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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ey Oct 03. 2016

슬리퍼, 우아함의 절정

평생 함께 할, 우아한 룩의 마침표.

 더블 몽크와 코듀로이 운동화가 전부였던 시절, 화보에서 처음 접한 벨벳 슬리퍼는 굉장히 흥미로운 아이템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의 단순한 외관에 스컬 문양의 자수가 있는 슬리퍼는 실용성이나 편안함 따윈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에 돈 많은 사람만이 신을 수 있는 그런 이미지 있지 않은가. 양탄자 위로만 걷고 가죽 소파에만 앉으며 차 외에는 타지 않을 그런 사람들에게 어울릴만한 아이템. 그게 슬리퍼의 첫인상이었다.

 

클래식한 스타일에 매칭한 벨벳 슬리퍼 / 출처 : Google

 패션을 공부하고 업으로 삼으면서 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슬리퍼는 구매 대상에서 항상 제외되었다. (개인적 인위 시 리스트를 만들고 자금이 생길 때마다 구매하는 것이 쇼핑 습관이다.) 가죽 구두와 슈트, 안경이 우선 구매 목록이었기 때문에 내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슬리퍼는 애초에 쳐다보지 않았다.

 어느 날 자주 가던 클래식 쇼핑몰에 적당한 가격의 벨벳 슬리퍼가 올라왔다. 한창 온갖 스컬 문양에 관심을 가지던 차에 세일 중이었고 게다가 때마침 보너스로 받은 여유 자금이 있었다. 3분 정도 고민을 하다가 어울리지 않으면 환불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스컬 문양의 벨벳 슬리퍼 / 출처 :  Google

 며칠 후 내게 온 벨벳 슬리퍼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착화는 구두보다 부드러운 벨벳 소재라 꽤 편했으며, 맨발이던 슈트 양말에 신든 어렵지 않게 어울렸다. 무엇보다 슈트, 데님, 코튼 팬츠에 다 잘 어울리는 전천후 아이템이었다. 이후로 한동안은 벨벳 슬리퍼를 신고 스타일링을 할 만큼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벨벳 슬리퍼는 아이템 특성상 튀지만 가볍지 않았고 어둡지만 언제나 빛을 바랐다. 우아함을 스타일의 목표로 삼는 내게 발끝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우선의 아이템이다. 지금은 특별한 날에도 평일에도 신는다. 진중하게 신을 때는 슈트 팬츠에 패턴이 들어간 양말에 매칭을 하고, 가볍게 신을 때는 양말을 신지 않고 데님이나 낙낙한 사이즈의 코튼 팬츠에 매칭 한다. 모든 스타일에 어렵지 않게 어울리면서도 적당히 튀는 존재감의 벨벳 슬리퍼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은은하게 이목을 끌면서 재미를 주는 아이템이다.

드레시한 포멀에도 쉽게 어울리는 벨벳 슬리퍼 / 출처 : Google

 벌써 5켤레 벨벳 슬리퍼를 구매했다. 마치 평생 같이 할 나만의 안경을 찾은 것처럼 (꽤 오랫동안 평생을 같이 할 안경을 찾았고, 지금은 금자 안경의 엔틱 골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벨벳 슬리퍼는 평생 함께 할, 특별한 날이던 평범한 날이던 한 겨울을 제외하고는 희로애락을 같이 하게 될 아이템이 되었다. 믿고 맡기는 것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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