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난 여자

by 이다

오늘로 벌써 네 번째다. 그 여자를 본 것이. 이런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도서관에 가는 날마다 그녀를 어떻게든 보게 된다는 것은.


도서관에 가면 집중을 잘하지 못한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사람들을 힐끗거리며 쳐다보게 된다. 이럴 거면 왜 도서관에 왔나 싶지만, 마음이 오라고 했으니 온 것뿐이다. 한 여름에 와보니 시원한 건 덤이다.


처음 그 여자를 본 날이 기억난다. 그레이 반팔 티셔츠를 민소매로 걷어 올린 모습에 청바지 차림, 부스스한 중단발 길이의 헤어스타일, 슬리퍼를 반쯤 벗어 놓은 채 연신 입술을 오물거리며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책상에 선명하게 올려져 있던 파란 레쓰비 3캔. 집중도 되지 않던 터라 나도 모르게 그 여자를 흘깃거렸다. 책에 단단히 빠진 여자구나. 흥미롭다. 나도 그녀처럼 책에 집중하고 싶다. 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내 기억에 특별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볼 줄은 몰랐다. 그래서였는지 두 번째로 그녀를 보았을 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차림새가 지난주와 너. 무. 나. 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책상 위에는 파란 레쓰비 3캔이 똑같이 올려져 있었다. 여전히 입술을 오물거리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를 내며 열심히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순간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무슨 책을 저리도 열심히 읽고 있는 걸까. 슬쩍 보니 사전이다. 얼핏 국어사전으로 보였다. 그녀는 꼬깃꼬깃해진 국어사전을 침을 튀어가며 낭독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매우 궁금했지만 어떤 액션도 취할 수는 없었다. 나 혼자 그녀를 훔쳐보는 상황만 계속되었다. 그녀는 단 한 번의 딴청을 피우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몰입의 세계를 보여주는 여자였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도 집중하지 못했다. 아니, 오로지 그녀에게만 집중하는 꼴이었다.


이주 후 다시 도서관에 갔을 땐, 신기하게도 그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책상 위에 나란히 놓여있던 레쓰비 캔커피 때문이었다. 더운 날이었지만 여전히 그레이 티셔츠에 청바지차림이었다. 머리모양도 부스스했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사전을 낭독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번엔 그녀가 책장 앞 책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행히 책을 고르는 척하며 뒤편에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검은 배낭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여전히 레쓰비 캔커피도 올려져 있다. 그리고 꼬깃한 사전이 보인다. 그녀는 여전히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낭독을 한다. 무얼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일까. 눈을 가늘게 뜨고 뚫어지게 초점을 맞추니, 그것은 국어사전이 아닌, 한자사전이다. 그녀는 한자를 한 자 한 자 읽으며 아랫부분 설명을 모조리 낭독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에게 질문 폭탄이라도 던지고 싶은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생각 같아선 말이라도 걸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눈치챘던 것일까. 웬일인지 그 순간 그녀는 가방을 싸서 도서관을 나가버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으로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녀는 가고 없지만 최소한 그녀의 흔적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예정에 없던 도서관에 왔다. 오늘은 책을 빌리기보단 할 일을 집중해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노트북을 펼쳤다. 나라고 집중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역시 벽을 보고 앉으니 한눈을 덜 팔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때, 병원에 갔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오래간만에 집중 좀 하려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전화를 한다고 구시렁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래. 다행이네. 서류 잘 챙기고.라는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휴게실 쪽을 보는데.


그녀가 있다. 같은 옷차림, 같은 머리 모양의 그녀가 비스듬한 자세로 멍하니 앉아 있다. 얼굴은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그녀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봤던 그녀의 모습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다였으니 자연스레 그녀의 겉모습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오늘로 네 번째, 도서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만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어디에 있든 내 눈에 들어온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어김없이 같은 차림을 하고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녀. 언제나 몰입하고 있던 그녀가 오늘은 웬일인지 멍하니 휴게실에 앉아있다. 얼굴을 보고 싶지만 유리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그녀의 얼굴은 뿌옇다. 물론 그녀라는 것도 그녀의 똑같은 옷차림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녀가 몹시 궁금하지만 나는 차마 휴게실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정도로 얼굴이 번지르르한 사람은 못된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다음번 만남을 기약하며 열람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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