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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나는 왜 구찌를 톰포드 시절로 돌려놓았는가?

by Mickey


발렌시아가, 베트멍의 디자이너였던 뎀나 바잘리아의 이번 구찌 컬렉션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그의 근간이었던 스트리트 패션이 아닌, 톰 포드의 구찌처럼 관능적이고 테일러링에 집중한 컬렉션이 꽤 큰 변화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왜 뎀나는 테일러링과 관능의 면으로 돌아섰을까요? 그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이번 칼럼에서 다뤄봅니다.



충격적인 전환: 스트리트의 왕이 ‘포멀’로 이동했다

뎀나가 구찌에서 보여주는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의 전환이 아닙니다. 그는 발렌시아가에서 자신이 구축했던 스트리트의 왕국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전혀 다른 ‘고급 포멀’의 언어를 꺼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움직임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10년간 스트리트 패션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 바로 뎀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톰포드 시절 구찌를 떠올리게 하는 매끈하고 정제된 실루엣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니, “어쩌다 뎀나가?”라는 의문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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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Google / 뎀나의 구찌, 관능과 정교한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스타일

스트리트의 피로감: 모두가 입는 순간 가치는 사라진다

하지만 그의 변화는 갑작스러운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지난 10년간 스트리트 패션은 너무 빠르게 소비되었고, 그 과정에서 ‘하위문화의 힘’이라는 본질이 완전히 희석되었습니다. 누구나 오버사이즈를 입고, 누구나 로고 플레이를 즐기며, 누구나 디스트로이드 진을 입는 시대가 되자 스트리트는 더 이상 반항적이지도, 실험적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소비자들 역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편안함을 위해 선택했던 오버사이즈 실루엣은 이제 느슨해 보이고, 로고는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니라 과시적 소비의 흔적으로 느껴집니다.
뎀나는 바로 이 ‘스트리트 피로도’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한 사람입니다. 스트리트의 끝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스트리트를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말입니다. 즉 창조한 사람이니 그 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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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YPEBEAST / 23년 winter, 발렌시아가에서 보여준 뎀나의 스트릿

명품의 본질은 결국 ‘핏’이다: 포멀의 귀환

스트리트의 시대가 무너졌다고 해서 명품 시장의 욕망까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오래 남는 디자인, 체형을 정교하게 살려주는 실루엣, 고급스러움이 명확히 드러나는 옷을 찾습니다. 이는 결국 ‘핏’이라는 단어로 귀결됩니다. 아무리 화려한 스트리트 패션이라도 테일러링에서 나오는 정교한 럭셔리함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톰포드 시절의 구찌가 다시 소환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 시절의 구찌는 곡선과 직선이 예민하게 교차하며 몸의 라인을 따라 흐르는 섹시함을 보여줬고, 럭셔리 브랜드의 정수를 상징했습니다. 뎀나는 이 시대의 언어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꺼내 들고 있습니다. 과거를 복각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다시 갈망하는 ‘정교한 아름다움’을 현재에 맞게 되살리는 방식입니다. 그것은 관능과 연결되고, 고급스러운 섹시함입니다. 톰 포드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근간에 있던 핏, 그리고 고급스러움 그 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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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Google / 톰 포드 시절의 구찌는 관능이 가장 잘 어울리는 브랜드였습니다.

아이러니의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충격을 위해서는 정반대로 가야 한다

뎀나 본인도 알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와 해체주의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그의 발렌시아가는 이미 글로벌 패션계가 모두 따라 했고, 그가 만들어 온 ‘충격의 미학’은 반복되면서 힘을 잃었습니다. 혁신은 반복되는 순간 혁신이 아니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스타일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결단입니다. 이는 패션적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확장의 가장 적극적인 방식입니다. 마치 이렇게 선언하는 듯합니다.
“스트리트의 시대는 제가 끝냈습니다. 다음 시대도 제가 열겠습니다.”


2026년 이후, 패션은 확실히 ‘포멀’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뎀나가 예고하는 ‘다음 시대’는 무엇일까요? 바로 포멀의 귀환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디라인을 예민하게 잡아내는 슬림 테일러링, 은은한 광택감, 직선과 곡선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몸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실루엣의 시대입니다.
2026년 이후의 패션은 이런 흐름으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미 조짐은 보입니다. 팬츠는 슬림해지고 있으며, 남성복에서는 ‘섹시함’이라는 개념이 다시 논의되고 있고, 재킷은 다시 몸의 선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던 시대는 저물고 있으며, 정교함·우아함·긴장감이라는 키워드가 새로운 중심축이 되고 있습니다. 트렌드가 돌고 돌듯 다시 포멀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누구보다 뎀나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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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esignscene.net / 뎀나의 구찌가 보여주는 관능과 테일러링

결국 뎀나는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미래를 먼저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뎀나의 변화는 톰포드 시대의 향수를 팔기 위한 시도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미래를 가장 먼저 본 디자이너입니다. 스트리트의 피로도가 한계에 다다르고 소비자들이 다시 정교한 실루엣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는 이미 톰포드 식 포멀리즘이라는 다음 시대의 언어를 꺼내 들었습니다.
결국 뎀나는 구찌를 톰포드 시절처럼 되돌린 것이 아니라, 다가올 2026년 이후의 패션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스트리트의 시대는 그의 손에서 마무리되었고, 포멀의 시대는 그의 손에서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 매끈한 실루엣, 몸에 맞춘 테일러링, 고급스러운 섹시함의 복귀—이 모든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패션은 다시 우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할 것입니다. 자 다시, 당신의 옷장에 있는 슈트와 구두를 꺼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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