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콜과 구공탄 Apr 05. 2023

나는 비계를 못 먹는 줄 알았다

사람, 착각을 착각함, 그리고 소통

 이제 한국에 온 지 2주. 어른들이 잘 챙겨 주셔서 그동안 오매불망 책에서만 읽고, 드라마에서나 봤던 한국 음식들을 잘 먹고 있는 중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돈을 얹어줘도 못 구할 음식들에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환호하는 음식은 컵라면이다. 참고로, 나는 나물!) 특히, 배(pear)와 떡에 환장을 하며 달려든다. 

     

 어제는 장모님께서 갈비탕을 해 주셨다. 국물도, 고기도 해외에서 먹던 그 맛과는 분명히 다르게 나를 감싸준다 싶을 만큼 좋았지만, 특히 나는 대파에 눈이 뒤집혔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이처럼 실하고, 싱싱하고, 초롱초롱(?)한 녀석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국물아, 미안하다! 너는 보내더라도 이 쏭쏭 썰린 대파 친구들은 내가 싸그리 먹어치워야겠다! 그러던 중, 생뚱맞은 지점에서 11살 난 아들과 신경전이 일어났다. 정확히는 내가 눈치를 엄청 주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갈비 옆에 붙어 있던 비계 때문이었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비계를 먹지 않았다. 물컹물컹하고 뭔가 비린 듯한 그 기름덩어리가 싫었다. 그래서 비계 비스무리한 음식들은 전부 먹지 않았다. 족발, 보쌈, 돼지국밥 등... 크고 나서야 오해가 풀렸지만, 그때는 순대도 안 먹었다. 편식이었을까? 가려 먹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도무지 몸에서 안 받는 듯한 그 야리끼리한 느낌을 지나칠 수가 없었으니 나름의 합리화가 성립되기도 한다. 그런 내가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비계가 붙어 있다는 이유로 갈비탕 고기를 먹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터진 뒤로 4년만에 나온 한국에서 처갓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 아빠에게 그런 아들의 모습이 얼마나 장모님 눈치를 보게 만들었겠는가?      


"너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우리 동네에서는 구할 수도 없어."

"씹는 느낌이 이상해. 못 먹겠어."

"할머니가 얼마나 열심히 만들어 주셨는데 왜 그래! 몸에도 좋고."

"알았어. 알았어. 먹어볼게."     

 

 이런, 누가 내 아들 아니랄까봐ㅠㅠ 그래도 옆에 계시던 외할머니는 그런 손자의 모습도 그동안 고프셨는지 흐뭇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아이고 왜 그래 할머니가 만든거야. 먹어봐. 갈비탕 고기 비계는 먹어도 돼."

     

 참고로 장모님께서도 비계를 안 좋아하신다. 그런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먹을만한 비계인가 보다 싶기도 하지만, 이제 열 살 넘은 아들이 그럴 리가. 아들은 결국 고기와 비계 분리 수술에 실패하고는 이내 밥만 욱여넣는다.     


”잘 발라봐. 먹을 수 있을 거 같구만.”

“어.”     


 그러더니 결국...

 발라버렸다. ㅎㅎ

     

 그럼 나는 어떨까? 나는 갈비탕에 뜬 뼈에 붙은 비계를 먹었을까? 당연히!! 먹는다. 왜? 장모님이 만드셔서 보고 계시니까ㅋㅋㅋ 내가 비계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안지 인생 30년 만에 처음 깨달았다. 내가 비계를 싫어하는 것이지 못 먹는 게 아니란걸. 선택적으로, 또는 내 의지와 취향과는 별개로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들이 인생에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때는 음식을 음미하며 맛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씹어 넘겨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라도 먹는다. 더 정확히는 비계를 싫어하는 내 모습으로 인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 배려라면 배려랄까! 이렇게 배려심 많은(?) 내가 비계 할아버지인들 못 씹으랴.      

 

 아들 갈비탕 비계 사건을 통해 오늘 아침 배운 바가 크다. 할 수 없는 것과 안 하는 것은 완전 다르다. 안 하는 것 중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안 하는 것을 못 하는 것 인양 오해 말고, 못 하는 일 앞에서도 쫄지 말고 살아야겠다. 비계를 안 먹는 것이지 먹을 수는! 있는 것처럼.     


 살면서 안 하는 것, 그리고 안 해본 것이 많다. 비계나 개불 같은 특정 음식 안 먹기, 술담배, 클럽에서 춤추기, 밤새 공부하거나 놀기,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번호 따기, 싸움, 주식이나 펀드, 좋은 회사 취직이나 아이비 리그 진학 시도, 식스팩 만들기, 해외 배낭여행 등. 이 중에는 시도해도 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 날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시도해도 안 되는구나 싶은 것들. 그런데 역시나 시도해봐야 안 되는지 알 수도 있고, 의외로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며 놀랄 일도 생긴다. 누군가와 식사하며 족발의 비계를 씹어먹는 내 모습에 내가 놀랐던 그 언젠가처럼.     


 그나저나 나는 30년이 훌쩍 넘어 배운 이걸 아들은 언제 배우려나… 조금만 일찍 배우면 좋겠는데ㅎㅎ 비계야 끝까지 못 먹게 되더라도 말이다.      


20230405 11:52 교대역 어딘가에서     


*사진: UnsplashPablo García Saldaña

작가의 이전글 지하철에 책 읽는 사람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