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같은 카디건을 입고 이른 여름을 맞이합니다.
젠더리스, 젠더 플루이드 트렌드는 남성이 여성적인 옷을 입고 여성이 오버 사이즈의 큰 남성복을 입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남성들의 변화가 큽니다. 배우 티모시 살라메는 톰포드 여성복을 입고 공식적인 자리에 출현하고, 가수 조권은 하이힐을 신기도 합니다. 최근의 젊은 남성을 상대로 하는 브랜드에서는 크롭 카디건, 크롭 니트 등 기장이 짧은 스타일을 자주 출시합니다. 이런 트렌드는 남성복의 한정적인 스타일과 아이템에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먼저 젠더리스 패션을 시도했습니다. 대학교 시절, 패션을 학문으로 받아들이고 공부를 하던 저는 상당히 짧은 기장의 볼레로 재킷을 입었습니다. 볼레로 재킷은 크롭 한 기장의 재킷 형태로 여성복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물론 남성복에서 나오는 것은 없으니 만들어 입었는데, 고속 터미널 빈티지 매장에서 판매하는 80년대 트렌치코트를 구매해 기장을 허리 위로 재단한 것이었죠. 당시에 정욱준 디자이너의 준지가 나타나면서 트렌치코트의 디자인 변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시기였는데, 절묘하게 그 시기에 맞물려 재밌게 입고 다녔습니다.
2-3년 전부터는 다시 20년 전에 입었던 크롭 한 아우터를 입고 있습니다. 허리에 딱 맞게 떨어지는 가죽 블루종, 코튼 점퍼 등은 톰 포드에서부터 출시되어 즐겨 입었습니다. 딱 맞게 떨어지는 기장은 경쾌한 느낌을 만들어주면서 저처럼 키가 작은 남성에게 비율을 근사하게 만들어 줍니다. 롱 기장의 울 코트가 멋지긴 해도 역시 크롭 한 아우터가 작은 키에 고민을 가진 남성에게는 가장 좋은 아이템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젠더리스는 젠더 플루이드는 단순히 짧은 총장이 아닙니다. 여성복에서 출시되는 아이템을 남성화하는 것입니다. 샤넬의 트위드 카디건, 생로랑의 8센티 첼시 부츠 등 남성이 잘 시도하지 않았던 아이템을 남성복으로 출시하면서 젠더의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남성복의 슈트, 블레이저에 사용하는 소재와 디자인을 여성복에 더 다양하게 적용해 본다면, 남성복에서는 여성복의 아이템 자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소재부터 디자인, 컬러까지 모든 것을 말입니다.
최근 구매한 '트위드 카디건'은 젠더리스의 표본입니다. 칼라 없이 라운드로 디자인된 넥 부분은 부드럽게 떨어지면서 트위드로 성글게 짜인 소재는 여름철 휴가지와 도심의 카페에서 어울립니다. 특히 밝은 컬러의 아이보리 소재에 다크 네이비 배색은 샤넬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크롭 한 기장은 늘어지는 카디건을 입어도 적당한 비율을 만들어줍니다. 와이드 한 하프 팬츠와 송치 로퍼, 그리고 깊게 파인 헨리넥 티셔츠와 함께 입으니 여유로운 주말 스타일을 완성했습니다.
젠더리스 시도는 모든 아이템을 여성스러운 것으로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템 정도를 착용해 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현재 착장에서 가장 보이는 비중이 큰 아이템일수록 재미가 더합니다. 젠더리스 아이템을 기존의 남성적인 스타일에 더했을 때 보이는 오묘한 조합이 바로 이 트렌드의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성들이 앙고라 스웨터를 입는 것 또한 젠더리스 아이템을 하나 적용해 보는 모습입니다. 아마 이번 여름에는 겨울에 이어 짧은 소매의 앙고라 니트가 남성복에서도 보일 듯싶습니다. 부드럽고 키치 한 앙고라 하프 니트를 이번 여름 시도해 보는 것, 재밌는 경험이 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