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 최대한 작고 가볍고 싼!
나이가 들면서 무언가를 들고 다니는 게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장지갑은 살면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고, 현금이 든 반지갑을 가지고 다니다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머니클립으로 바꿔서 신용카드 몇 장과 1만 원 지폐 한 두장 정도만 넣고 다닌다. 어느 기사에서 봤는데 두툼한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고관절과 허리에 무리를 준다고 한다. 물론 이것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냥 성격 자체가 까칠해서 그런 거겠지.
가방도 대여섯 번 바꿨다. 업무상 외부에서 노트북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처음 입사해서는 노트북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2000년 초반에는 노트북 무게가 적어도 2.0kg을 넘어섰고 어댑터와 서류, 책 등을 챙기면 거의 3kg에 육박했다. 출퇴근하면서 한쪽 어깨가 비스듬히 내려가고 척추가 휘어지는 느낌이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씩 휘어져 있다고 한다). 이후로 직사각형 모양의 투박한 백팩을 하나 사서 매고 다녔는데 당시만 해도 회사원이 백팩을 메고 다니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대학생도 아닌데 외부 미팅에 백팩을 메고 다니면 아무래도 고객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노트북이 소형화되면서 12.1인치 노트북을 구매했다. 이때가 아마도 미니성애자의 시작인 듯하다. 기존 노트북은 13, 14인치여서 무게를 아무리 줄여도 1.8kg에서 2.0kg 대였는데, 이 노트북은 1.3kg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한참을 들고 다니다가 이것도 무겁게 느껴져 또 한 번 크기와 무게를 다운그레이드 했다. ASUS 11.6인치 노트북을 구매했는데 무게가 무려 980g이었다(아마도 내 기억으로 이때쯤에 LG그램이 뜨기 시작했던 걸로 생각된다). 정말 천국을 맛보았다. 한 손에 달랑달랑 들고 다닐 정도로 가벼웠다. 물론 파워포인트를 띄우면 텍스트가 눈에 안 들어와 확대도 하고 화면도 이동해 가면서 사용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백팩에 잡다한 다른 내용물만 없으면 한쪽 어깨만으로 충분했다.
스마트폰도 아직 5.4인치 아이폰7을 사용하고 있다. 애니콜 폴더블폰부터 사용을 하다가 2011년쯤 아이폰4를 구매하면서 쭉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 2년 정도면 바꾸는 친구들이 많은데 나는 한번 사면 꽤 오래 쓰는 편이다. 책상에 툭 던지는 스타일도 아니고 잘 떨어뜨리지도 않아서 아직도 깨끗하다. 더군다나 살면서 분실한 적도 없다(내 폰들은 식당 같은데 두고 와도 항상 돌아오는 엄청난 귀소본능을 지녔다). 그래서 애플에서 OS 업데이트를 더 이상 해주지 않을 때까지 쓴다.
IT기기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냐고? 그것도 아니다. 직업 상 스마트폰, 태블릿, 맥북프로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 나한테 과연 쓸모가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효용성이 낮으면 무게만 늘리는 꼴이 된다(스마트워치가 그렇다). 스마트폰은 주로 전화 걸 때나 급한 용무를 처리할 때만 사용한다. 이동 중에는 대부분 태블릿을 쓰기 때문에 굳이 큰 스마트폰은 필요가 없다.
태블릿은? 물론 태블릿도 제일 작은 아이패드미니5를 구매했다. 최애템으로 내가 산 물건 중에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하는 IT기기다. 매일 왕복 대여섯 시간을 길에서 흘리다 보니(서울 영등포 ~ 춘천 통근) 이것만큼 유용한 물건이 없다. 사람이 많아 서 있을 때도 무게가 가벼워 들고 있는데 부담이 없다. 넷플릭스도 보고, eBook도 읽고, 당연히 업무와 관련된 일도 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을 모두 가지고 다니다 보니 무조건 무게를 더 줄여야 했다. 맥북프로는 회사에서 사준 업무용 노트북이라서 무거워도 들고 다닌다(2kg 가벼운 에어로 사달라고 할걸). 추가적으로 마우스, 노트북 어댑터, 배터리 광탈에 대비한 보조배터리, 서류 및 책 1권(거부할 수 없는 종이책의 매력), 지갑, 우산, 필통 등을 넣고 다닌다.
그럼 가방부터 보자. 해외직구로 구매한 중국산 BOPAI 제품을 쓰고 있다. 전철에서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얇고 가벼운 제품을 찾다 보니 이 제품이 눈에 띄었다. 두께는 7cm로 초슬림형이다. 재질도 튼튼하고 안의 포켓 구성도 나름 잘 되어 있다. 아랫부분으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디자인이라서 물건들을 아래로 수납한다.
