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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트라이프 더블 슈트의 의미

옷의 완성이 나이라는 것

by Mickey



가끔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어떤 옷은 처음 보는 찰나에 이미지로 깊게 새겨지고,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뉴욕의 오래된 영화 속에서, 흑백의 조명 아래 서 있던 남성들은 늘 한 벌의 슈트로 자신을 설명하곤 했습니다. 말이 필요 없는 사람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가 또렷해지는 사람들. 그들 위로 흐르던 것이 바로 블랙 스트라이프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였습니다. 근엄하고, 단단하고, 이상할 정도로 섹시한 공기.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 옷이 제 안에서 어느 순간 ‘하나의 목표’처럼 자리 잡기 시작한 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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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이 만들어내는 권위와 아름다움

블랙 스트라이프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이하 더블 슈트) 는 직선의 힘을 가장 정교하게 다루는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은 바탕 위에 흐르는 얇은 실선들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닮았습니다. 매끄럽고 고요하지만,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인상을 남기죠. 이 직선들이 슈트의 구조와 만나면, 어깨선은 자연스럽게 올라서고, 가슴은 더 단단해 보이며, 허리는 절제된 긴장감을 갖게 됩니다. 더블브레스트의 넓은 라펠은 그 직선과 대비를 이루며 옷 전체의 비율을 안정적으로 잡아줍니다. 마치 “여기서부터가 나의 실루엣입니다”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감각은 톰 포드, 생 로랑, 브리오니, 제냐 같은 브랜드의 테일러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며, 랄프로렌(Ralph Lauren) 역시 클래식함 속에 서부적 기개와 도시적 세련됨을 결합해 블랙 스트라이프 슈트를 의미 있게 다뤄온 브랜드입니다. 이 슈트가 오랫동안 남성복의 ‘심장부’에 머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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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를 망설였던 건

이 옷 앞에서는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동경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쉽게 손을 뻗을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블랙 스트라이프는 어설프게 입으면 화려함만 앞서고, 지나치게 의도된 느낌이 들어 자칫 부담스러워 보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클래식 슈트는 결국 ‘얼굴과 나이’가 완성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 중후함을 제 얼굴이나 분위기가 충분히 받쳐주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좋아하되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묘한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제 얼굴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선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표정에는 경험에서 비롯된 여유가 자리 잡았습니다. 적당히 패인 주름과 살짝 거친 수염이 ‘이제는 블랙 스트라이프 더블 슈트가 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강하게 느껴졌던 스트라이프가 지금은 오히려 은은하고 균형 있는 리듬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가 이 옷에 맞춰지는 과정이 조용히 완성된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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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제 손에 들어온 한 벌의 슈트. 사진 속 옷걸이에 걸린 슈트는 그 긴 시간의 대답입니다. 제가 직접 선택해 구매한 블랙 스트라이프 더블 슈트, 가까이서 보면 스트라이프는 차갑지 않고, 어두운 바탕 위에서 은은하게 흐르며 고급스럽게 빛이 납니다. 과거의 저라면 부담스러웠을 이 실선들이 지금의 저에게는 오히려 표정과 분위기를 정리해 주는 선처럼 느껴집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옷을 비로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순간’을 갖게 되는 일 같습니다. 저는 마침내 오랫동안 동경하던 그 슈트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앞으로 이 슈트가 제 삶의 중요한 장면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함께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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