민해야 하나 싶다.
곤충이나 벌레도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려서는 밤마다 천장에서 100m 달리기 하는 쥐들 때문에 쥐덫과 끈끈이가 항상 구석에 놓여 있었다. 한 번은 배드민턴을 치던 중 쥐가 지나가길래 배드민턴 채로 꼬리를 내리쳐서 잡은 적이 있는데 너무 불쌍히 찍찍거려서 바로 풀어줬다. 곤충은 바퀴벌레와 돈벌레가 자주 출몰했다. 지금은 약들이 좋아서 몇 번 뿌리면 금방 죽지만 예전의 살충제(에프**)는 살충액에 익사시켜야만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1주일에 한번 정도 서울에서 잠을 자는데 옛날만큼 해충이 나오지는 않는다. 바퀴벌레는 확실히 줄었고 모기, 파리는 그래도 많은 듯하다. 여름밤에는 모기 때문에 적어도 2~3번은 깬다. 분명 앵앵 거리며 날아다녔는데 전등을 켜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 한 신공을 보여준다.
이 동네 모기는 서울보다 급이 살짝 높다. 한번 물리면 정말 아프고 많이 붓는다. 밖에서는 저녁 7시만 지나도 몇 분 만에 두세 방은 기본이다. 집에는 몸에 뿌리는 약, 바르는 약, 손목에 차는 시계형 퇴치기, 목걸이형 퇴치기, 모기 가려움을 완화해 주는 스틱형 기구 등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특히 거미는 정말 크다. 외벽 구석에 집을 짓고 있는 거미들을 가끔 빗자루로 걷어내는데, 매번 소름이 돋는다. 곤충을 보면 예전만큼 놀라지는 않지만 여전히 쉬운 대상은 아니다. 의외로 쥐들은 직접 보기 어렵다. 곳곳에 텃밭이고 숨을 공간이 많아서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같다.
요즘은 TV에 흉흉한 사건사고가 참 많이 나온다. 살인사건도 흔한 뉴스 소재가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보다 지방의 범죄율이 높다고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2016년 기준으로 지역별 범죄율 순위는 다음과 같다.
2016년 기준 지역별 범죄율 순위입니다. 기준은 10만 명당 범죄 발생건수(건수/인구)입니다.
1. 제주: 5,829.5건(약 5.83%)
2. 경남: 4,246.8건(약 4.25%)
3. 강원: 4,177.2건(약 4.18%)
4. 부산: 4,117,1건(약 4.12%)
5. 경기: 4,113,3건(약 4.11%)
6. 광주: 4,107.8건(약 4.11%)
7. 전남: 3,926.3건(약 3.93%)
8. 충북: 3,880.2건(약 3.88%)
9. 대구: 3,771.8건(약 3.77%)
10. 서울: 3,753.3건(약 3.75%)
춘천이 속한 강원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조금 걱정했던 부분이 치안이다. 담 없는 옆집의 정원에 매료되어 담장 없이 집을 지은 것과 밤늦은 시간에 골목을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충분히 무서운 상상을 하게 했다. 명절날 서울에 올라오거나 가족 모두 여행을 떠날 때는 안 쓰는 스마트폰에 CCTV 앱을 설치하여 거실에 두기도 했다. 워낙 조용한 동네라서 개 짖는 소리나 개구리, 귀뚜라미 소리 외에 다른 소리가 들리면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런 걱정은 1년 정도 지나니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다. 대부분 낯익은 동네분들만 오가니 훨씬 안전했다. '바니'의 존재도 한몫했는데 밖에서 작은 소리만 들려도 짖어댔다. 왜 시골에는 귀여워하지도 않는 개들을 집집마다 마당에 묶어두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의아해했던 부분 중 하나가 아무도 음식물 쓰레기통을 집 앞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 대체 어디에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내놓지?'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그냥 땅에 묻는다.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쓰지 않는다. 집 뒤편에 쌓아 놓고 퇴비로 쓰는 집도 있을 테지만 대부분은 텃밭에 묻어 버린다. 음식물쓰레기를 땅에 그냥 매립하면 불법이지만 음식점처럼 대량의 쓰레기가 배출되지 않는 이상 소량의 음식물쓰레기에 대한 인식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음식물 쓰레기 외에 생활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 차에 싣고 대로변까지 나와 두고 간다. 골목까지 수거차량이 들어오지 않아서다. 걸어서 나오면 한 10분 정도 걸린다. 이 부분도 불편하다. 도심에서는 집 앞에 내놓거나 아파트의 경우 분리수거함에 버리면 되지만 이런 동네에서는 따로 모아두는 곳까지 들고 가야 한다. 이틀에 한 번은 이렇게 버린다.
어떤 집은 생활쓰레기까지 깜깜한 밤을 이용해 태우기도 한다. 동네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찰 때가 있는데, 어느 집에서 태우는 건지 알지만 동네 어르신들이라서 대놓고 얘기하기도 쉽지 않다.
고향의 스멜 하면 다들 바로 '아하' 할 것이다. 봄이 되면 동네에 한동안 똥냄새가 진동을 한다. 비료 냄새다. 짧으면 2주, 길면 한 달 정도 우리의 코를 자극한다. 이사를 했던 첫해부터 밭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비료를 20포대 정도 사다가 뿌렸는데, 우리가 뿌린 비료는 그렇게 강한 스멜을 풍기지는 않았다. 비료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료는 보통 비료와 부산물비료로 나뉜다. 계분, 우분 퇴비가 부산물비료에 속하고 우리가 흔히 쓰는 보통 비료는 다시 화학비료와 유기질비료로 나뉜다. 퇴비를 쓰건 유기질비료를 쓰건 잘 발효된 비료는 냄새가 매우 적다고 한다. 사용된 원료가 오염되었거나 잘못 발효된 경우에만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큰 아들은 '오~ 스멜 스멜'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작은 아들은 냄새에 매우 민감해서 창문도 못 열게 한다. 집에 도착하면 '똥냄새 똥냄새'하면서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나도 서울 토박이다 보니 비료 냄새에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려니 하면 편하다
이곳에 살면서 느낀 점이 있다. '불편하다'는 매우 개인적인 단어다. 내가 느끼기에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고, 아니면 편한 것이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인정하기 나름이다. 어느 회사를 가도 좋은 상사, 나쁜 상사가 있기 마련이다. 불편함을 억누를 수 있을 만큼의 편안함을 지금 나는 느끼고 있다. 이 편안함에서 오는 마음의 풍성함이 불편함에 대한 포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려니' 하면 그냥 스쳐간다. 내버려 두면 된다.
쿨하게~~~~~~ So Cooooooooool.
- 미오 -
* 이 글은 2021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작성한 글입니다. 다듬지 못한 채로 서랍에 두었던 글을 이제야 올리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