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Jul 28. 2023

방학 첫날 더위가 왔다

방학 그까짓 거. 너도 쉬고 나도 쉬고 좋은 시절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나를 자책한다. 오늘이 방학 1일 차. 남들은 덥다는데 더운 줄 몰랐다. 가끔은 서늘한 느낌이 들어 겨울 모포를 두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잔 적도 있다. 그래도 서늘한 것보다는 좋다 생각했다.  


선풍기는 남의 집 일이고 덥다며 틀어 놓은 선풍기를 밤이면 조용히 끄고 누웠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잠을 더 잘 오게 했다. 


방학 1일 차를 맞으려 그랬는지 방학식날 푸닥거리를 했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예고라도 하는 건지 속에서 짜증이 일었다. 정신은 멀쩡한데 감정이 주체되지 않았다. 아이가 사춘기는 아닌 거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갱년기의 초입에 들어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러다 일이 년 후면 집안에서 폭풍이 몰아칠 것 같은 기운이 감돈다. 


아이인데도 제법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요즘 아이들이 다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찍 소리도 못하며 살아온 나에겐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땐 잠깐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단 5분이라도 환경을 바꿔주면 그나마 심장박동이 줄어들며 나갔던 정신이 돌아온다. 


한없이 자상하고 조용한 엄마이고 싶다. 마음은 그렇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언제나 보고 싶지 않은 자아가 툭툭 튀어나온다. 악마 같은 자아다.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오로지 아이에게만 들키고 만다. 들킨다기보다는 드러낸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초자아가 아이 앞에서 불쑥 거리며 자꾸 튀어나온다. 


딱 좋다고 생각했던 날씨가 방학 1일 차에 맞춰 땡볕으로 바뀌었다. 차문을 열었는데 엉덩이가 뜨거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에어컨을 틀어도 창문을 열어도 한증막 열기만이 뺨을 때린다. 어쩌면 이렇게 더운 것일까. 살이 데어 빨갛게 익을 것 같은 더위다. 몇 년 전 기억 속에만 있던 쇠를 녹이던 더위가 문득 떠올랐다. 얼마나 더웠는지 가게 쇠문이 늘어나 열리지 않았다. 방학 첫날의 더위는 그날의 더위를 방불한다. 


미웠던 아이를 데리고 치과검진을 갔다. 걱정하던 교정진료도 봤다. 치아는 오복이라는데 복을 타고나지 않았는지 수백만 원의 돈이 나가게 생겼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자식이 내 자식이 맞는지 서글프고 짠한 마음이 든다. 돈이나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날은 더운데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어제의 저와 나를 기억이나 하는지 마는지, 그저 오늘도 깔깔대며 웃는다. 

작가의 이전글 소음으로부터 도망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