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기억하는 여자

by 이다

급하게 차를 몰고 시장통으로 들어섰다. 앞쪽을 보니 과일 좌판이 있고 그 옆으로는 채소 장수들이 즐비하게 앉아 있다. 이 길을 차로 지나간다는 건 좀 아슬아슬해 보인다. 차에서 내려 지나갈 수 있는지 살펴보려는데 아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슨 영문인지 차를 그 자리에 세워 놓고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한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땐 차가 사라지고 없었다.


미친 듯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녔다. 차 키를 삑삑 눌러가며 불빛이 번쩍해 주길 바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차된 차 한 대 한대를 자세히 살펴봤다. 누군가가 내 차를 가져다 어딘가에 세워 둔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찬찬히 다시 생각해 봤다. 분명 시장통 입구에 차를 잠깐 세웠고 밖으로 나왔고 그리고 차가 사라졌다.




다음 날도 내가 다녔던 동선대로 크게 한 바퀴를 돌며 주차된 차를 살펴봤다. 오늘도 없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신고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신경 쓰며 돌아다니니 온몸이 다 땀이다. 화장실에라도 가서 얼굴을 축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인근 건물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뭔가가 타는 냄새. 뒤를 돌아보니 화장실 휴지통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제법 큰 휴지통이었는데 그 키만큼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걸 어쩌나 하는 순간 어떤 여자가 커다란 통에 받아온 물을 그대로 휴지통에 부었다. 다행히 불은 꺼졌고 연기가 자욱했다.


세상에나 용기 있는 여자다. 잘못하면 큰 불이나 건물 전체가 화마에 휩싸일 수도 있는 걸 저 여인이 막았다. 차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까마득히 잊은 채 그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 지원 씨?


"지원 씨 아니에요? 저 기억 안 나요? 우리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요."

"아. 그래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괜찮은 사람은 역시 괜찮은 사람이다. 화장실에서 만난 것도 신기한데 불까지 끄는 용기 있는 사람이 지원 씨라니. 웃는 얼굴마저 매력적인 여자다.


"어, 그런데 화장실에 물이 차오르고 있어요."

"아무래도 배수구가 막힌 모양이에요!"


우리가 잠시 대화를 하던 그 사이, 어디서 차 올랐을지 모르는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아, 차갑다. 그만 신발이 다 젖고 말았다.


"우리 어서 여기서 나가요."


밖으로 나와 지하상가를 걸으며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때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용기 있네요. 지원 씨가 불 끄는 거 봤어요."

"아. 하하 그러셨군요."


그녀의 씩 웃는 미소를 보니 이틀 동안 뛰어다니며 걱정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불도 나고 물도 차고 갑자기 차도 사라지고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다. 그 와중에 화장실에서 지원 씨를 다 만나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나만 기억하는 여자. 하지원.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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