마우스도 여러 개를 사용해 봤는데,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미니마우스가 최선이다. 그렇다고 조작감이 떨어져서도 안된다. 도톰한 미니마우스는 슬림한 가방에 다른 물건들과 겹쳐 넣으면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그래서 작으면서 더 슬림한 마우스를 찾다 보니 로지텍 Pebble 마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 쓰면 손목이 좀 피곤하긴 하지만 휴대성은 최고인 듯하다. 무엇보다 애플 매직마우스보다 훨씬 싸다. 특이한 건 윗부분이 자석식으로 되어 있어서 손으로 당기면 뚜껑이 쉽게 열린다. 건전지를 교체하긴 편하나 떨어뜨리면 본체와 뚜껑이 남남이 된다.
매일 노트북을 넣고 출퇴근하는 것은 역시나 힘들다. 맥북프로가 1.4kg 정도 나가니 무게가 만만치 않다. 외부 미팅을 나가서 곧바로 퇴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되도록 회사에 두고 다니게 되었고 몇몇 미팅 때는 그냥 태블릿만 들고 들어간다. 하지만 역시나 노트북이 아니다 보니 급하게 장문의 메일을 보내거나 간단한 문서작업이 필요한 경우 가상 키보드만으로는 불편함이 많다. 태블릿도 스마트 커버를 씌우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따로 들고 다니면 거의 노트북과 맞먹는 무게가 나온다. 아이패드, 에어, 프로는 키보드가 달린 스마트 폴리오를 판매하고 있지만(미친 가격) 아이패드 미니는 스마트 커버만 정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탈부착 키보드(케이스와 따로 논다), 접는 키보드(무겁고 접히는 부분의 자판 배열이 부자연스럽다), 로지텍 Keys-to-go까지(키즈투고는 정말 비싼 쓰레기. 키감 최악) 사서 쓰다가 너무 불편해서 지금의 ESR키보드케이스를 구입했다. 무엇보다 무게가 가볍고 자판 간격이 적당해서 오타율이 적다(가격도 매우 착하다). 현재 새로 나온 미니 6세대는 7.8형에서 8.3형으로 사이즈를 키운 반면 물리 버튼과 베젤이 사라져 되려 크기가 줄었다. 그래서 ESR에서 더 이상 새로운 미니키보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도 자판 크기를 더 줄일 수 없기 때문일 듯싶다.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이런 이유로 선뜻 움직여지지는 않는다.
다음은 우산이다. 우산은 정말 애증의 물건이다. 우산에 대한 애착이 심하냐고?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하늘인데 자기만 밖에 나가면 바로 비가 쏟아진다는 사람. 바로 나다. 회사에서 난 '우산컬렉터'로 통한다(가뭄일 때 밖에 묶어두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몇 년 동안 모은 우산이 서울집, 회사, 춘천집에 널려 있다. 날씨는 안보냐고 묻는다면? 춘천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안 왔는데 서울 회사 근처에 도착하면 비가 온다. 다 맞고 회사까지 뛰어가는 건 20대가 아니라서 포기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작은 우산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매우 주관적 관점이다). 우산을 살 때 색상이나 디자인을 보는데 나는 가로, 세로 사이즈를 보고 구매를 했다. 정말 작다. 가방 안 바닥에 깔리는 건 물론이고 잠바 주머니에도 들어간다. 경춘러인 나에게 딱 맞는 우산이다. 단점은 당연히 있다. 3단 우산인데도 상체용 우산이다. 하체는 남의 몸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우산을 빙자한 양산인 듯. 억수로 쏟아지면 대책 없다.
마지막으로 노트북 어댑터다. 이것도 은근히 무겁다. 윈도우 노트북은 요즘 슬림하게 나오는 것도 많은데, 맥북은 아직까지 크다. 그래서 정품 어댑터는 회사에 두고 휴대용 어댑터를 가지고 다닌다. 요즘 웬만한 노트북들은 USB 타입C를 이용해서 충전하는 'PD충전'을 지원한다. 정품만큼 충전이 빠르진 않지만 급할 때 잠깐잠깐 충전하거나 카페에서 충전하기 적당하다. 케이블만 바꾸면 노트북, 휴대폰, 태블릿 모두 충전이 가능하다. 단점도 물론 있다. 대부분의 일반 케이블은 길이가 길지 않아서 콘센트가 멀리 있으면 충전하면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다.
이유가 어쨌든 하루 중 이동거리가 많은 나에겐 더없이 소중한 물건들이다. 아마도 그놈의 귀차니즘적 성격이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긴 하나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냥 작고 귀엽고 '미니미니'한 것들을 보고 있으면 보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 미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