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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ul 09. 2023

정말 나는 잘 하는게 없구나

사람, 적성, 그리고 소통

 일 끝나고 돌아온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멍하니 앉아있다. 속은 열불이 난체로…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내 온 머리통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나를 위협하던 질문 하나를 잊고 살았다. 그 질문이 오늘 하루 공사 현장에서 속으로 욕지거리를 해대던 내게 퇴근하는 길에 찾아온다.


 '나는 뭘 잘 하지?'


 차에 앉아 터져나오는 열불 그대로의 내 모습을 잠깐씩 백미러로 볼 때마다 차마 얼굴 전체를 보지 못 하고, 이마 한 켠만 보고 만다. 자신이 없다. 뭐하나 잘 하는 게 없어서, 아니 잘 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그 답답한 심정을 가진 사람의 답답해 죽는 그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다. 나는 곧 죽어도 양심적인 사람이다. 나는 일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사람이다. 나는 가족과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내가 원하는 '잘'과 연결할 수 있는 특징은 없다. 22살엔가 영어에 꽂혀 영어를 들이판지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넷플릭스를 자막 없이 보지도 못 하고, 사소한 대화 하나에서도 긴장하고, 놓치는 말이 많을 정도로 나는 영어를 '잘' 하지 못 한다. 중학교 때 기타를 치기 시작했지만, 기타가 자연스러울 뿐, 코드도, 스트로크도 그냥 기타 칠 줄 아는 아저씨에 불과한, 기타를 '잘' 치지 못 하는 사람이다. 왜 사는지 궁금해 고등학교 때부터 파기 시작한 책은 그렇게 많이 읽었고, 다양하게 보았지만, 지금도 책을 '잘' 읽지 못 한다. 원치 않게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이런 저런 학교들에서 공부를 해왔지만, 성적이 상위에 가본 적 없을 정도로 공부를 '잘' 하지 못 한다. 농구에 미쳐살 때도, 돌아보니 내가 농구를 가르쳐줬던(?) 친구들이 2-3년이 지나자 나보다 농구를 잘 하는 것을 보며, 스트레스틀 받을 정도로 농구도 '잘' 하지 못 했다. 내가 해본 적 없는 것 빼고 대략 꽤나 시간을 투자한 것들 모두에서 나는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내 스스로 성취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결과물이 빼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이 요구된다. 나 혼자 성취감을 느끼고,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었다고 잘 한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해낸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의 시선도 비슷해야 한다. 객관적인 평가라고나 할까? 한 가지 더. 다른 사람이 더 이상 내가 한 일에 대해 입 댈(?) 일이 없을 때, '잘' 한다고 할 수 있다. 평가나 수정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들을 제외하고, 내가 한 일에 다른 이들이 더 이상 수고로이 손을 더 대야 하거나 입을 댈 필요가 없을 때, 그 때 나는 그 일을 '잘' 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페인트 일을 두 달 정도 하고나니 대충 사수들과 사장님이 시키는 일이 무엇인지, 왜 그 일을 할 타이밍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성실과 책임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결과일 것이다. 페인트에서 작지만, 중요한 기초 작업들도 사수의 지시에 따라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잔소리도, 욕도 하지 않고 언제나 내게 설명을 다시, 또 다시 해주시는 그분들의 시간을 내가 빼앗고 있구나 싶은 순간이 있었다. 내가 해놓고, 다시 해보자는 말을 듣고, 또 다시 해놓고, 좀 더 예쁘게, 그래, 어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더 이상 손 댈 일 없도록 신경써서 예쁘게 해줘." 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정말 신경써서 같은 일을 한 번 더 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그 사수가 나서서 일을 마무리하셨다. 나는 좋아지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고, 뭔가 늘었다는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에도, 내가 한 일의 결과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시간이 내게 쓰여져야 하는 상황이 되고, 새로운 일에 대한 지시와 설명이 아닌, 이전에 몇 번이고 했던 일에 대해 또 다시 입을 대지 않게 만들 수 없는 이런 상황. 정말 고통스럽다.


