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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ug 04. 2023

글은 안 쓰고 브런치를 연구합니다

장마는 완전히 물러갔는지 매일이 폭염이다. 낮에 나가면 등가죽이 다 타버려 바삭바삭해질 것 같으므로 오전에는 집안에서 여유를 부리기로 한다. 아이는 모르는 나만의 계획이다.


방학이면 아이보다 으레 늦잠을 자던 나였지만 이번 방학엔 그러지 않기로 다짐했다. 최소한 아이보다는 일찍 일어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싶기도 하고 지금까지 잘 유지해 왔던 루틴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알람을 8시에 맞춘다. 그렇다고 빨딱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눈이 자연스레 떠지길 기다리는 아침이 좋다. 무리하게 일어나 하루를 아붙이며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다. 특히나 방학이라면. 아이에게도 늘어지는 여유를 느끼게 하고 싶다.


눈이 완전히 떠지면 덥고 있던 이불을 번쩍 들어 정리하고는 살며시 방에서 나온다. 덩치가 커진 아이는 대자로 뻗어 서큘레이터 바람을 맞으며 늦잠을 즐기는 중이다. 아름다운 시간이며 아름다운 풍경이다.(이 장면은 왜 아름다운 것일까)


물양치와 물 한 컵으로 정신을 깨우고 책상에 바로 앉는다. 5월부터 습관처럼 해온 영어책 한 챕터를 읽는다. 습관이 무섭다. 아침 물만 마셔도 그다음 동작을 나 스스로 하고 있다. 잠시 영어책에  빠져 있다 보면 언제 깨어났는지 모를 아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아침 인사를 해온다. 아이 얼굴을 보니 본능적으로 아침밥이 떠오른다.


방학을 하고 우리에게 없어진 아침 식사 시간. 먹기는 먹어야 하는데 더운 아침이라 입맛도 없고 뭘 정성스레 차려 먹고 싶지 않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브런치를 먹으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이게 아이에게 통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BUT 살이 찌고 있는 아이에겐 의외로 하루 두 끼 식사와 간식 정도가 알맞을 지도 모른다. 약간의 운동도 겸비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는 나의 생각.


"11시쯤 브런치를 먹는 건 어떨까?" 아이는 흔쾌히 아침을 건너뛰기로 한다. 실은 아침 먹을 시간이 지나기도 했다.


브런치를 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자기가 아는 브런치를 나에게 설명한다. 아점이란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면서 점저는 뭐냐고 묻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아침 식사를  두어 시간 건너뛰었을 뿐인데도 11시에 차리는 브런치엔 정성이 들어간다. 이걸 먹으면 점심도 대체되므로 영양도 챙겨야 한다. 각각 커다란 접시에 삶은 감자 으깬 것, 샐러드 야채 한 줌, 쫑쫑 파를 넣은 에그 스크램블을 푸짐하게 담는다. 나는 여기까지이고 아이의 접시엔 푹 삶아 툭툭 터진 소시지를 몇 알 더 올려준다. 각자가 좋아하는 음료를 따르고 과일과 우유를 더한다.


차리는데 시간이 얼마 들지 않고 브런치를 만든다는 생각에 흥이 난다. 심지만 의외로 맛이 조화로운지 아이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내일의 브런치 메뉴 이야기가 나온다. 조잘조잘조잘.


이 엄마는 브런치를 보니 일주일 동안 안 쓴 글이 생각나는데 너는 브런치를 먹으며 신이 났구나. 어떤 브런치면 어떠리. 네가 잘 먹는 브런치를 만들 생각을 하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래, 이번 여름 방학엔 너를 위한 브런치를 열심히 연구하기로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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