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헐, 사슴이다???
매년 5월 말이나 6월 초가 되면 한 번씩 대전을 내려간다. 외할아버지가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계시기 때문이다. 사실 625 전쟁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보다는 함께 묻히신 할머니를 뵈러 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외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군인 신분이 아닌 '동원노동자'로 착출 되어 나갔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이미 군대를 다녀온 상태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동원노동자로 전쟁에 투입된 것이다. 지금은 대령, 병장, 원사, 하사 등 많은 군장병들 틈에 잠들어 계신다. 주위를 둘러봐도 '동원노동자'라고 새겨진 묘비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운이 나쁘셨던 것이다. 원래는 선산이 있는 대구에 모셨는데 김대중 대통령 때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하게 되어 할머니와 함께 지금 이곳으로 이장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평생 혼자셨던 할머니는 대구에서 쭉 지내시다 환갑 즈음에 서울로 오셨다. 삼 형제가 커가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셨고 내가 대학에 들어간 해인 1992년 가을에 돌아가셨다.
코로나로 인해 작년에는 찾아뵙지 못했다. 그래서 2년 만의 방문이다. 어머니는 요즘 디스크 때문에 병원 출입이 잦아져 함께 오시지 못했다. 병원 진료는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작은형 내외가 맡기로 했고 현충원 방문은 내가 맡았다. 생각해 보니 와이프와 둘이서만 이곳에 온 것은 처음이다. 아침 일찍 춘천을 출발해서 2시간 반 정도 걸려 현충원에 다다랐다. 초입에 있는 매점에 들러 꽃다발을 샀고 다시 차를 타고 장병 제3묘역으로 이동했다. 어느 공동묘지든 조화의 색바램을 보면 가족들의 방문 주기를 알 수 있다. 1년까지는 그런대로 색이 좀 남아 있지만 2년이 지나면 조화도 거의 색이 빠진다. 이번이 그랬다. 짙은 핑크색이었던 조화가 거의 흰색이 되어 있었다. 꽂혀 있던 조화를 뽑아내고 새로 산 조화를 꽂았다. 물티슈 몇 장을 꺼내 묘비 앞뒤의 먼지도 깨끗이 닦아냈다. 금방 먼지가 쌓일 테지만 어머니는 항상 물티슈로 닦아주셨다. 지인이 준 새 캠핑용 돗자리를 펼치고 제사음식을 올렸다. 술잔도 채우고 절도 했다.
장마가 찾아와서 전날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내렸다. 다음 날 날씨가 개보여 급히 짐을 챙겼는데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6월 말은 정말 더웠다. 전날 비까지 와서 온 몸은 끈적거렸고 기온도 높았다. 함께 온 바니는 옆에 앉아서 혀를 쭉 빼고 헥헥거렸다. 625 전날인 24일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한산했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았는데 멀리 한 팀 정도가 절을 올리고 있었다. 현충일 앞뒤로 많이 찾아오고 6월 말에는 되려 적은 듯 히다. 어머니, 형 내외와 올 때는 싸온 음식도 먹고 얘기도 하니 1시간은 그냥 지나가는데, 이날은 30분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늘 하나 없는 묘비 앞에서는 펼쳐놓은 우산도 아무 소용없었다. 입만 뻥끗했는데 땀이 송골송골 흘렀다. 2년 만에 찾아뵈어 죄송했지만 빠르게 세 번 절을 하고 짐을 챙겨서 작별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옆의 장병 2 묘역에는 상이군인이셨던 큰아버지 묘소도 있어서 이 날도 인사를 드리고 길가에 주차한 차로 돌아왔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거는데, 와이프가 갑자기 '저거 뭐야?'라고 묻길래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봤다.
'어.......... 어? 사슴???!!!!'
차량 멀리 숲 가장자리에서 사슴 한 마리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십여 년 국립현충원을 오가면서 사슴을 본 건, 그것도 그냥 돌아다니는 사슴을 본 건 처음이었다. '현충원에서 사슴을 키우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을 키운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현충원이 워낙 넓고 계룡산뿐만 아니라 옆에 야산들이 많아서 곰이 나타난다 해도 이상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냥 야산이면 모를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무엇보다 관리가 철저한 현충원에 야생 동물이 돌아다니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와이프가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야 하지 않나?' 하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을 열었다. 이렇게 야생동물이 돌아다니고 있다면 분명 다른 사람들도 봤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2년 전 방송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라니가 아니라 엉덩이가 하얀 정말 꽃사슴이었다.
인근 숲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꽃사슴 한쌍이 2020년부터 국립현충원에 출몰하기 시작했고 묘역을 자유로이 둘러보고 다닌다는 기사였다. '애국꽃사슴'이라는 영상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야생 토종 꽃사슴은 국내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1년 제주도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후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분류된 상태이고 현충원에 돌아다니고 있는 꽃사슴은 토종야생꽃사슴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산을 쳐다본다
- 노천명, 「산호림」 (1938) -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아는 시구일 것이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초중고 때 목이 유난히 긴 친구들을 놀리기 위한 구절로 많이 썼던 것 같다. '모가지기 길어서 슬픈 OO이여'
이제야 다시 읽어봤다. 사슴은 십장생에도 등장하는 '장수'의 동물이다. 유유자적한 사슴의 모습에서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동물로 인식되어 옛 동양화에 단골 동물로 등장한다(그런 사슴의 실제 수명은 20년가량이라고 한다). 꿈을 접은 고귀한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과 묘비 주변을 노니는 사슴이 아이러니하게도 어울려 보였다. 영생의 동물은 주변을 서성이며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는 걸까? 피지 못한 청춘들이 이곳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다음 생에서는 오래오래 살아가길 바라면서.
내게 얼굴도 모르는 외할아버지의 존재는 아픈 기억의 역사만큼 외할머니와의 추억도 떠오르게 한다. 혼자 외롭게 어머니를 키우시고 어린 나를 많이도 이뻐해 주셨던 할머니. 당신의 힘들고 고된 삶을 모두 잊고 이곳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편히 쉬고 계셨으면 좋겠다. 삼 형제 중 나에게 유독 잘해주셨던 할머니와의 기억이 문득 나타난 사슴 한 마리에게서 눈을 못 떼는 이유가 되었다.
그날은 한 마리만 볼 수 있었는데 나머지 한 마리도 함께 봤으면 좋았을 뻔했다.
내년에 다시 현충원을 찾았을 때는 두 마리가 함께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그때까지 사슴들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라.
- 미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