 차에 앉아있는데, 부끄럽지만... 눈물이 맺혔다. 열 받고, 짜증나고, 너무 스트레스 받았다.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 일의 속도를 더디게 했던, 내 주변에 물건을 늘어놓은 현장의 인부들을 향해 욕이 나왔다. 알고 있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나는 내가 내 일을 '잘' 하지 못 한다는 짜증나는 이 상황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잘 못 하면 어때, 그냥 해 라고 하기에는 내가 생겨먹은 모습이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 내 자신을 탓하기에는 이 상황들을 추스를 수 있는 레벨도 아직 안 되기에 누군가 총알받이가 필요했던 것 뿐이다. 


 그렇게 흥분과 열불이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드는 생각 하나. 


 '나는 왜 이렇게 잘 하는게 없을까?' 


 자질? 성격? 성품? 뭐라고 하든, 사람이라면 갖추면 좋을 요소들은 있었다. 그러나, 기능적인 면에서 '잘' 하는 건 찾기 힘들었다. 영어도, 운동도, 독서도, 일도 그저 그랬다. 뭔가를 계속 하다보면, 당연히 늘기 마련이다. 시간의 법칙,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삶의 현장, 업무의 시간은 마냥 이와 정비례하지 않는다. 속도를 내야 하고, 퀄리티를 보여줘야 하고, 또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속도와 퀄리티를 동시에 내야 한다. 아마 나는 그런 면에서 못 따라 가는 듯... 


 내가 페인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거의 대부분(아마 모든)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키 188에 체중 85키로 정도면, 몸 쓰는 일을 잘 할 것 같다고 말할 법도 한데, 지인들의 나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그쪽이 아니었을까? 이쯤 되니 아, 정말 적성이란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평소 어떤 일이 주어져도 겁내지 않고, 일단 계속 해나가는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생각한 나였다. 그런데, 속도와 퀄리티가 필요한 일에서는 기본 자질일 뿐, '잘' 하는 사람은 그 이상의 뭔가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속도와 퀄리티를 동시에 내며 '잘' 하고 싶은데, 자꾸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주변에서 내게 그들의 시간을 나눠주지 않으면 해내지 못 하는, 일을 '잘' 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 머무를까 겁이 난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의 가성비는 신체적 강인함과 요령에도 있다. 몸이 튼튼하지도 않고, 요령도 없어 몇 달째 같은 설명만 반복해서 듣고 있는 나는 결국 탈이 났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한, 무릎 위 앞쪽 허벅지 부분이 걷지 못 할 정도로 아팠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걸을 수 있을 정도다. 건강을 타고나지도 못 했고, 일 할 때 사소하지만, 결정적일 수 있는 요령들을 습득하지 못 한 결과다.


 종합해 보면, 나의 적성은 페인트가 아니다. 성취감은 적고, 성장은 더디고, 결과물은 그저 그렇다. 두 달 밖에 안 되었다는 말로 한 번 더 동기부여를 하기에는 상대적인 발전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게 내 자신에 대한 평가다. 다른 사람이 입을 대지 않고, 손을 빌려주지 않으면 일이 마무리가 되지 않으니 속도와 퀄리티는 커녕 전체 프로젝트 진행에도 무리가 있다. 이런 상황을 온 몸으로 맞이하는 나는 말 그대로 온 몸에 무리가 오고, 스트레스가 터져나갈 듯 머리가 아프다. 그 끝은, 나는 정말 잘 하는게 하나도 없구나 라는 스스로를 비아냥대는 회의적인 말 뿐이다. 


 자, 그러면, 나의 적싱이 아닌 일을 내가 하고 있다면, 나는 정말 잘 하는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일을 지금 하고 있다면, 오늘 사장님께 전화를 드려, "죄송합니다. 그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그렇게 손 놓아버리는 것이 정말 '잘' 하는 일일까?  



20230708 17:10 - 202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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