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었지만 구실이 없다면 만들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
사람에게는 이상한 욕심이 있습니다.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아이템에 관심을 갖는 것 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확실히 그런 면이 강해지는데, 저는 그게 송치 로퍼입니다. 심지어 호피 문양으로 된 송치 로퍼 말입니다.
패션을 업을 삼고 있지만 저도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구매할 수는 없습니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 혹은 지금 필요한 것들을 우선순위로 사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제 스타일이나 취향과는 다른 아이템들은 눈길이 가더라도 구매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이 돈으로 이걸 사느니 기존에 사려 했거나 새롭게 바꿔야 하는 소모성 아이템, 예를 들면 드레스 셔츠를 사는 게 맞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캐주얼로 진입은 쉽지 않습니다. 저에겐 온통 포멀 한 스타일이니까요.
그런 저에게 스타일링하기 쉽지 않고 가지고 있는 아이템과의 연계가 쉽지 않은 위시 리스트 아이템이 있습니다. 바로 송치 로퍼입니다. 그것도 호피 문양으로 된 송치 로퍼 말입니다. 털이 고르게 자리 잡혀 있고 컬러는 너무 밝지 않으면서 존재감은 드러낼 수 있는 정도의 은은한 브라운 컬러, 로퍼의 라스트 (앞의 둥근 디자인)가 조금은 둥글게 디자인되어 캐주얼한 느낌을 낼 수 있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꽤나 사치스럽고 쓸모없어 보이는 송치 로퍼가 갖고 싶었던 것은 당시 스트릿 패션 사진의 모습에서부터였습니다.
화려한 슈즈 브랜드가 다양하게 보이던 시기에 송치 호피 로퍼는 존재감만으로도 스타일을 완전하게 만드는 아이템이었습니다. 뿔 모양의 스터드 장식이나 카무플라주 같은 패턴을 활용한 디자인도 있었지만 송치 호피가 눈에 익은 패턴이면서 로퍼로 활용하기에 가장 적절하게(?) 튀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저는 한 사이트를 통해 본 호피 로퍼 특유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느낌에 빠져들었습니다. 저 신발을 신으면 제가 꼭 사치스러운 사람이 된 것 마냥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그때가 대학생 때였으니 벌써 15년 전입니다.
송치 로퍼가 사치스러운 이유는 송치 가죽이 가진 화려한 패브릭 디자인뿐 아니라 내구성에도 있습니다. 송치는 우선 비가 오는 날은 신을 수 없습니다. 스웨이드 가죽은 방수 약품을 처리하면 보통의 가죽보다도 유연하면서 내구성이 좋아지기 마련인데, 송치는 겉에 털이 있기 때문에 비에는 취약합니다. 오염에도 엄청 취약하여 한번 기름이나 다른 것에 오염되면 지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송치 가죽을 제대로 캐어할 수 있는 곳이 드물고, 있어도 그마저도 가격이 다소 있기 때문에 구매한다 하더라도 관리 차원에서 쉽지 않은 아이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치 호피 로퍼에 대한 욕심은 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아이템은 하나는 꼭 필요하니까요. 그러던 중에 최근 부띠끄 쇼핑몰 '파페치' (FARFETCH)에서 "HYUSTO"라는 브랜드를 발견했습니다. 세일 품목을 둘러보던 중 독특하고 강한 스타일의 슈즈를 판매하는 브랜드였습니다. 파페치에 입점되어 있기에 브랜드에 대한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고, 세일을 하니 가격적인 면에서 접근이 좋겠다 판단하여 얼른 구매했습니다. 드디어 15년 전에 고민했던 그 아이템, 송치 호피 로퍼를 말입니다.
일주일도 안되어 배송된 HYUSTO 브랜드의 송치 호피 로퍼는 캐주얼과 여유로움이 잘 버무려져 멋진 스타일을 보여주었습니다. 살짝 여유감 있는 신발 사이즈는 제 발과 잘 맞았고, 촘촘하게 들어간 송치는 사치스러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발등에 체인 링크가 달려 포인트에 포인트를 넣어준 부분이 좋았습니다.
15년 전부터 구매하고 싶었던 아이템이기에, 스타일링에 대해선 확실한 시뮬레이션을 구상했습니다. 우선 살짝 헐렁한 사이즈 감으로 캐주얼하게 신은 다음, 크림 색 코튼 팬츠 혹은 블루 데님에 화이트 셔츠를 함께 매치하면 좋습니다. 물론 팬츠는 살짝 여유 있는 테이퍼드 핏이 좋겠습니다. 블레이저는 있다면 네이비나 브라운 컬러와 입어주면 아주 좋습니다. 블레이저도 여유 있는 핏이어야 한다는 건 잊지 마세요. 다만 요즘 유행하는 오버 사이즈가 아닌 이탈리안 클래식 캐주얼에서 느껴지는 핏입니다.
허리는 살짝 풀어지고 어깨는 패드가 없어 둥글게 떨어지며 전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이 드는 블레이저입니다.
만약 블레이저가 너무 차려입은 듯하다면 가벼운 니트도 좋습니다. 네이비 컬러도 좋지만 밝은 옐로 컬러가 산뜻하면서 팬츠와의 컬러, 송치 호피 로퍼와의 조합도 좋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봄, 가을이 가장 입기 좋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여유로운 햇살이 느껴지는 주말 낮에 데이트를 한다면 이런 차림이 한껏 여유롭고 근사해 보입니다. 송치 로퍼가 주는 느낌은 덥다기보다는 독특하면서 스타일의 전체적인 포인트를 해줄 것입니다. 누군가 보더라도 덥다고 느껴지진 않을 것입니다. 핏의 여유를 주는 스타일링을 전체적으로 해준다면 말입니다.
이 스타일에서 블레이저나 니트를 빼면 초여름까지도 충분히 입기 좋습니다. 말복이 지난 지금 시점에 얇은 포플린 화이트 셔츠에 블루 데님 그리고 송치 호피 로퍼의 조합은 아주 여유로운 스타일이 됩니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은 즐겨야 합니다.
오늘 저는 한껏 다려진 슈트 대신 편안하게 안착되는 네이비 블레이저에 캐주얼 화이트 셔츠, 그리고 크림 면팬츠를 입습니다. 마지막으로 맨 발에 송치 호피 로퍼를 신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 한남동에서의 늦은 오후를 즐기는 패션으로 이만한 것이 없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최근에 산 쓸모없지만 가장 갖고 싶었던 아이템, '송치 호피 로퍼'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