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는 게 재미있어요

by 이다

말 의외의 곳에서 나의 취향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그 상황이 아니었으면 전혀 몰랐을 나의 취향. 그것이 무엇이냐면, 뭔가를 고치고 싶은 아주 강렬한 욕구, 모두가 안된다고 버리라고 해도 기어이 손을 써서 고쳐놓고야 마는 뚝심. 덕분에 나는 맥가이버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날부터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일 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9년 야심만만하게 소고기전문점을 오픈했다.(고기 안 먹던 나였지만 응?) 광이 나던 매장 인테리어도 일 년 정도가 지나니 여기저기서 나 좀 고쳐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는데 정작 고칠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사장님(엄마)도 직원도 나서지 않았고 언제나 성질 급한 내가 먼저 나섰다. 맨 처음 공구를 집어 들게 만든 건 의자였다.(중간도 마지막도 늘 의자였다) 의자는 수많은 사람의 몸을 편안하게 받쳐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다리며 몸체는 눈에 띄게 약해져 갔다.


천만 원이 다 되던 의자 구입비를 기억하고 있었다. 한 피스 한 피스가 나에겐 소중한 돈으로 보였다. 하나라도 고쳐 써야 했다. 의자를 뒤집어 보니 생각보다 구조가 간단했다. 덜컹거리던 다리는 육각렌치로 조이면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전동드릴로 드륵드륵 나사를 조이면 금세 괜찮아졌다. 여기까진 그런대로 수월했지만 시트 부분의 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하자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난 의상을 전공한 사람 아닌가. 의자에게 옷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의자를 커버할 가죽을 덜컥 구입했다. 그리고... 의자를 해체해 방석 부분을 뜯어내고 새로운 가죽으로 커버링을 해주었다. 손타카라는 것을 구입해서 꽤 유용하게 사용했다. 의자커버링뿐 아니라 나중엔 소파까지 뜯어내 대대적으로 가죽 커버링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날 난 이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이러다 소파 커버링 공장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만큼 진심을 다해 10년 동안 의자 커버링과 수리를 했다.


수시로 나가는 전구는 사다리를 펼치고 올라가 식은땀을 흘려가며 재빠르게 갈아주었고(고소공포증이 있다) 뭔가가 떨어지거나 헐거워지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전동드라이버를 가져다 댔다. 징징징...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왜 흥분이 되고 에너지가 마구 솟아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가게를 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가장 난감한 상황, 그것은 화장실 변기가 막힐 때였다. 물론 이것도 내가 뚫었다. 맥가이버라고 이름을 지어주고는 다들 철저하게 내가 뚫기를 원하는 구조였다. 나도 더러운 건 싫지만, 그래 인정한다. 난 뚫어뻥 기술자니까. '고장'이라는 종이를 붙여놓으면 내가 나타난다. 그리고 뚫는다. 뚫리는 그 순간까지. 퍽퍽퍽...도 모자라 나중엔 압력을 이용하는 뚫어뻥까지 구비하기에 이르렀다. 맥가이버에겐 장비가 중요하니까. 눈물 나게 더러웠지만 뚫리고 나면 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 쾌감을 몰랐어야 했다.


하나 둘 모으게 된 장비가 어느새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드라이버, 펜치, 니퍼, 망치, 스페너, 톱, 글루건, 타카, 렌치는 나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였다. 가게는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게 괜찮으면 저게 고장 나고 '모든 물건이 돌아가면서 말썽을 피워대는 게 장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는 주차장 라인을 책임지고 있는 회양목을 이발시켜줘야 했는데 전정기(회양목을 잘라주는 전동 가위)가 없는 나는 대형 전지가위를 이용해 회양목을 다듬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슬며시 마당으로 나가 전지가위를 들고 가위손 흉내를 냈다. 마음처럼 바르게 잘리지 않아 삐뚤빼뚤해도 무성하게 마구 자란 모양보다는 한결 나아 보였다.


이런저런 수리 생활을 십여 년 정도 하다 보니 이제는 고쳐야 할 것이 생기면 식구들이 자동으로 나를 찾는다. "맥가이버, 집에 좀 와줘야겠어. 세면대가 막혔어" 이런 전화를 수시로 받는다. 전화가 오면 몇 가지 장비를 챙겨 최대한 빨리 출동하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 빨리 고치고 오자 싶은 마음이다.




오늘은 청소기가 안된다고 남편이 말한다. 어디가 안되는데. 탁탁. 손으로 두어 번 쳐주니 어김없이 청소기가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허허, 정말 이상하다. 분명히 안 됐는데" 그러게. 내가 봐도 이상하다. 왜 당신의 손에선 작동하지 않던 것이 내 손만 닿으면 작동하냔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고장 났다면 달려가서 고쳐줘야지.


이건 정말 신기한데 이젠 나 스스로도 내 손만 닿으면 모든 물건이 고쳐진다고 믿게 되었다. 왜냐하면 고치는 순간 가슴이 쿵쿵대며 뛰기 때문이다. 뒤이어 묘한 쾌감이 온몸을 감싸기 때문이다. 그 기분을 느끼고 나면 어김없이 고쳐지기 때문이다. 어렵게 찾은 나의 재미있는 취향하나. 나는 물건을 고치는 게 좋다. 고치고 다듬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 작은 희열이 한 줄기 바람처럼 시원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 바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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