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트렌드는 돌고 돈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패션은 이제 새로운 창조라기보다는 어떤 아이템, 무드, 컬러를 조합하고 만들어내는 지를 표현하는 것이 주요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스트릿 패션이 정점을 찍은 이후 다시 돌아온 클래식 무드 트렌드는 '올드 머니'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지만, 사실상 기존의 있었던 클래식한 스타일을 조금 다른 컬러와 아이템 조합으로 새로운 용어와 함께 트렌드가 된 것이죠. 이렇듯 결국 돌고 돌아 과거의 것을 보면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많은 디자이너들이 (특히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는 빈티지를 보면서 영감을 얻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자신의 디자인과 스타일을 표현하는 주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슷하게 저는 '동묘'에 갑니다. 백화점의 하이엔드 브랜드 혹은 여러 매장을 가면서 재미가 없다고 느낄 때 말이죠. 철이 지난 것뿐 아니라 언제 만들어졌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 것들이 빼곡히 쌓이고 걸린 동묘의 길거리를 지나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컬러 배색 조합, 소재 조합, 로고의 표현법, 프린트 기법 등 지금 백화점에 걸려있는 비싼 옷들이 가진 한계점이 여기선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백화점에 있는 옷들은 현재 트렌드 한 기법과 컬러, 소재만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니까요. 하지만 동묘는 그렇지 않습니다. 1980년대부터 작년에 출시된 옷까지 꽤 오랜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 새로움을 얻는 게 오히려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시즌을 대비해서 새롭게 선보여야 할 아이템, 스타일, 컬러 조합 등을 참고하기 위해 열심히 둘러봅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컬러의 베르사체 셔츠, 빛바랜 찢어진 리바이스 데님 팬츠, 우아하게 뚝 떨어지는 실루엣의 아르마니 재킷 등 지금 트렌드와는 조금 다른 재밌는 옷들이 가득합니다.
저는 여기서 제가 근무하는 캐주얼 브랜드에 필요한 기발한 아이템을 과거의 흔적에서 찾습니다. 오히려 과거에는 더 재밌고 놀라운 아이템이 많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여유로운 시대의 아이템들 말이죠. 특히 액세서리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퀄리티가 높습니다.
혹은 제가 준비 중인 저의 브랜드와 콘텐츠 그리고 저의 스타일을 위한 것들을 찾아봅니다. 남성이 신는 짧은 스타킹 양말, 턱시도 재킷, 페이턴트 슈즈 등은 지금은 다들 잘 입지 않는 스타일이죠. 저는 그런 스타일들을 보면서 어떤 것은 지금도 입을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변형해서 입을 수 있는지 고민해 봅니다. 이런 고민이 차곡차곡 쌓여 제게 다양한 스타일로 표출됩니다.
그럼 패션을 직접 업으로 하진 않지만 동묘를 구경하고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는 어떤 것이 좋을까요? 그리고 어떤 걸 보는 게 좋을까요? 간단한 팁을 드려볼까 합니다.
-구매보다는 먼저 다양한 아이템을 구경하고 체험하는 것이 목적
동묘에 쌓여있는 옷들은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때문에 가품인지 진품인지 알 수 없고 (가방이나 신발 외에 의류도 가끔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옷이 어떤 형태로 흘러 왔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구매하여 입는 것보다는 그날 재밌게 보고 체험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런 옷이 있다는 것, 컬러의 조합이 이럴 수도 있다는 것 그런 재미로 말이죠.
또 내가 입고 간 옷에 이런 컬러 혹은 디자인을 같이 입어보면 이런 느낌이구나를 동묘에서 마음껏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체험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마음 편안히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빈티지인만큼 한 시즌 입고 버리는 걸 추천
그렇게 생각하고 간다 하더라도 꽤 멋진 아이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격이 높지 않으니 몇 가지 구매하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입니다. 그럴 땐 구매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여기서 오래 입을 생각보다는 한 시즌 정도 입고 폐기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옷의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옷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겉은 멀쩡해도 안감이나 겉감과 안감 사이에 봉제된 안쪽 부분에서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옷이란 기본적으로 소모품이기 때문에 오래된 옷은 그만큼의 부식이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가볍게 한 시즌 정도 입고 폐기하는 걸 추천합니다.
-과감함을 선택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한 시즌을 입고 버리는 가벼운 가격대의 빈티지인만큼 과감한 것을 선택해 보는 것이 꽤 재밌는 선택이 될 겁니다. 자라 같은 SPA도 가격이 올라가는 요즘, 과감한 옷을 즐기고 싶은 현실에 동묘의 빈티지는 괜찮은 선택지입니다. 무엇보다 예전 옷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옷들과 차별화되는 특별함도 있죠. 평소에는 잘 입지 않은 스타일이라던가 컬러를 선택하여 가끔 기분낼 때 한 두어 번 입는 것, 꽤 재밌는 도전입니다. 동묘의 빈티지는 이런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
동묘는 꽤 몇 년 전부터 방송에서 다루어지면서 어르신들의 공간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즐기는 곳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고프코어룩에서 늘 회자되는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동묘에 한국 어르신들의 패션을 보고 진짜 패션이 여기 있다고 할 정도였죠. 세계 최고의 거리라고 칭하며 스포티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믹스 매치 정신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는 키코 자신의 브랜드 패션쇼에서 동묘 아재룩이 연상되는 컬렉션 제품이 대거 출시되었습니다.
이렇듯 동묘는 늘 신선하고 재밌는 옷과 사람이 넘쳐납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동묘 한 바퀴 주말에 돌아보는 건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